일본 원자력 전문가 장정욱 교수는 오래전부터 원자력 마피아에 포섭된 일본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과 사고 위험을 경고해 왔고,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라 설파했다.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체계를 보면, 공동체적 가치보다 경제적 이윤에 의해 작동하는 원자력 산업계, 광고를 매개로 한 언론 개입과 이데올로기 유포, 막대한 국가 연구 개발로 연결된 전문가 집단, 이러한 원자력 체계를 이끄는 원자력 관료와 정치권의 상호 의존 형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러한 정치, 관료, 언론, 산업, 지식 집단의 상호 이해관계의 그물망을 원자력 마피아, 혹은 원자력 카르텔이라 호명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 동안 시민·사회 단체는 원자력문화재단의 거짓 이데올로기 유포와 언론 광고의 문제점, 국가 연구 개발사업과 각종 정부위원회 구성의 문제, 현대건설 등 원전 건설사의 부실 시공 의혹 등 원전과 관련한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그러나 지난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원전 정책의 변화의 조짐은 없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원전 수출의 강력한 경쟁자인 일본을 제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양 원전 르네상스를 더 강력히 주창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국장 "원전 수출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 필요"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원자력법이 개정되었다. 기존의 원자력법은 단일 법안으로 123조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 법안을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법 등 4개의 법안으로 분할하고, 특히 대통령 직속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구성해 형식적으로나마 원자력 이용·증진과 안전 규제 기관을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랫동안 원자력 이용·진흥과 안전 규제 기관이 교육과학기술부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에 대해 국제 사회와 시민 단체는 분리할 것을 요구해 왔으니, 어쩌면 환영받을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원자력법안의 개정 논의 과정을 보면 개운치 않다. 18대 국회 초기부터 5명의 국회의원이 각각 의원입법으로 원자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정부는 현 체계에서도 원자력 안전 규제 정책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법안 상정조차 미뤄 왔다. 특히 원자력 진흥과 안전 규제를 함께 관장하던 교육과학기술부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의혹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원자력안전국을 만들고,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4월 임시국회에 들어와 서둘러 원자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급증한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 여론에 반응하는 것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한국형 원전 수출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분리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춘진 의원은 회의에서 "VIP(대통령)의 한마디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고" 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6월 16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손재영 원자력안전국장이 한 발언을 보면 정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원전이 거의 선진국 수준인데, 프랑스하고 우리나라가 거의 세계 양대 산맥을 이끌어 나가는데 프랑스가 우리가 UAE에 원전 수출할 때도 우리나라 안전 규제 시스템에 대해서 많이 공격을 했습니다. 안전 규제 독립성이 없다. 그런 것들이 이번 평가 보고서에 또 나오면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경쟁력도 좀 문제가 있기 때문에 7월 달에 하기 전에 소위원회를 통과를 시켜 주시면 IAEA에서 점검을 받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같은 회의에서 교육과학기술부 김창경 제2차관은 이렇게 말하며, 사실상 원자력법 개정이 원전 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편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아까 안전국장님이 얘기하셨듯이 저희가 IAEA 수검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이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가 아주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원자력법 개정에 따라, 초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에 강창순 교수를 선임했는데, 그는 원자력 발전 건설사인 두산중공업 사외이사, 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자문그룹 그룹장, UAE 원자력안전검토위원회 부위원장 등 원자력의 확장에만 힘써온 인물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첫 구성부터 시민 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고, 이는 대형 사고 이후 조직을 하나 신설하면서 여론을 무마하면서, 실제로는 원전 확대와 원전수출의 도구로 삼고자 한다는 합리적 의혹을 부를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내년 원자력 진흥 예산 224억 원 증액 요구
원자력 안전보다 원자력 진흥이라는 정부 정책은 예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0월에 국회에 제출한 2012년 원자력 관련 예산 요구액은 원자력 진흥 758억 원, 원자력 안전 186억 원, 원자력 연구 개발 기금 1790억 원 등 총 2733억 원이다.
이는 총액 기준으로 전년 대비 270억 원(약 10퍼센트)이 증액된 것인데, 증액된 예산 중 224억 원(약 90퍼센트)이 원자력 진흥 예산이다. 참고로 원자력 진흥과 관련한 세부 사업에는 원자력 기술 개발 사업(1428억 원), 수출용 신형 연구로 개발 및 실증 사업(80억 원), 국제핵융합실험로 공동 개발 사업(100억 원), 한미 원자력 협력 선진화(42억 원) 등이 있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안전을 위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원자력 카르텔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원전 수출이라는 명분으로 기술 개발과 국제 협력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그 예산은 관련 기업과 연구자와 원자력 이해관계자에게 골고루 배분되는 구조이다.
국민 안전을 볼모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원자력 카르텔의 해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전 카르텔의 현실을 모니터해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과 탈핵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현실적 시나리오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원자력 카르텔에 맞서는 대안 세력화가 필요하고, 이제 "탈핵"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 세력, 즉 녹색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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