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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세뇌당했다고 말하는 까닭은…"

[박동천 칼럼] 무엇이 세뇌인가?

사법 개혁의 필요성에 관해 칼럼 한 편을 쓰고 있었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세계 유일의 MB 자전거 도로"가 치욕스럽다는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가 떴다.

그 글을 보고 치가 떨리는 중에, 아래로 다른 기사가 눈에 띈다. 진중권의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관련 기사 :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읽어봤다. 그리고 사법 개혁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주로 미루고 일단 이 문제에 한 번 더 지면을 소비해 본다. 아직은 낭비까지는 아닐 듯해서다.

지난번에는 내가 졸지에 "궤변" 늘어놓는 무리 중 하나로 몰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박헌영 미제 간첩 테제"를 주장하는 "허접함"으로 분류되었다. "읽지도 않는 <조선일보>에" 어떻게 세뇌를 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심오한 이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별로 심오할 것도 없다.

▲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 ⓒ프레시안

1. 무엇이 세뇌인가?

곽노현 교육감의 혐의에 관해서 진중권이 이번 글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지난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곽노현 캠프와 박명기 캠프의 두 관계자가 구두로 후보 사퇴의 대가로 선거비를 보전해주기로 약속했다"는 데 있다. 그는 이를 용감하게도 "사실의 재구성"이라는 제목 아래 적고 있다.

나도 이런 얘기는 여기저기서 읽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가 확인되지 않는 한, 이런 풍문만 가지고는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하나는 그 "두 관계자"가 나눈 대화의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 두 사람이 캠프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곽 교육감은 대화 내용에 관해 "동서지간인 실무자들 사이의 약속 같지 않은 구두 약속"이라고 하며, 캠프를 대변할 자격에 관해서는 "권원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 표시의 편의적 결합"이었다고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검찰의 기소장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용은 진중권이 곽 교육감을 기소하는 취지와 사실상 같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람이 "사실의 재구성"에 관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더라도 만약 독자적인 탐사를 거쳤다면, 다시 말해 곽 교육감 측의 주장을 배척하는 판단에 도달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검찰발 여론 조작용 기사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세뇌당한 결과는 아니다. 독자적인 확인 없이 검찰발 기사에 일방적으로 의존했다면 세뇌당한 것이다.

진중권은 "두 관계자"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그 내용을 어떻게 확정했는가? 곽노현은 그 대화를 "권원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 표시"라고 하는데, 진중권은 어떤 근거가 있기에 이를 간단하게 일축하는가? 그의 주장에 이런 독자적인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세뇌당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2.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에게서는 세뇌를 당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즉, <동아일보>라든지, <연합뉴스>라든지, 아니면 이런 매체들의 보도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다른 기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에게 세뇌를 받지는 않았다는 항변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애당초 내가 쓴 <프레시안> 칼럼도, 제목과는 달리 내용에는 단정적인 표현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 글에서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라는 표현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집합적인 명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어쨌거나, 다른 매체의 검찰발 보도에 세뇌당했을 뿐,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의 보도에 세뇌당한 것은 아닌데, 내 글에 그런 제목이 달려서 억울하다면, 그 억울함을 구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3.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시점

내가 지난주에 칼럼을 쓴 이후, 어떤 분이 진중권의 트윗들을 가지고 일종의 일지를 정리했다고 알려왔다. (☞바로 보기)

8월 28일 - 곽노현 기자 회견(오후 5시 전후)

18:53

'대가성'여부가 문제인데…일단 돈을 준 시점이 대가성으로 보기 어렵지만, 단일화의 수혜자가 양보한 측에 돈을 건넸다는 점에서, 의혹을 사기는 충분하죠. 법정에서도 치열한 논란이 될 듯합니다. 최종 판단은 판결을 보고 내려야겠죠.

8월 29일

12:08

박 교수가 찾아와서 약속을 왜 안 지키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변명하지 말고 사퇴해야지요.

12:15

각서가 있든 없든, 구두로라도 그런 약속을 했다면, 그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겁니다.

8월 30일

11:28

곽노현, 당장 사퇴해야 합니다. 혼자서 교육감 된 건가요? 진보 개혁 진형에서 함께 세운 '공인'이라면, 법적 책임에 앞서 일단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가성 여부에 관한 법리논쟁은 하고 '사인'으로 돌아가서 해야 합니다.

8월 29일만 해도 여지가 남아 있는 가언적 진술인데, 이튿날은 단호하게 바뀌었다. 8월 29일에 <동아일보>는 "진술, 문건, 녹취록 통해 대가성 확인", "검찰은 박 교수로부터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던 때부터 사퇴 조건으로 약속한 액수를 건네주기로 했었다. 곽 교육감이 7억원의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는 8월 30일, "단일화 직전 사당동 비밀 회동", "7억, 산하위원장 자리 등 약속"이라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진중권은 <한겨레> 기고(☞관련 기사)에서 "곽 교육감이 기자 회견을 통해 스스로 2억 원을 건넸다고 밝히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고 했다. 마치 돈을 줬다는 것만으로 대가성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는 듯이 말한 것이다. 반면에 이번에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계자 사이의 구두 합의에 주목한다. 대가성 여부가 관건인데, 자기가 보기에는 대가성이 아니라고 볼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트윗의 흐름을 보면 이번 얘기가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7억 원"을 주고받기로 "약속"했다는 "박명기 측의 진술", 운운하는 소리가 보도되자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뇌당한 결과다. 왜냐하면 박명기의 변호인이 바뀌면서 9월 8일에 "대가성 일관되게 부인했는데 언론이 왜곡"했다는 박명기의 항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진중권은 지금 자기가 "사실을 재구성"했다고 여기지만, 그가 내놓고 있는 사실이란 것은 모두 검찰과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이 합작해서 지어내거나 편집한 결과에 불과하다. 피고인으로 몰리고 있는 사람들의 변론은 마냥 묵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세우기에 유리한 내용만을 일방적으로 채취했을 뿐이다.

4. 몇 마디 더

4-1. 한상희 교수에 대해 진중권이 내놓은 반박은 이명박의 "녹색 성장" 또는 "공정 사회" 수준이다. 내용을 전혀 건드리지 못한 채, 피상적인 언어 조작으로 대충 때우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첨삭 교정은 봐주지 않아도 나설 사람 많을 것 같다.

4-2. 곽노현에게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소리는 전형적으로 칼자루 쥔 놈이 부리는 전횡을 (아마도 자의식도 없이) 흉내 내는 모양새다. 홍준표한테 헌책하면서 박원순 병역에 대고 써먹으라고 하면 무척 좋아할 성 싶다. 이 말이 혹시 "심오한 이치"로 들리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홍준표는 순간적으로 알아들을 테니까.

4-3.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은 단순히 곽노현의 선의를 믿자는 얘기가 아니다. 구린 거래였을지도 모른다는 방향의 불확실성은 아직 내 맘속 한 귀퉁이에 남아 있다. 단, 다른 귀퉁이에는 곽노현과 주변 인물들의 모든 말이 그대로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있다. 나는 후자가 진실이기를 바라지만, 이런 바람 때문에 그를 변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사법의 원칙으로서, 이처럼 두 방향의 불확실성이 팽팽하게 맞설 때에는 피고에게 유리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법철학적 입장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4-4. 진중권은 지금 자기 맘속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곽노현더러 말끔히 씻어달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얼마나 씻어야 "말끔"한지는 철저하게 자신의 재량으로 간주한다. 더구나 그는 이런데다가 "정의"라는 표 딱지를 붙이는 자신의 "영혼"이 "고결"하단다. 이 무지막지한 법 관념, 정치의식이야말로 근본적인 세뇌의 결과다.

<경계 도시>를 한번 보면서, 송두율에게 "사과"를 요구했던 진보 인사들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라. 법을 이야기하려면, 의심이나 사과가 진행하는 방식에도 법도가 있어야, 즉 전횡이 아니어야, 즉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종착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4-5. 지식인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허접한 닭소리만 골라 듣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 골라 들으려면 닭이 내는 소리에서도 혹여 이성의 울림을 찾아보는 편이 이득일 것이다. 허접한 닭소리만 골라 듣다보면 허접한 닭소리 말고 달리 무슨 소리가 있는지도 모르게 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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