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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O팡도 아이템 때문에 망했는데…"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39> 아이템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 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아이템

저기요,

저는 아이템을 쓰는 건 반칙이라 생각했어요. 저의 미국 프로야구 영웅들은 하나같이 아이템 때문에 몰락했거든요. 1990년대 말 홈런왕 자웅을 겨루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그랬고, 2001년 전무후무하게 한 시즌 73개의 홈런을 때려낸 배리 본즈가 그랬으며, 어릴 적부터 저의 최고 선수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 또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스테로이드라는 아이템 때문에 그들의 화려한 경력은 지저분하게 마무리되고 말았죠.

저기요, 그러니까요,

저는 여전히 아이템을 쓰는 건 반칙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템은 오묘한 구석이 있어요. 그가 가진 모순이 자꾸만 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죠. 위에 열거한 스포츠 스타들, 그들은 과연 아이템에 의해 스타가 된 걸까요, 아니면 이미 스타였던 그들이 아이템에 의해 망하게 된 걸까요?

작년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 시장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 애○팡을 당신도 기억할 겁니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음 직한 이 게임은, 서서히 진화를 거듭해 처음 선보였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여러 가지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템이 없던 시절 10만 점은 그림의 떡이었던 저 같은 게임 하수들도 10만 점을 넘어 20만 점, 30만 점은 너끈히 기록할 수 있는 평등 지향적인 게임이 되었지요. 그리하여 중·하수들에게 더욱 환대받는 게임이 되었지만, 그리고는 얼마 후 순식간에 애○팡의 인기는 사그라지고 말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오랜만에 애○팡을 즐기던 저를 보고 지나가던 고등학생 하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거였어요. "아직도 이 껨(game) 하는 어르신이 계시네?"

게임 전문가들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판단은 그렇습니다. "2012년 국민 모바일 게임이었던 애○팡은 아이템 때문에 망한 것"이라고요. 8분마다 하나씩 주어지는 하트(하트 하나에 게임 한 판)를 기다려 아무런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확대된 동공과 무뎌진 손가락의 힘으로 한 주의 최고기록에 도전하던, 그 고충과 번뇌가 아이템 도입과 동시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통 없는 보상(報償)은 재미가 없고 손해 없는 변상(辨償)은 상상 밖의 것이니까요.

애○팡에서 아이템을 사용하려면 코인이 필요합니다. 코인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노템전(아이템 없이 하는 게임)을 통해 부지런히 모으면 됩니다. 그러나 속된 말로 노가다 뛸 필요 없이 쉽게 코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것을 이름 하여 현질('현금질' 혹은 '현금을 지르다'의 준말)이라 부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현질만 하면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현질만 하면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시대, 현질만 하면 1등이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직까지 게임에 현질 한 번 해보지 못한 저는 어느 게임에서든 하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저기요, 그러니까,

저랑 같이 구럼비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 혹은 구럼비를 보면서도 못 본 척하고 있는 당신, 당신 말이에요. 지금 구럼비에 아이템을 장착하고 있는 것 보이시나요?

ⓒ노순택

임경섭

시인. 2008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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