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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팔아먹는 쓰레기들 "법정 스님도 불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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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팔아먹는 쓰레기들 "법정 스님도 불지옥!"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랍 벨의 <사랑이 이긴다>

'쓰레기'가 만드는 정치 조직

또 다시 한국 기독교가 난리를 치고 있다. 기독교 정당을 만들겠단다. 정말 지금 필요한 게 그건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적대하면서 자신의 특권을 움켜쥐고 있는 자들이 그걸 더 크게 키우겠다고 정치 조직을 결성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 작업의 중심에는 목회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윤리적 기초조차 되지 않은 자들이 있다.

교회를 자신의 사유 재산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자, 여성 신도를 성적으로 유린하면서도 그게 당연한 자기 권리인 줄로 아는 자, 권력과 손을 잡고 온갖 특권을 누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겠다고 협박하는 자, 다른 종교에 대해 비방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자, 마치 자신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있기나 한 것처럼 여기는 자 등 한국 교회는 이런 '쓰레기'들로 말미암아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 자들은 세상을 썩게 만드는 쓰레기일 뿐만 아니라 강도이기도 해서 순진한 교인의 재산을 종교의 이름으로 강탈하다시피해서 자기 배를 불리고,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이런 교회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해서, 천국에 가고 싶은 이들의 갈망이 이용당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거세하는 한국 교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이들 한국 대형 교회의 이른바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현실의 모순에는 눈감게 만들면서 자기들은 현실의 온갖 이익과 특권을 차지한다. 자기 이익이 걸린 현실이 도전을 받게 되면, 그때는 어느 샌가 이 현실을 문제로 삼아 교인들의 신앙 에너지를 동원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방어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교인들에게 자기들이 적이라고 지목한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고 의심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성의 힘을 제거해버린다.

그래서 한국 교회 안에는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된 교인들이 목사의 전횡에 휘둘려 지낸다.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모욕, 인간적 능멸, 파괴되는 존엄성의 문제에 대해 눈뜨고 이걸 문제로 삼아 신앙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 무력하게 만들어 간다. 매주일 이뤄지는 설교라는 이름의 세뇌는,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가 아니라 교회의 기득권을 지켜내는 존재로 둔갑해버린 예수를 믿게 만들고 있다. 그건 예수가 아니라 이런 교회의 수문장으로 전락한 꼭두각시일 뿐이다.

랍 벨은 이러한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 분명하게 분노하면서 본래의 성서와 본래의 예수를 복구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사랑이 이긴다>(양혜원 옮김, 포이에마 펴냄)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성취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명백하게 논증한다.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은 지금 이 지상의 세계와는 별도로 어디 다른 데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옥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예수와의 개인적 인연"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뜻대로 사는 이들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선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 기독교?

▲ <사랑이 이긴다>(랍 벨 지음, 양혜원 옮김, 포이에마 펴냄). ⓒ포이에마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이게 오늘날 한국 교회의 정식이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모두 지옥에 있는 게 된다. 힌두교를 믿은 간디나, 법정 스님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해 있을 것이다. 그들이 현실에서 어떤 가치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려 했는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아니다. 자기들이 고백하고 있는 예수를 받아들였나 아닌가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믿는 예수는 정말 성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예수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믿으라고 말하고 있는 예수는 도대체 누구일까?

랍 벨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몇 년 전에 어떤 여성이 자기 딸 친구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 친구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 여성의 딸은 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죽은 친구가 그리스도인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딸은 친구가 살아 있을 때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자 그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아무런 희망이 없군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그것이 기독교의 메시지란 말인가? '희망이 없다.' 예수가 세상에 전하시는 메시지가 그것이란 말인가? 희망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받은 신성한 소명이란 말인가?" 그는 교회가 무수한 사람들에게 가르쳐온 상식처럼 된 신앙 고백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예수의 이야기라고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의심스러워진다. 선택받은 소수의 그리스도인은 천국이라고 불리는 평화롭고 즐거운 장소에서 영원히 살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아무런 가망도 없이 지옥에서 고통과 형벌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배웠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그 신앙을 거절하는 것은 곧 예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매우 해로운 메시지이며 예수의 사랑과 평화, 용서와 기쁨에 대한 메시지를 가로막는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그 메시지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예수"는 거절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과학을 반대하고 동성애자들을 미워하고 길거리에 확성기를 들고 서서 사람들에게 영원히 타는 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런 예수는 진짜 예수가 아니다.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을 예수와 인연이 없다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질타하는 예수가 있다면, 그건 가짜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이들의 예수

랍 벨은 예수를 이렇게 정리한다. "미래의 자기 생명에 대한 질문을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신다. 예수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들이셔서" 인간의 역사에 참여해서 이 지상의 세계를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격려하는 존재로 고백하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는 그 마지막이 지금, 여기에, 오늘 와 있는 것처럼 살라고 촉구하신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지 않겠는가? 예수가 하나님이 인간으로 육화한 존재라고 믿는다면, 그건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육화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의미하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모두를 포괄하면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어떻게든 새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주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에서 이런 하나님, 이런 예수는 부인된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는 정치적이네, 세속적이네, 복음적이 아니네, 성서적이 아니네 하고 배척당한다. 그러나 막상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그건 마땅히 해야 하는 성전처럼 내세운다.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에다가 욕심꾸러기들이다.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사랑의 실천으로 헌신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자들이 자기 문제로 여기는 것에는 그토록 현세적이니 말이다.

새로운 종교 개혁이 필요한 시대

12세기 프랑스에는 사치와 권력에 취한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비판을 가했던 '리옹의 가난한 자들'이라는 신앙 공동체가 출몰한다. 시작 당시 이들은 교회의 부와 권력, 그리고 위선과 허위에 대해 날카롭게 맞선다. 그러자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교회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만다. 1380년 영국의 존 위클리프가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성서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기 시작하자 그 역시 핍박을 받고 결국 화형을 당한다. 그의 가장 뛰어난 제자 얀 후스도 면죄부의 악덕을 공격하면서 스승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독일 농민들은 봉기한다. 길게 보면 이것은 종교 개혁의 씨앗이 뿌려진 시작이었다.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 교회는 지금 교인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걸 무기로 엄청난 헌금을 뜯어내고 배를 불리고 있으며 진정한 사랑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지는 모양내기로 그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너무나 커질 대로 커진 교회에도 만족하지 못해 초대형 교회 건물을 세우기 위해 교인들의 피와 땀을 짜내고 있다.

거리에서 쓰러져가는 노숙인과, 복지의 그늘 아래 있는 장애인, 경찰의 공격을 당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들의 관심이 아니다. 말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욕심에 취해 이익을 바라는 '삯꾼 목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신도들을 농락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들 또한 적지 않으며 악한 권력과 손을 잡고 세상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탄의 협력자가 무수하다.

랍 벨의 책 <사랑은 이긴다>는 이러한 현세에 대해 진정한 예수는 누구인지. 참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루어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다.

선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기독교를 누가 믿겠는가? 악한 자를 방치하는 기독교를 누가 존경하겠는가? 자기들이 조작한 예수를 성서의 예수처럼 꾸며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앞잡이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약자들을 사랑하는 걸 공격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교회라면 그건 이미 교회가 아니지 않는가?

새로운 종교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먼저 지르리라. 사랑은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에 목숨을 걸며 진정한 평화를 위해 자기 몸을 나눈다. 그곳에 예수는 함께 한다.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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