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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를 두드리고, 스마트폰을 울려라!"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피터 터친의 <제국의 탄생>

이븐 할둔의 아사비야

동양의 주역(周易)은 한 마디로 역사에 대한 해석과 전망이다. 사마천은 그 해석의 무대 위에 인간을 올려놓았다.

서양에서 역사에 대한 문은 헤로도토스가 열었지만,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그 내부의 비밀 회로를 보여준 것은 투기디데스와 폴리비우스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변화는 서로 상대적인 것이 맞물려 돌아간다고 일갈했다. 피곤한 시대는 휴식의 역사를 열고, 전쟁으로 지친 시대는 평화의 계절을 갈망하게 되어 있다.

이런 역사 해석의 숲에 매우 특이한 존재 하나가 있으니 그는 이븐 할둔이다. 14세기에 태어나 대부분 그 시대를 살았던 그는 15세기의 풍경을 미리 내다본다. 티무르 제국이 이슬람 세계의 패자로 나서는 현실 속에서 그는 역사의 줄기를 치밀하게 포착해 나갔다. 격동의 시대가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이 급격한 변화의 역사에서 생존하고 미래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공동체는 아사비야가 견고한 집단이라고 갈파했다.

아사비야는 공동체 내부의 결속력이다. 어찌 들으면 너무 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무수한 문명과 제국 그리고 그 흥망성쇠의 역사를 파헤쳐 들어가 보면 이 아사비야를 획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당장 우리의 한반도 현실을 봐도 민족적 아사비야의 성취는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절감한다.

이븐 할둔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제국은 이 아사비야의 최고 수준에 이른 결과물이고 그 제국의 쇠락과 멸망은 결국 이 아사비야의 내부적 붕괴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수학자, 진화생물학자의 역사 해석

▲ <제국의 탄생>(피터 터친 지음, 윤길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피터 터친의 <제국의 탄생>(윤길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바로 이 아븐 할둔의 '아사비야'를 중심 개념으로 삼고 역사를 풀어나간다.

특이한 것은 터친이 수학,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 이론으로 무장한 지식인으로서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골몰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인구 역학과 역사 발전의 관계를 규명하는 이른바 "역사 동역학(Cliodynamics)"의 전문가다. 그런 까닭에 그의 책은 다채로운 이론과 접근 방식이 전개된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에 와 살고 있는 그는 바로 그의 개인사처럼 과거의 제국과 현재의 제국이라는 문명적 정체성의 갈등과 융합이라는 지점에서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힘의 진실을 알고자 한다. 그는 아사비야의 문제를 초민족 공동체의 제국과 그 변경에서 발생하는 긴장, 압박, 이에 대한 대응의 과정을 통해서 분석한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흥미롭고 역사적 현실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사비야에 대한 개념은 이렇게 설명된다.

"집단마다 구성원들의 협력하는 정도가 다르고, 따라서 결속과 연대의 정도도 다르다. 14세기 아라비아 사상가 아븐 할둔을 따라 나는 이런 집단의 속성을 '아사비아'라고 부른다. 아사비야는 사회 집단이 집단적으로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아사비야는 역동적인 양이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증가할 수도 있고 감소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아사비야가 높은 집단은 어디에서,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는가?

"아사비야의 수준이 높은 집단은 초민족 공동체 변경에서 생긴다. 초민족 공동체의 집단은 제국의 경계가 두 초민족 공동체를 가르는 단층선과 일치하는 지역이다. 초민족 공동체의 변경은 집단과 집단의 경쟁이 아주 치열한 곳이다. 팽창주의적 제국은 자기들의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군사적 압력을 가한다. 하지만 변경에 사는 사람들은 제국의 부에 끌리기도 해서 교역이나 약탈을 통해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 외부의 위협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둘 다 사람들을 통합하는 강력한 힘이 되어 아사비야의 수준을 높인다."

제국과 변경 사이

중국 제국의 변경에서 성장한 몽골 제국, 그 몽골 제국의 변경에 있던 슬라브의 모스크바 공국이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갈리아와의 격렬한 대치선에 있던 로마의 제국화 과정, 이 로마 제국의 변경에 있던 게르만의 프랑크 제국이 그 예가 된다. 이 문명의 단층선이라는 개념은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의 개념이지만 그는 이걸 충돌이라는 논리에만 적용시킨 반면, 터친은 그 충돌의 내부 역학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 본 것이다.

로마가 지중해 동부로 확장되면서 세워진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의 등장 앞에서 어떤 변모를 보였는지에 대해 터친은 이렇게 조명하고 있다.

"아랍인의 정복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핵심이 그리스어를 쓰고 양성설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는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동하고, 거기에 이탈리아 남부가 조금 덧붙여진 형태로 축소되었다. 제국 전체가, 아니 제국에서 남은 것이 변경 지대가 되었다. 동쪽에서는 아랍인들이 압박하고, 서쪽에서는 스텝 지대의 유목민들이 압박했다. 유목민들은 아바르 족과 불가르 족만이 아니었다. 슬라브 족까지 동유럽에서 밀려 내려와 그들을 압박했다. 침략자들은 몇 번이나 콘스탄티노플까지 쳐들어왔다. 예를 들어, 678년에는 아랍인들이 바다와 육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고, 717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비잔티움 민족은 이렇게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 단련되었다. 8세기 말에 압력이 약해지자 비잔티움이 다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다음 3세기 동안 비잔티움 제국은 영토를 두 배나 늘렸다. 9세기 카롤링거 제국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 비잔티움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 비진티움 사람들은 문화적으로도 당대의 이슬람 문명이나 중국 문명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제국과 변경의 충돌 과정에서 한 집단이 어떻게 아사비야를 획득해서 궁지에 몰린 상황을 역전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훗날 비잔티움 제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아랍인들은 사막에서 서로 연합하거나 전쟁을 벌이는 부족 집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낀 이 아랍부족들은 그 "낀 사이의 긴장"이 고도로 높아지면서 아사비야를 발달시킨다. 이 아사비야의 절정에 이른 산물이 다름 아닌 이슬람 종교다.

로마의 초기, 로마는 당대의 주도권을 가졌던 에루투리아의 압박에 놓여 있었고 이탈리아 반도 전체로 보자면 변경 지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 변경의 긴장은 로마 내부의 아사비야를 고도의 수준으로 만들어나갔고 이에 기초한 로마는 아사비야의 원칙에 개방성의 원칙까지 결합해서, 제국의 기초를 세운다. 기원전 390년 갈리아의 로마 약탈은 로마의 위기였으나 그 위기를 아사비야와 로마 시민권 확대라는 개방성의 원리 위에 대응하면서 엄청난 변모를 겪는다.

단련되는 사회, 역사의 주도권, 새로운 아사비야

터친은 로마와 갈리아와의 끊임없는 전쟁에서 펼쳐진 변화를 분석한 폴리비우스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로마 사람들은 이 전쟁에서 두 가지 큰 이점을 얻었다. 첫째는 갈리아 사람들에게 큰 손실을 입는 것에 익숙해지자 이제는 더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들이 그리스의 피로스를 대적해야 했을 때는 오랫동안 단련된 노련한 운동 선수처럼 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은 이 로마의 아사비야가 현실에서 입증된 사건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회도 역사의 변화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고 한번 만들어진 아사비야가 영원히 갈 수 있는 경우란 없다. 아사비야도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현실이 달라지면 아사비야의 강도도 변하게 마련이다. 이러면서 제국은 쇠퇴하고 역사의 세기적 순환 과정은 발동을 걸게 된다.

"강한 제국은 안정과 내부 평화를 가져오지만 그 안에 혼란을 낳을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안정과 내부 평화는 번영을 가져오고 번영은 인구 증가를 낳는다. 인구 증가는 인구 과잉을 낳고 인구 과잉은 임금 하락과 지대 상승, 평민들의 1인당 소득의 감소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낮은 임금과 높은 지대가 상류층에 유례없는 부를 가져다주지만 그들의 수가 증가하고 탐욕이 늘면 그들도 소득 감소를 겪기 시작한다.

생활수준의 하락은 불만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엘리트층은 국가에 의지해 고용과 추가 수입을 얻으려고 해 국가의 지출을 끌어올리지만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빈곤해져 세수는 줄어든다. 국가의 재정이 붕괴되면 국가가 군대와 경찰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제약에서 풀려나 엘리트층의 갈등이 고조되어 내전이 일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은 폭발해 민중 반란이 일어난다."


한 사회의 아사비야 붕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아사비야의 등장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아사비야의 창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묻게 된다. 더는 제국과 변경의 긴장과 출돌, 그로써 전쟁과 내전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전개를 거부하고자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시대적 불리함과 유리함을 가지고 있을까?

피터 터친은 유럽이 전쟁을 통하지 않고 연합하는 아사비야 창출을 주목하고, 미국의 내부적 아사비야의 쇠퇴를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실은 새로운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결속을 요구하는 시대적 증후이다. 그래서인지 터친은 블로거들의 키보드와 스마트폰이 만들어낼 새로운 문명의 아사비야에 기대를 건다. 그 기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 이 4대 강국의 제국, 그 변경에 처해왔던 우리의 역사, 그리고 내부적 갈등 속에서 새로운 역사적 진화를 꿈꾸는 우리, 이제 무엇으로 "진보의 아사비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제국의 탄생>을 덮으면서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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