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은 200억을 넘게 가진 부자들이고, 사람들이 부의 등급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고, 당신은 그 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 활동에서 당신은 배제되고 멸시를 받는다면, 100억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만일 당신의 100억이 50억으로 줄어들지만 다른 모든 사람은 20억을 소유하고 있는 B라는 섬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당신은 A를 포기하고 B라는 섬을 선택할 것인가?
한 가지 모순되는 발견 : 절대 소득과 상대 소득
위의 질문은 소득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사회에서 한 개인이 버는 소득의 절대 액수보다는 주위 사람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 소득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부각시킨 것이다. 상대적 부의 개념은 나의 소득과 비교해서 주위 다른 사람들의 소득을 고려하는 것이다.
1인당 소득 수준이 약 1만5000달러 미만일 경우에는 절대 소득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1만5000달러 미만인 경우 소득의 증가가 곧바로 행복의 증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득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절대 소득 증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행복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는 상대 소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1970년대 말에 1000달러 수준에서 2007년에는 거의 2만 달러로 치솟았다. 그러면 한국 사람의 행복 수준은 얼마나 올라갔을까? 그리고 앞으로 4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아래의 <표 1>은 미국의 사례이다. 이 표가 보여주듯이 미국 사람들의 행복의 분포는 1975년과 1996년에 거의 변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제 그 아래에 있는 두 표를 더 보도록 하자. <표 2>와 <표 3>은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대체로 더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표 1>은 행복이 소득 증가와 관계없이 일정하고, <표 2>와 <표 3>은 소득이 높은 사람이 더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보수가 올라가면 더 행복해진다"와 "보수가 올라가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라는 두 상반된 주장이 모두 맞는 것이다. 이 두 모순되는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1975년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비교하면 부자가 더 행복하다. 즉 상대 소득에 의하여 소득이 올라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6년과 1970년 사이 절대 소득이 증가했으나 행복은 크게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즉 절대 소득의 증가는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절대 소득보다는 상대 소득이 행복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소득의 차등화가 강화되어 서열이 강조된 사회에서는 상대 소득, 즉 소득의 서열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
부자가 가난뱅이보다 오래 사는 이유
마이클 마못은 한 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돈이 상대적으로 많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지위 증상'이라고 부른다. 소득의 비교, 교육 정도의 비교, 부의 비교 등으로 서열이 정해지며, 그 서열에서 어느 위치에 속하는가 하는 지위에 따라 건강 또는 수명이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건강하지 않은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또는 그들이 갖는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건강에 미치는 여러 요인들, 의료 혜택, 유전 요소, 나쁜 습관 등을 고려해서 그 영향을 모두 제거한 후에도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건강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째서 지위 자체가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인가?
여기서 비교는 단지 부자와 가난한 두 집단의 비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라도 더 큰 부자가 오래 산다는 것이다. 큰 집에 사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작은 집에 사는 사람보다 더 건강하며,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대학만 졸업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10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5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것이다. 50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 역시 넓고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좋은 의료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데 왜 100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보다 일찍 죽어야 하는가?
마못은 그 이유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권이 얼마나 주어지고, 또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는가에 따라 건강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자율이 주어지고, 더 많은 사회 참여와 통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반대로 지위가 낮을수록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자율권이 적어지고, 사회 참여에서 배제될 확률이 높아진다. 직장이나 가정, 또는 친구나 친척들과 지내는 일상에서, 우리 자신이 통제력을 잃거나 약화되면, 쉽게 말해 우리가 종종 이야기하듯이 사회에서 '갑'이 아니고 '을'의 입장이 된다면, 우리들의 스트레스는 증가하기 쉽다.
우리는 주위에서 친구나 친척들의 모임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 내세울 것 없는 직장에 다니거나 실업자인 경우에는 자신의 행동이나 주위 사람들이 대하는 대우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한다. 개인이 갖는 자부심이나 자격지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차별 대우는 소득 불평등과 같은 서열 형성을 전제로 한다. 소득의 격차가 커질수록 자신이 그 서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지위에 대하여 강한 인식을 갖게 된다. 타인들과의 비교에서 결정되는 위치에 따라 자신의 지위가 결정되며, 이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영향이 우리의 정신적 건강과 함께 육체적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강남 부자보다 강북 부자가 행복하다
만약 현재 어떤 사람이 연봉으로 4000만 원을 받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8000만 원을 받는 상황과, 20년 전으로 뒤돌아가서 같은 사람이 연봉으로 3000만 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1500만 원을 받는 상황을 비교해보자.
"당신은 만족합니까(행복합니까)?" 하는 질문에 3000만 원은 절대 액수에서 4000만 원보다 낮지만 과연 어떤 대답은 나올 것인가? 아래 조사 결과는 상대 소득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버드 대학의 어느 과의 학생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A와 B중 어느 것을 더 좋아 합니까?
A. 당신은 연봉 5만 불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그 반을 받는다.
B. 당신은 연봉 10만 불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그 배를 받는다.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이 A를 B보다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이 절대적 액수가 적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상황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봉이 올라가고, 자신의 연봉이 그대로라면 매우 실망하고 불쾌해 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을 주위 사람들의 소득과 비교하며 그 상대적 소득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강남의 부자보다 강북의 부자가 더 행복하다고 한다. 이는 강남에는 부자가 많아서 강남 부자는 강북 부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남부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강북 부자보다 더 많은 부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에 상대방의 연봉을 물어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례한 행동에 속한다. 연봉 계약은 대부분 회사와 당사자 사원 사이의 비밀이다. 만약 어느 한 사원의 월급을 올려주고, 그 사실을 모든 사원이 알게 되면, 그렇지 않은 다른 사원들의 불만이 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족 내에서도 배우자의 연봉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자신의 일에 더 불만이 크다고 한다. 독일의 통일로 동독인들의 소득 수준은 올라갔지만 그들의 행복 수준은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통일 후에 증가한 소득이 그들의 행복을 높이는 정도가 서독인들의 소득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불만을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하저티는 311개의 지역의 소득 분배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가 이 조사에서 발견한 것은 최고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사람들의 행복 수준이 낮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동네에 큰 부자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소득의 분배가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소득이 전반적으로 증가한다 하더라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도로 심화되면, 소득 증가에 따른 행복의 증가가 상대소득에 따른 행복 감소로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 소득과 행복 : 한국의 경우
한국의 상대 소득과 행복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아래 도표를 보면 다른 나라의 결과와 같이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최상위 1퍼센트인 소득이 월 1000만 원 이상인 사람들은 오히려 그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행복지수는 3.37로 소득 수준이 월 400만 원에서 600만 원인 사람들의 행복지수 3.50보다도 낮다.
▲ 대한민국 1퍼센트 부자는 행복할까? ⓒ한겨레 |
월 1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이지만 500만 원 정도를 받는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의 교육 경쟁과 진급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피라미드 경쟁 구조에서 경쟁은 올라갈수록 더 심해지는 퇴직 압력 등의 스트레스를 견뎌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소득 수준만 보고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이들은 경쟁 사회의 희생자이며 또 성공 욕구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 경쟁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이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소화해야 하며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위의 도표에서 보여주듯이 이들 상위 1퍼센트의 소득 수준의 사람들의 기부금이나 자원봉사 등 사회 참여율은 월 300만 원에서 400만 원대 소득 수준의 사람들과 비슷하다.
또 하나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 경제적 위치는 최상위를 차지하면서도 자신들은 중하나 중상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의 앞으로의 사회 경제적 지위도 아주 낮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다른 어느 소득 계층보다 낮은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도 높은 경쟁에서 성공한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녀의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한다.
최상위 소득 계층은 물질적인 풍요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A라는 섬과 B라는 섬
A라는 섬에 세 사람이 살고 있는 데 한 사람은 연소득 1억 원, 그 다음 사람은 5000만 원,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1000만 원을 번다고 하자. 그리고 B라는 섬에 역시 세 사람이 살고 있는 데 한 사람은 연소득이 8000만 원, 나머지 두 사람은 4000만 원의 연소득을 올린다고 하자.
만일 당신의 자녀를 위해 이들 두 섬 가운데 어느 섬에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느 섬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섬을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소득의 선택은 불가능하고 무작위로 정해진다고 가정하자. 즉 당신의 자녀가 어떤 연봉을 받을 수 있을지 그 확률은 모두 같다고 가정한다. (존 롤스는 그의 <정의론>이라는 책에서 한 사회의 제일 약자가 행복할수록 정의롭다고 한다. 여기서는 섬 B가 A보다 정의롭다.)
당신의 자녀가 또는 손자 손녀가 어떤 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하는가? 또는 당신은 미래 세대에 어떤 사회를 물려주기를 희망하는가? A섬과 B섬 가운데 어느 한 섬이 정답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으며 또는 어느 섬도 정답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존 롤스라는 철학자에 동의하여 B섬이 A섬보다는 이상적인 섬이라고 생각하면 B섬이 답안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차등화 강화를 주장하는 기업 우선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강도 높은 경쟁의 A섬이 그 답안일 수도 있다. 정답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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