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장마 비가 그야말로 억 소리 나게 억수로 쏟아지는 7월의 어느 오후, 가난한 소설 노동자 구보 씨는 전철에서 내려 광화문 지하도를 빠져나왔다. 지하도 안이 질척거렸다.
아주 잠깐, 구보 씨는 자기가 지금 장발장을 따라 파리의 지하수 갱도로 막 들어서려는 자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렇게 여유롭게 내지는 긴장감을 가지고 몽상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그건 사람들 탓이라기보다는, 서울의 지하도는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을 착하게 고쳐먹었다. 상상력은 이미 도시의 설계단계에서부터 거세된 이 나라 문명의 슬픈 표정이다.
문득 바로 그 슬픈 표정이 된 구보 씨는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이어나갔다. 소설 노동자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가난한"이라는 족쇄 비슷한 이젠 어느 가게에서도 팔지 않는 이상한 벙거지를 쓰고도 아닌 척하면서 다니는 낡은 인내를 배워야 하는가? 자기와 이름도 똑같은 구보 씨가 30년대에도 그랬고, 70년대에도 그랬다는 기억이 떠오르면서 구보 씨는 이름이 운명이라는 대단히 미신적인 이론이 꽤나 과학적으로 여겨질 판이었다. 자신이 그 명백한 증거물 아닌가?
구보 씨는 아까부터 자꾸 입맛이 썼다. 여기저기 온통 평창 이야기뿐이다. 강원도 도민들은 축제라고 한다. 그렇겠지. 남 좋을 일에 가타부타 뭐라 할 바는 아니나 뭔가 속되다, 라는 느낌을 좀체 지울 수가 없다. 먹물이 든 소설 노동자의 못된 버릇인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어찌될지 모르는 판에, 동계 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린다는 2018년이라는 시간이 도대체가 가늠이 되지 않는 연도인데다가, 스포츠 정신이라는 말은 종적을 감추고 올림픽 장사에 온 나라가 나선 느낌이었다, 가 아까부터 목에 걸리는 문장인가보다.
60 몇 조의 돈벌이를 기대하라는, 그래서 그걸 따지고 들면 졸지에 비국민이 될 판인, 다시 그래서 거의 윽박지름에 가까운 광고와 선전이 기사와 논평으로 거리를 도배질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부자 되세요"의 진화. 야만적 진화. 이왕 그렇게 된 바에야 어디 잘생긴 담벼락을 골라 각도를 잘 잡아 잘만 기대면 그 60조 가운데 몇 푼은 주머니 속으로 저절로 떨어져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욕심이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
하지만 구보 씨는 누가 볼세라 그런 생각을 잽싸게 빗줄기 속에 털어놓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흔들어대고는 그래 60 몇 개의 조인지 볍씨인지가 뭐 대수야 하고 갑자기 제법 대범해진다. 물론 지금 주머니 속에는 돈 십 만 원도 없다. 오늘 오후 친구 딸 결혼식에 가서 낼 부조금이 막막한 구보 씨는 다시 쩨쩨해진다.
가난한 소설 노동자의 본래의 자세다. 이제 문학은 역사나 현실과 마주하기를 포기한지 오래니, 시시한 신변잡기를 멜로와 환경으로 잘 포장만 하면 대박칠 수도 있다지 않는가? 그래, 그래도 평창을 한번 믿어보자, 볼까? 또 아는가? 순간 불꽃처럼 흔들리며 번뜩이는 영감.
아, 흔들리지 않고 번뜩이지 않는 불꽃은 없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은 맞다. 평창으로 소설을 쓰는 거야.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치는 사나이의 이야기 말이야. 앞으로 7년이 남았으니 시간은 넉넉하다 넘쳐 지루할 지경이다. 가난한 소설 노동자 구보 씨의 운명도 "나만 가수다" 한판 무대로 운명을 바꾼 타이거 림처럼 바뀔지 누가 알 건가?
그래도 구보 씨는 자꾸 또 섭섭했다. 이산가족 출신의 아버지를 둔 구보 씨는 평창 이야기를 하면서 남북통일이라든가 금강산 관광 재개, 또는 평창과 평양의 자매 마을 결연식, 내지는 평자 돌림 마을끼리의 연대, 뭐 이런 소식이나 기사는 눈 씻고 봐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시대일 바에야, 저 70년대의 구보 씨가 말했던 것처럼 어느 날 예수가 안양 포도밭에서 배회하고 있는 걸 목격했다는 기사를 기대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던 여자가 구보 씨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아, 내가 너무 웃었나보다, 구보 씨는 깊이 반성했다. 다행히도 쏟아지는 장마 빗소리에 그가 반성하는 개미 같은 소리는 묻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고 한다.
▲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선정되자 환호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
여전히 유쾌하게 읽히는 구보 씨의 일일
최인훈의 작품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문학과지성사 펴냄)을 한번 흉내내본 글이다.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전2권, 이순호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에 대한 서평을 준비하다가, 평창 동계 올림픽 선정 소식이 날아들고 이 나라의 언론이 저지르는 프로파간다의 장삿속을 보면서 최인훈의 책을 집어 들었다. 구보 씨로부터 그 치열한 역사의식과 성찰, 그리고 경이롭기 그지없는 그의 유머 정신과 스타일을 좀 배울까 싶어서였다.
역시 구보 씨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도가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눈을 번쩍 뜨게 하고 말았다. 유쾌한 책읽기다. 개인적으로는, 20대의 청년 시절에서부터 꾸준히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온 유일한 작품이 바로 최인훈의 전작(全作)이다. 이 나라 현대 문학사에서 역사를 정면에 마주하고 지치지 않는 지적 성찰을 심화시켜온 작가 가운데 이병주가 일제 학병 시절과 해방 공간의 경험을 그의 문학에 버무렸다면, 최인훈은 분단의 역사를 관념과 추상의 단계로 끌어 올리면서 문명사의 각도를 포착한 경우라고 할 만하다.
여기서 "문명사의 각도"라고 한 까닭은 최인훈의 작품에는 언제나 식민지 시대의 학습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이 나라의 정신세계에 대한 문명사적 고찰과 반성이 깊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지구 전체를 동시에 사유하는 특별한 작가 정신을 창조해내는 특징을 보인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의 이십대 작가 구보 씨가 주인공이었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동경 유학을 다녀온 백수 인텔리 소설가 구보 씨의 경성 일기이자 결말에서는 다시 제대로 된 작품을 써야겠다는 각오로 다소 순진하게 끝나는 반면에,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그 일일 기록의 한 편인 "남북조 시대 어느 예술 노동자의 예술"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분단이라는 지방사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보편적 역사의 흐름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난세를 사는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문학의 본래 모습은
최인훈의 구보 씨는 그가 대표작 <광장>에서 갈망했던 이념적 자유가 여전히 냉전의 굴레에 묶인 채 정치적 자유의 문제로 전환되면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창경원에서"의 한 대목이다.
"시인이란 무엇? 사기도박을 발견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죽은 자에게는 대성통곡하는 것. 왜 시인은 그렇게 하는가? 그게 그의 버릇이니깐. 시인은 무당의 후손이니, 그는 부정(不淨)을 점지하는 게지. 해동(海東) 조선국에 부정살이 끼었구나아, 구신이 어디서 왔느냐, 밖이냐, 안이냐, 서쪽이냐, 북쪽이더냐, 푹푹 잘도 썪는구나. 염통이 둘이더냐 셋이더냐 미련한 것들아아, 엇수, 좀 이렇게, 시원한 살풀이를 본지가 오래어라."
창살에 갇힌 야수들이 어느새 고분고분한 몸짓을 습관처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마도 구보 씨는 창살에 갇힌 문학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가둔 권력에 대한 구보 씨의 일갈도 만만치 않다.
"언제나 그 시대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집단 미신이나 집단 최면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 민중의 대부분에게 거짓말과 미신을 덮어 씌워놓고, 자기들만의 잇속과 사실에 따라 처신하는 특권자들이 있다는 것은 괘씸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멀쩡한 등신놀음하는데 직책상 유리한 정보를 가진 자들이 그것을 털어놓지 않고, 떼돈벌이에 써먹는 일이 여간 꽤심한 게 아니다. 이럴 바에는, 권력의 자리에 있는 자들이 필요악에서일망정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민중에게도 그런 특권이 용서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 특권이란 '알 권리' '비판할 권리' '의심할 수 있는 권리'등인데 이것들은 결국 권력자가 요구하는 충성에 대해서 적당히 '에누리할 권리'를 말한다."
문명사, 샤갈 전시회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그의 샤갈에 대한 평이다.
"사갈이라는 사람이 자기 꿈의 거문고 줄을 울려 나간 그 자국들이 구보 씨에게도 똑똑한 무무엇인가를 전해온다. 구보 씨의 고향의 바다의 물결을, 벼이삭의 출렁거림을, 마을의 소문들을, 사춘기의 장난들을. 피난살이의 희극들을. 영문을 모른다고는, 그 또한 예술 노동자인 구보 씨로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 이야말로 가장 원시적인 육체노동자이었다. 샤갈은 노동의 대가다. 그의 붓은 불로소득을 모른다. 어느 붓결이든 황무지를 헤친 호미 자국처럼 속일 수가 없다."
샤갈의 지방적 체험이 구보 씨의 지방적 체험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경복궁 속에 유폐된 지 오래인 낡은 시대의 대감들의 생각은 다르다. 구보 씨는 상상력으로 이들이 그림 전시회를 보면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다.
-허, 이게 양인들의 그림이란 것인가?
-용필(用筆)이 보잘 것이 없지 않소이까?
(…)
-우리 그림 치는 법과 전혀 상통함이 없군요.
-글쎄외다. 이것이 아마 산수(山水)인듯 한데 사군자(四君子)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눈만 버리겠소이다.
(…)
-蛇蝎 特別展(사갈 특별전)이라…….
실존과 역사를 하나로, 예술적 운명
구보 씨나 다른 바 없는 피난민 처지의 예술가인 이중섭에 대해서 구보 씨는 깊은 동감을 한다.
"이중섭은 풍속의 자연스러운 범절을 노래하기를 원한다. 미술이라면 벌거벗고, 하나님이은 예수이고, 사회주의면 스탈린이요, 민족이면 무당귀신인줄만 아는 식민지 똘만이와 무당 각설이패를 이중섭은 영원히 모른다. 형태와 선이 노래부르게 하고 향토의 소재를 무리없이 소재로 쓰는 선견지명과 서양화의 힘을 터득하고 색감의 시인이며 구름같이 이는 구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중섭이 장한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자기의 생애라는 실존의 한 다각 질긴 실로 꿸 수 있었다는 것, 모든 사람이 제 얼은 빠져서 유리처럼 부서지고 피비린내나는 땅에서 귀신처럼 허덕일 때, 그 속에 살면서 자기 목숨의 길을 잃지 않고 운명의 길목에서 만다는 것마다 그것이 소재든 수법이든, 사상이든 신비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한 가지 주제, 그 자신의 목숨의 걸음걸이 속에 끌어들여 그의 삶의 삽화(揷話)로 만들었다는 것"
이 이중섭의 위대함이라고 구보 씨는 탄복한다. 이중섭만이 위대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과 역사가 하나로 만나 말하자면 예술적 운명을 창조한 셈이라는 이야기일 게다.
이런 시대에 가난한 소설 노동자 구보 씨의 일일 행장기를 펼쳐 읽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문득 우리도 구보 씨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거리와 전국 팔도의 이곳저곳을 어슬렁, 또는 기웃거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새로운 깨달음이 "부자 되세요"에서 "60조의 신화"로 탈바꿈한 것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이 기괴해진 세상의 사기도박을 고발하고 어디서 온 귀신이 이리 난리인지 바로 알아맞히고 시원한 살풀이 오랜만에 볼 수 있는 세월을 낚을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으련가?
아, 혹 이글의 용필이 보잘 것 없었소이까? 눈만 버리지는 않으셨는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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