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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아가 '동성애 지킴이'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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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아가 '동성애 지킴이'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하승수의 <청소년을 위한 세계 인권사>

한 달 전, 중요한 약속 시간에 늦어 급히 가던 중 어떤 이가 말을 걸어왔다. "서명 좀 해주세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였다. 잠시 머뭇거렸다. 학생들과 직접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들의 어려움을 아는 내가 모른 척해선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지만 몸은 이미 밖을 향하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까닥한 채. 그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겠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 교양 시리즈, 하승수의 <청소년을 위한 세계 인권사>(두리미디어 펴냄)를 보면 인간이 이렇게나 많은 권리를 갖고 있었나 싶다. 하지만 가난, 빈곤, 실업 등 인권을 위협하는 사회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곳곳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 그 견고한 벽 앞에서 뭘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 <청소년을 위한 세계 인권사>(하승수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두리미디어
하승수는 일단 인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식을 알아야 실천도 할 수 있다면서 책을 썼단다. 대안 교과서 성격을 띤 책이 그렇겠지만 이모저모 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기원전부터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민감한 사안-낙태, 사형 제도, 문화 상대주의-에 관해선 상반된 입장을 보여준 후 자기 의견을 개진한다. 말투는 공손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힘이 느껴진다. 인권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으며 문서로 보장해도 퇴보할 수 있고, 인권도 인간 문제인 이상 양면성이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인권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거다. 하지만 더 나아가, 인권의 진짜 의미는 프랑스의 볼테르가 남긴 유명한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이걸 요즘 사회적 사안에 적용해 보면 이런 식이 아닐까.

"'동성애자에게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동성애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문제와 별개로 봐야 합니다. 동성애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거나 동의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지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성적 지향의 차이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폭력이나 죽음을 당하는 일이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즉 인권이란 나와 입장이나 취향이 다른 상대방이 못마땅해도 그 사람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장해 주는 무엇이다. 그리하여 인권은 사회 문제에 대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중요한 사회 변화를 가져온 혁명 뒤에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세상이 무섭고 두려울 때 걱정근심을 미니홈피 안에 털어 놓는다. 신분과 임금으로 인권을 재단하는 나라에서 비정규직으로서,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까 두렵다. 무언의 차별과 폭력이 더 무서운 법. 이에 누구인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넋두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미워질 때 나를 달래고 존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도 누군가의 딸이고 언니고 친구고 선생이다. 나는 소중하다. 그 자체로 대접받아 마땅한 존재다'라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권리를 잃어버릴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의 이런 기록 역시 사회를 변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사라질 것이다."

청소년들이 왕따에 공감을 못해서 괴롭히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12년 학창시절 동안 은밀한 따돌림 한 번 안 당해본 애들이 드물다고 한다. 묵자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할 것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밉고 싫으니까 남도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제 가치와 능력을 모르니까 남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는지. 또, 알면서도 남을 누르고 일어서지 않으면 경쟁에 낙오되는 사회 시스템 상,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지 않던가. 인권이 왜 잘 안 지켜지나. 모르고, 귀찮고, 버겁고, 희생이 요구되니까. 그래서 종종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역사는 너무 유명한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되는 경향이 있다. (…) 로사 파크스는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한 것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잃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녀의 용기 때문에 흑백 분리 정책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조금씩 인권의 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희생 없인 개선도 발전도 없다. 세계사가 이를 입증한다. 이 책에서 열거한 수많은 사례-프랑스 대혁명, 남북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등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을 수많은 사람들"의 피해가 있었기에 "인권이 한 발 한 발 진전되어" 왔다. 결국 세계사는 곧 인권의 역사였다.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미국처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묵인하는 경우, 잘못된 정부를 비판하고 호소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할까. 힌트가 책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을 때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대로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권에 대해 잘 모르고 잘 못 지킨대도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 해보려고 꿈틀대본다. 어떤 성명서엔 다 이유가 있다. 자세히 알고자 인터넷 검색을 한다. 소수자 뉴스에 눈독 들이고 댓글 한 줄 달며 행운을 빈다. 점심시간 달려오는 애들 얘기 진심으로 들어보려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쉽지 않다. 난 과연 무얼 희생할 수 있을까. 한 걸음 갔다 한 걸음 후퇴한다. 오늘도 갈팡질팡한다. 인권이 한 번에 나아지지 않았듯, 역사가 그런 것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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