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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처럼 살아가는 '한 평' 청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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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처럼 살아가는 '한 평' 청춘의 눈물

[프레시안 books] 정민우의 <자기만의 방>

질문 하나. 월세나 생활비가 같다는 가정 아래, 서울의 좁은 고시원과 교외의 마당 있는 주택 중 살 곳을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질문의 대상을 한국의 20~30대로 좁혀본다면, 아마 '차라리 서울의 고시원이 낫다'는 답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대학, 직장, 여가, 사교 활동 등 서울은 청년들이 찾는 모든 것이 집중된 거대한 도시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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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의 방>(정민우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2009년을 기준으로 전국에는 6126개의 고시원이 있고 이 중 약 65퍼센트(3738개)가 서울에, 80퍼센트(4977개)가 수도권 지역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인구수로 따지면 1000만 서울 인구의 1퍼센트인 10만 명이 고시원에 산다. '고시텔', '미니원룸', '리빙하우스' 등 다양한 이름을 내세우며 늘어나고 있는 고시원은 이제 주거가 아닌 사회 현상으로 주목할 만하다.

정민우가 고시원을 통해 청년 세대와 주거 문제를 분석한 책 <자기만의 방>(이매진 펴냄)을 펴냈다. 본인 스스로 20대 후반의 청년이기도 한 그는 책머리에서 "나와 내 주변의 삶"을 관찰하다가 '고시원'을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책은 고시원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을 지닌 10여 명의 '청년들'(25~34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과연, 그들의 사연은 당신의 이야기와 얼마나 다를까?

의자 값마저 비싼 서울에서

"OO에서 학교를 정하고, 학교 입학하기 전에 주변에서 집을 구하려고 했어요. 부동산은 일단 보증금이라든지 이런 게 필요한데 그런 게 없으니까.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건 많아야 20만 원. 그렇게 싸게 유지할 수 있는 곳."

2002년, 대학 합격과 함께 나의 서울 생활도 시작됐다. 2평(6.6제곱미터) 남짓 되는 하숙방 한 칸이 월 40만 원이나 됐고, 부모님의 지원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주변의 친구들도 비슷했다. 기숙사는 정말 운 좋은 일부 학생들만 입주할 수 있었고 서울이 고향이 아닌 주변 친구들은 고시원, 하숙, 원룸 중 한 곳에서 살았다. 많은 친구들은 월세를 줄이기 위해 친구와 하숙방을 나눠 썼다.

돌이켜보면, 대학에 갓 들어온 학생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우리가 왜 이렇게 좁게 살아야 하는지, 학교는 왜 기숙사를 충분히 짓지 않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대학 생활을 즐기기에 너무 바빴다. 그때만 해도 등록금에 대한 체감이 지금보다 낮아서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정작 다른 경험을 통해 서울의 비싼 땅값을 절감했다. 하숙비는 보장돼 있다고 해도, 방 밖을 나오면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앉을 카페마저도 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땅값 비싼 서울은 카페 안 의자 값마저 비쌌다. 돈이 없어 주문을 하지 않고 '몰래' 앉아 있을 때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인 주거에 대한 걱정이 찾아왔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뒤 원룸의 계약이 끝나 가는데도 다른 방을 구할 수 없었을 때의 초조함이 아직 선명하다. 비록 부모님이 수도권에 사시긴 하지만,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하루 왕복 4시간 가까이 되는 통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비싼 월세 때문에 저축이 늘지 않는다는 친구, 보증금이라도 벌려고 방학동안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배 등 서울에서 만나는 이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집에 대한 고민이 넘쳐났다. 그러나 대학 때문에, 직장 때문에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심리는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졌다.

많은 사람이 살지만, 아무도 같이 살지 않는 집

"고시원은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히 바로 옆방에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없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한테도 제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같이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와도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어느 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야. 며칠 지나고 나니까, 나도 후배랑 얘길 했지. '언니 이거 무슨 냄새에요?' 후배가 막 시체 썩는 냄새 아니냐고 그러는 거야. 결국 둘 중에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따지지 않고. 왜냐면 우리는 그곳에 완벽하게 살지 않으니까."

책에서 묘사하는 고시원의 삶은 서울에 사는 1인 가구의 삶이기도 하다. 옆방에 살고, 옆집에 살면서도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관심을 두지도 않는 것이 '매너'로 여겨진다. 대학 시절에 살던 하숙집에도 한 층에 5개의 방이 있었지만 다른 방에 살던 사람의 얼굴을 본 기억은 전혀 없다. 서로 할 말이 있을 땐 얼굴을 들이밀기보다, 주로 쪽지를 필요한 장소에 붙여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빨래 좀 가져가세요' '조용히 해 주세요', '문은 꼭 잠가 주세요' 등.

그래서 자기 방에 드나드는 사람들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설계됐다는 고시원은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정민우는 "한 시인은 고시원을 '귀신 천지'라고 묘사한다"며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그저 복도를 지나는 발소리나 우는 소리나, 누군가와 소근대며 전화하는 소리나 들려주는…"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서울 신촌에서 열린 '원룸 축제'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난 '원룸생'들은 하나같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밤새 인터넷 게임을 했는데도 아무도 말려주지 않아서 슬펐다거나 동네 입구 편의점에서 이웃 사람들과 맥주라도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사연들. 그러나 또 선뜻 먼저 손 내밀 자신이 없는 이들은 벌집 같은 고시원에서, 원룸에서 혼자 노트북을 켜고, 스마트폰에 접속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집도, 대책도 없다

"남자 친구가 작년에 입사를 했고, 부모님이 사준 집도 있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어 해요. 근데 저는 좀 아니거든요. 부모님한테서 독립해서 남편 집에 가긴 싫어요 진짜. (…) 주거 공간의 독립이 뭐가 그렇게 큰 의민지는 모르겠지만은, 어쨌든 필요한 거 같아요 제 인생에 있어서."

주거는 독립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도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남녀 구별 없이 청년들이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경제적 도움 없이 혼자 나와 살 수 있는 '적당한 가격과 크기의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월세나 전세 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 커서도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 이야기가 나오지만, 사실 경제적 여건을 따져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 내의 1인 가구는 76만8457가구로 서울 전체 가구의 22.4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책은 한마디로 '무대책'의 정책이다. 서울 시민으로 '등록'되지 않은 국내외 이주민, 부양가족이 없는 1인 가구, 특히 35세 미만의 비(미)혼자는 서울시의 공식적인 주택 시스템에서 배제된다. 정민우는 "서울시가 공급하는 임대 주택 입주 자격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은 나이가 어리고, 부양가족이 없는 1인 가구"라며 "주거 취약 계층 전세 임대 지원 사업 등에서도 35세 미만의 단독 세대주는 신청 자격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 용산 일대의 '빈집' 프로젝트 등 돈이 없는 1인 가구들의 공동 주거가 모색되기도 한다. 5~7명씩 친구들끼리 돈을 합쳐 보증금을 모아 공동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나마 있던 옥탑방이나 저렴한 하숙집조차 신축 원룸으로 변해가는 서울에서 독립을 꿈꾸는 많은 이들은 여전히 보따리를 싸든 채 고시원으로 향한다.

지난해 대기업에 취직한 한 친구는 아직 미혼인데도 얼마 전 수도권 보금자리 주택 청약에 당첨됐다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뻐했다. 이제 남은 일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뿐이라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독립이 보장되고 집 걱정이 사라질까.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전셋값 걱정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집 한 채를 자기 손으로 마련하려면 월급을 모두 저축해도 평생 될까 말까 한다는 말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정말 이것이 최선일까?

"평생 노력해도 규범적 집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적 전략을 통해 아파트-자가 소유-정상 가족이 결합된 규범적 집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집은 종착역이 없는 욕망과 불안의 경주다. 고시원은 안정과 불안정, 영토적 정박과 탈영토화라는 이항등식 그 자체가 무너지는 이 위기의 체제이자 체제의 위기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시대적 장소이며, 이 위기'들'의 역학 자체를 되물을 수 있는 상징이자 현실일 것이다."

애초 학위 논문으로 시작해, 고시원을 통해 이른바 '청년 세대'의 자화상을 탐구하고자 했던 정민우는 "우리는 더 많은 집을, 살고 또 상상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요구하며 책을 매듭짓는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면, 청년들이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이동하면, 대학들의 '인 서울'의 구분이 없어지면, 부동산 투기가 없어지면 주거 문제가 해결될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지만 현실은 너무 멀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모두 끌어안은 주거 문제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삶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계속돼야 한다는 점이다. 내 몸 하나 뉘일 방이 언제 없어질지 불안해하면서도 아등바등 돈을 모아 월세를 내고, 등록금을 내고, 스펙을 쌓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 서울 아니면 수도권에라도 번듯한 아파트에 들어가길 꿈꾸는 삶, 그러나 정작 다수는 빈곤하고 비좁게 살 수밖에 없는, 그것마저 미래를 위한 '나의 선택'이라고 믿는 삶, 그게 과연 우리 모두의 '행복'인가에 대해. 결국 남는 건 어느 동네 무슨 아파트에 사는지 서로 물으며 그것이 다시 자괴감과 열패의식으로 돌아오는 사회에 대해. 정말 우리에게는 이것이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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