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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그림이여, 이제 침을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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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그림이여, 이제 침을 뱉어라!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이충렬의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간송 전형필>에 이어서

식민지 시대에 한국 문화를 지켜낸 인물의 전기인 <간송 전형필>(김영사 지음)에서 이미 그 고증의 노력과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현한 이충렬의 저작이라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김영사 펴냄)에 선뜻 눈길이 갔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최순우 옛집" 행사를 한 안국동 윤보선의 99간 집 정원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그로부터 직접 책을 선사받고는, 바로 그 전날 이 책을 사두려고 작정했던 생각이 떠올라 그 인연에 속으로 미소 지었다.

(최순우(1916년~1984년)는 전 국립박물관장으로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명문으로 우리의 옛 아름다움을 알린 인물이다. 1970~80년대 그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 가옥이 헐릴 운명에 있다가 이 건물을 지키려는 시민운동으로 보존되어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충렬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그날 야외 모임의 식탁에서 책 속의 그림을 보며 내내 경탄했다. 어디서 이런 그림들을 다 구했을까 하는 궁금증만이 아니라 그림의 수준이 매우 높고 그것들이 표현해낸 근대의 풍경이 생생했으며 그림 하나로 시대의 표정을 잡아낼 수 있는 작품들을 적절하게 골라 서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느새 아득히 잊고 있었던 시절의 아름다운 복원이기도 하고, 퇴색해가던 역사의 기억을 총천연색으로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1890년대로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에 이르는 기간을 그림으로 포착해낸 여러 시선들을 만나는 경험은 사뭇 즐겁고 역사적 상상력을 보다 풍부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커다란 역사의 줄기만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인간사의 세세한 이야기 거리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이충렬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도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셔우드 홀, 엘리자베스 키스, 김기창, 변월룡…

우리는 그의 책 속에서 이 땅에 태어나 결핵 퇴치를 위해 애쓰다 간 외국인 셔우드 홀의 삶(1930년대)을 만나고,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 앞에서 기력을 잃은 당대의 한 조선 지식인 김윤식의 늙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엘리자베스 키스의 수채화(1919년)에서 목격하게 된다. 셔우드 홀이 전개한 결핵 퇴치 실 제작 판매 운동의 과정에서 20대 청년이었던 운보 김기창의 정겨운 그림을 보게 되며, 실 그림 제작에 참여한 엘리자베스 키스의 근대 풍속화와도 같은 그림도 아울러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 레핀의 영향을 받았으나 조선의 풍경과 사람을 탁월하게 그려낸 러시아 한인 3세 변월룡의 그림(1953년)을 보면서 놀라워하게 되며, 한강의 황포 돛대가 담긴 릴리안 밀러의 목판화(1920년)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는 충격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릴리안 밀러는 동양의 목판화 전통에 채색화의 흐름을 결합시켜 마치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느낌마저 주는 현대적 세련성을 보여주고 있어 그 기법에도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충렬의 책에 실린 그림들만이 그렇게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이 그림들을 놓고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 그림 속에 담긴 비밀과, 그 그림을 둘러싼 우리 역사의 맥락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짚어나가는 이충렬의 글 또한 이 그림들과 어울려 우리 근대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근대를 사유해야 할 까닭

그는 근대를 사유하지 않고 어떻게 오늘의 자리를 이해하고 내일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시대(근대)를 지나온 우리의 자취를 꼼꼼히 살피고 자유롭게 바라보고 싶었다. 우리가 자칫 놓치고 있었거나, 혹은 짐짓 외면해온 질문들을 여러 각도에서 던져 보고 싶었다. 우리 근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근대의 문화예술은 어떻게 꽃피었는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디에서 희망을 찾았는가? 그 시대는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잃었는가?"

그래서 그가 휴버트 보스가 그린 1898년의 <서울 풍경>이라는 그림을 보면서 그 그림 속의 경복궁에는 고종이 있지 않았다는 역사를 환기시킨다. 광화문 앞 기와집들이 도열한 한 구석에 어느 군인이 총을 들고 서 있는 아주 작은 모습도 놓치지 않고 주목하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흰옷을 입고 무심하게 길을 걷는 조선인들도 그는 깊이 응시한다. 시대는 거대한 폭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고 서울은 그런 와중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침묵하고 있는 분위기의 이 그림 속에서 우리는 근대의 저 비극적인 전환기의 운명을 되짚게 된다.

바로 그 휴버트 보스가 초상화로 남겨 놓은 명성황후의 사촌 동생 민상호의 모습(1898년)은 자신감이 넘치는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나 그가 "친일에 앞장서며 남작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충렬은 꼼꼼히 기록한다. 그에 반해,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려낸 김윤식의 얼굴(1919년)은 망한 나라의 학자이자 고위 관료가 마주한 역사의 비운을 보여주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이충렬은 이 그림을 보면서 김윤식의 "고뇌와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하다.

릴리안 밀러가 그린 <노을 속의 황포 돛대>는 이후 확인된 바로는 대동강변 연광정의 풍경인데 그는 이걸 사진 자료까지 찾아내어 그 그림 속의 현장을 고증한다. 사진과 그림을 마주하다 보면, 연광정의 나무 한 그루까지 그대로 실사(實寫)되어 있어 놀랍고 황포 돛대가 여러 척 떠 있는 광경은 서양인이 그렸다고 보기에는 우리의 정서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할 만하다.

▲ 릴리안 밀러의 <노을 속의 황포 돛대> ⓒ김영사

이제는 사라진 비단신발에 대한 그림도 그의 책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의 하나다. 가죽신에 비단을 입힌 이 신도 일본의 고무신 시장 확대로 1930년대면 사라지고 만다고 기록을 찾아 그 역사를 이충렬은 같은 맥락에서 궁정 음악의 보존과 계승이 이루어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낸다. 그러면서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악사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데, 이어 고려청자의 비색을 복원해내는 장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장 제클레의 작품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이충렬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장 자클레는 훗날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작품 소유권을 자신의 양녀 나성순에게 물려주게 되고, 이후 금속 공예가가 된 나성순은 양부인 자플레의 작품을 모두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근대 풍경이 그렇게 푸른 눈의 화가 덕택에 이 나라의 자산이 되고 역사의 생명력을 얻은 것이었다.

따스한 눈길, 그리고 우리의 귀로는?

변월룡이 1953년에 연필화로 남겨놓은 <김일성, 홍명희, 김두봉>은 각 인물의 특징을 명확하게 잡아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이후의 한 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압축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배운성의 <최승희의 장구춤>(연도 미상)은 당대의 무용 예술가 최승희의 매혹적인 손놀림과 춤사위를 잘 표현해냈으며, 이충렬은 이 그림 하나를 가지고 최승희의 약사(略史)를 그녀의 미국 방문 활동기록까지 찾아내 흥미롭게 들려준다. 변월룡의 작품 <공훈 무용가 최승희>(1954년)는 역시 그의 뛰어난 솜씨를 그대로 느끼도록 해주고 있는데, 그 그림 속의 최승희는 그야말로 자신만만한 표정과 조선적인 아름다움을 물씬 풍기고 있다.

이응로의 <한강도강>(1953년)은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이 자기만 도피하고 서울 시민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한강 다리 폭파 이후의 상황을 전통적인 풍속화의 형식을 빌려 보여주고 있다. 이응로의 다른 작품인 <재건현장>(1954년)은 이 땅의 백성들이 어떤 고통과 비극 속에서 생존해갔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 이응로의 <한강도강> ⓒ김영사

그래서 이충렬의 시선은 이수억의 <구두닦이 소년>(1953년),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그려낸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3년), 시장바닥의 풍경을 그려낸 윌리 세일러의 <빈틈없는 계산>(1957년), <악착같은 장사>(1957년),어느 노인의 모습을 그린 <휴식>(1957년), 김기창의 <복덕방>(1953년)등의 작품에 꽂힌다. 모두 이 땅에 살다간 이들의 쉽지 않은 인생역정을 드러내준 작품들이다.

19세기 말 근대의 시간에 망국의 비운을 겪고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가난과 고달픔의 역사를 이런 궤적을 통해 정리해낸 이충렬의 책 마지막 그림은 박수근의 <귀로>(1964년)다. 나무들이 말없이 서 있고 그 사이로 난 길을 한 소녀가 머리에 뭔가를 이고 남동생으로 보이는 작은 소년과 걷고 있다. 저 앞에는 어떤 여인이 비슷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고달픈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는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귀로는 휴식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들의 삶의 곤궁함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귀로는 새로운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는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시간들을 통과해온 우리들의 역사, 그 근대의 풍경은 그래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충렬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 중에도 천막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어머니들은 함지에 이고 행상을 했고, 아버지들은 열심히 농사를 짓거나 직장에 다녔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집을 개조해 구멍가게를 차렸다. 누나 언니들은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일했고, 형 오빠들도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았고 기술과 장사를 배웠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가 그렇게 근면하게 일하고 공부해 그 어려운 시기를 헤치고 나온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온 몸으로 근대를 지나 현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까지 오는 게 정말 간단치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겨 놓지 않고 있다. 사건과 표정이 담긴 그림을 보기 어렵다.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사진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별반 설득력이 없다. 작가들은 어느새 시대의 풍경과 마주하기 보다는 자본의 욕망에 성실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의 풍속화를 누가 그리고 있을까?

이국의 풍경을 그리면서 그 안에 담긴 아픔과 고독까지 표현해냈던 서양에서 온 화가들의 눈길, 가난하면서도 팔릴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렸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없는 지난 시기의 화가들이 남긴 근대적 인물화와 풍속화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거쳐 온 시대의 삶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는 역사의 엄중함과 삶의 치열함을 다시 절감하게 된다.

오랜 세월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이충렬은 우리의 근대와 지금의 삶이 겪어낸 세월에 대해 깊은 애정과 따스한 시선을 가지고 읽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고맙다. 이런 작업 하나 하나가 쌓여 우린 자신의 자화상에 빠져 있던 빈틈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미처 시선을 돌리지 못했던 사람과 풍경에 다시 눈길을 돌리게 된다.

그제야 우린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 외면해서는 안 될 것들, 그리고 반드시 사랑해야하는 것들, 그리고 후세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린 너무도 바쁘게 살면서 그 때문에 도리어 너무도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을 담아내는 풍경화 하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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