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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검사' 잡는 사냥꾼은 어디서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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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검사' 잡는 사냥꾼은 어디서 뭐하나?

[親Book] 루퍼트 버틀러의 <게슈타포>

게슈타포와 한국의 공안 검사들

199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가끔 베를린 관광 가이드로 나서곤 했다. 나는 사실 타고난 역사 관광 가이드이다. 어릴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특히 온갖 역사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넋을 놓고 방송을 보곤 했다.

그런데 베를린 중심지는 세계사의 현장이다. 특히 동서 베를린을 갈라놓던 브란덴부르크 문과 바로 그 옆의 제국의사당 그리고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거리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나폴레옹 황제, 헤겔과 마르크스, 아인슈타인과 헬름홀츠, 로자 룩셈부르크와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과 소련군 최후의 전투, 미소 냉전과 베를린 분단, 그리고 독일의 재통일에 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현장이다.

히틀러가 최후의 항전을 독려하다 자살한 지하 벙커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오늘날에는 유태인 600만 명 학살 기념 조형물이 그 땅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히틀러 지하 벙커 바로 옆에 나치의 게슈타포 및 친위대 본부 건물이 있었다. 역시 연합군 폭격으로 지상 건물은 폐허가 되었지만 지하의 감옥과 고문실은 그 형체가 일부 남아서 오늘날 "테러의 현장(Topography des Terrors)"로 지정되어 관광객에게 전시되고 있다.

나는 베를린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을 게슈타포/친위대 유적으로 안내하곤 했다.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이것을 "예상 밖의 관광"으로 매우 반겼는데, 왜냐하면 한국에서 발간된 베를린 관광 안내서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 때 철저히 폭격당한 베를린이 그렇지 않은 파리와 프라하 등 여타 유럽 도시들에 비해 볼 것이 없다면서 기껏 베를린 분단과 재통일에 관한 것들만 소개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국의 법조계에서 일하는 분들이라고 소개받은 나이 예순이 넘은 말쑥한 노인들을 안내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브란덴부르크 문과 제국의회 관람 이후 게슈타포/친위대 유적으로 안내했는데, 이상하게도 상당수 관광객이 관람을 포기한 채 아예 관광버스에서 하차조차 않으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공안 검사로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 그 관광객 그룹에 있었다. 속이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 <게슈타포>(루퍼트 버틀러 지음, 이영래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 ⓒ플래닛미디어
무릇 모든 독재 정권은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비밀경찰 조직을 두게 마련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살았던 우리 세대가 늘 중정 또는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숨죽였던 것처럼,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는 누구나 게슈타포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게슈타포와 친위대는 독일뿐만 아니라 독일군이 점령한 모든 유럽국들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유태인과 슬라브인의 대량 학살을 진두지휘하였으며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와 러시아,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레지스탕스와 저항 세력을 색출하여 고문하고 처형하는 공포 정치의 대명사였다.

그렇지만 루퍼트 버틀러의 <게슈타포>는 게슈타포 및 친위대의 흥망성쇠에 관한 체계적 역사서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영국인 버틀러는 그보다는 히틀러의 뮌헨 쿠데타에서 시작되어 그의 자살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의 TV 드라마처럼 생생히 그린다.

이 책에서는 나치의 게슈타포 및 친위대가 헤르만 괴링(나중에 제국공군 원수가 되는)에 의해 언제, 어떻게, 무슨 동기로 창설되어 히믈러, 하이드리히, 아이히만과 같은 인물들에 의해 어떻게 괴물로 성장하였는지를 생생한 다큐멘터리 사진들 및 기록물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몰락 과정에서 그들이 어떻게 암살당했는지(하이드리히), 자살했는지(히믈러), 전범 재판을 받았는지(아이히만)도 생생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밀고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 누가 안네 프랑크'를 밀고했을까?

이 책의 157쪽에 나오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자.

나치 점령 하의 네덜란드 유태인들은 유난히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네덜란드에 살던 유태인의 약 70퍼센트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책은 1944년 8월 4일 게슈타포의 지휘를 받는 경찰이 암스테르담 운하 근처의 공장 뒤 은신처를 급습하여 안네 프랑크의 가족을 비롯해 그곳에서 2년간 숨어 지내던 유태인 8명을 체포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안네 프랑크는 이 은신처에 숨어 지내는 동안 일기를 썼다. 유일하게 체포를 면했던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는 경찰이 은신처 바닥에 버렸던 그 일기장을 나치의 패퇴 이후에 그 은신처에서 발견하였다. <안네의 일기>로 알려진 그 일기에는 사춘기 소녀가 느끼는 여러 감정과 함께 은신처 생활의 지루함, 굶주림, 긴장감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녀가 쓴 "이 모든 안 좋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이 선하다고 믿는다"는 부분은 널리 인용된다.

나는-그리고 대다수 독자들은-안네 프랑크가 죽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몰랐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안네와 그 언니는 독일의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안타깝게도 나치의 패망을 불과 두 달 앞둔 1945년 3월 발진티푸스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지금까지도 안네 프랑크의 주변 인물 중 과연 누가 그 은신처를 게슈타포에 알려주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게슈타포는 광범위한 협력자 네트워크를 운용했는데 나치는 패퇴하면서 그 모든 서류를 파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게슈타포에 협력한 자들의 명단이 레지스탕스에 입수된 경우도 있다.

1943년 초 덴마크의 레지스탕스 운동은 게슈타포의 체포와 심문으로 거의 붕괴 직전에 있었는데, 그들은 필사적으로 런던으로 비밀 무전을 보내 게슈타포의 덴마크 지부를 폭격해달라고 요청했다. 1943년 3월 21일, 영국에서 이륙한 20대의 모스키토 폭격기 중 일부가 투하한 폭탄이 다행히 게슈타포 건물에 명중했다.

그 바람에 지하 감옥에 갇혔던 많은 레지스탕스 요원들이 탈출에 성공하였다. 도망치던 이들 중 한 사람이 건물 바닥에 마구 흩어져 있던 색인 카드들을 우연히 주워서 도망쳤는데, 나중에 그것이 게슈타포에 협력한 덴마크 사람의 명단으로 밝혀졌다. 덕택에 그 협력자들은 전후 반역자 재판에 회부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안네 프랑크를 밀고한 네덜란드의 게슈타포 협력자들, 그리고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유태인과 레지스탕스의 대량 체포(나중에 모두 학살당한)를 도왔던 게슈타포 협력자들이 누구인지는 거의 대부분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리옹의 도살자, 미군의 보호 하에 남미로 도주

1991년 가을, 프랑스는 한 늙은 나치 전범의 죽음으로 시끌시끌했다. 90세가 넘은 그 전직 게슈타포/친위대 장교의 이름은 클라우스 바르비. 그는 1942년 리옹을 점령한 게슈타포의 젊은 친위 장교였으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조직에 게슈타포 밀고자들을 침투시키고 레지스탕스 요원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하여 그 조직들을 분쇄하였다.

또 그는 1944년 4월 6일, 한 유태인 어린이집을 불시에 급습하여 3세에서 13세까지 총 41명의 유태인 어린아이들과 10명의 유태인 직원(5명은 여성)을 체포하여 그대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보내 버렸다. 이 사건으로 비시 정권 하의 프랑스 전역에서 부모들은 불안에 떨었으며 바르비는 '리옹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치의 패망 이후 그는 독일에서 체포되었는데 하지만 미국 방첩대(CIC :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전신)는 오히려 바르비의 치안 유지 기술과 반공주의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보호하였다. 미군 방첩대의 보호 하에 있던 바르비는 가족과 함께 볼리비아로 도망쳤고 볼리비아의 친미 독재 정부를 위해 일하며 가명으로 시민권까지 받고 편하게 살았다.

1971년 나치 사냥꾼들이 그의 정체를 밝혀냈지만 볼리비아 정부는 자국 시민이라며 그의 인도를 거부했다. 더구나 프랑스 정부 역시 악명 높은 이 나치 전범의 송환에 열성적이지 않았다. 1970년대 프랑스의 존경받는 직위에 있던 전 나치-비시 정권 협력자들이 더러운 과거가 밝혀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치 사냥꾼들의 끈질긴 압력에 바르비는 프랑스 정부에 인도되어 1983년 법정에 섰다. 이미 80대 노인이었던 그를 법정에 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아직 살아 있던 희생자들은 그의 죄를 증언했다. 그렇지만 그는 냉담한 눈빛으로 그 자신을 위한 어떤 변호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도 않았고, 협력자들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가 철저한 침묵 속에 1991년 감옥에서 숨지자 프랑스의 전 나치 협력자들은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나 숨을 돌렸다.

유태인 가스 학살과 '합리성'의 한계

유럽의 18세기와 19세기는 합리성의 시대였다. 데카르트와 볼테르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명하였다. 독일의 칸트와 헤겔, 괴테와 베토벤 역시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 과학과 기술, 문학과 예술이 인간을 무지와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와 평등을 이루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역시 프러시아-독일 관료주의의 합리성을 굳건히 신뢰하였다.

그렇지만 제1차 세계 대전과 그에 이은 제2차 세계 대전은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이 맥심 기관총과 독가스를 개발하여 대량 살육의 '광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은 프러시아-독일의 전통적인 깨끗하고 투명한 합리적 관료주의(그 정점에 바로 독일 군부 및 게슈타포/친위대가 있었는데)가 수천만 명의 유태인과 슬라브인, 그리고 온갖 저항 세력을 살육하는 '합리적 살인 기계'로도 잘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후 독일에서 '도구적 합리성'과 '소통적 합리성'을 구별하고 전자를 폭압과 자본주의에, 후자를 민주주의와 인간 해방에 연결시키는 하버마스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으로,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합리성과 이성 그 자체를 폭압과 폭정에 직결시키는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합리적 관료주의에 기반을 둔 나치의 광기를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루돌프 아이히만이다. 아이히만은 게슈타포/친위대 대장인 히믈러와 하이드리히가 제시한 '유태인 문제의 최종 해법'을 위한 과학적, 기술적 해법으로 독가스를 이용한 대량 학살을 제안했고 그 실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전형적인 고지식한 프러시아 관료였으며, 그의 전범 재판을 지켜본 방청객들은 그가 "놀라울 정도로 정상적인"인 인간이라고 묘사했다.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가 이스라엘의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1961년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에 처해진 그는 재판 과정에서 대량 학살의 관료적 실무 절차를 맡았을 때와 비슷한 행정적 정갈함과 고지식함, 합리성(도구적 합리성)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귀족주의 독일 장교들의 히틀러 암살 시도 : '발키리 작전'

2009년 1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브라이언 싱어의 미국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톱스타 톰 크루즈는 조국과 국민을 위하는 충성스런 장교인 강직한 성격의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의 역할을 맡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영화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평상시 극장에서 즐겨서 영화를 보지 않으며, 더구나 톰 크루즈가 나오는 종류의 스릴러 영화라면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TV 또는 케이블 방송으로 나중에 싸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다 그런 식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전명 발키리>는 지금까지 케이블 방송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

아무튼, 내가 그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영국에서 2004년에 발간되었는데 반해 그 영화는 2008년 말에 제작 개봉된 것으로 보아, 이 책이 시간적으로 더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책은 거의 영화 시나리오 수준으로 상세하게 실제 일어난 히틀러 암살 사건의 인물과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혹시 그 미국 영화의 시나리오가 이 책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 글의 독자들은 영화와 이 책을 한번 비교해 보기 바란다.

한 가지 내가 여기서 첨언하고 싶은 것은 나치당과 독일 장교단 간의 뿌리 깊은 애증 관계이다. 나치당의 공식 명칭은 민족사회주의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Arbeiter-Partei)이다. 그 명칭만 볼 때 나치당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분명 일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치당은 1920년대의 발전 과정에서 자신을 핍박받는 가난한 서민들을 대변하는 반(反) 자본주의, 반(反) 금융 자본주의(그 일환인 반유태주의) 정당으로 표방하였다.

특히 1920년대 나치 운동의 성장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돌격대'(SD)와 그 지도자인 에른스트 룀은 실질적인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요구했다. 실제로 나치 돌격대 대원들의 거의 대다수는 몰락한 소시민들과 실업자들, 그리고 갈 곳 없는 제대 장병들이었다. 그렇지만 1933년 집권에 성공한 히틀러는 귀족 엘리트 출신인 히믈러와 하이드리히 등이 이끄는 게슈타포/친위대 조직을 이용하여 돌격대를 해체하고 그 지도자들을 처형한다.

히틀러와 히믈러, 하이드리히는 나치당의 명칭 중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성격은 탄압하고 오로지 당명 맨 앞에 나오는 민족(인종주의적 민족 이론과 결합된)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나치당의 쇼비니즘적 민족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이끌었던 독일의 귀족주의 장교단의 이념, 문화, 전통과 상당 정도 부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비스마르크 시대의 계몽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 장교단의 계몽적 귀족주의 문화와 그리고 독일 대중들의 반자본주의적 정서와 일정 정도 결합된 나치당의 급진적 인종주의는 일정하게 긴장관계에 있었다. 이에 히틀러가 군통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대패배를 계기로 독일군 고급 장교 중 일부가 대규모의 군사 쿠데타 음모(작전명 발키리)를 준비하였다. 계몽적인 귀족적 독일군을 대표하는 최고의 엘리트 장교인 '사막의 여우 롬멜' 역시 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이 밝혀져 죽임을 당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만행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수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나치 독일의 전쟁과 학살을 다루는 이 책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곳곳에서 문장과 사진들을 통해 나치 독일이 자행한 처형과 고문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써나가는 저자의 문장들에서는 전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휴머니즘이 느껴진다. 결코 나치의 만행을 자극적인 흥밋거리로 다루지 않는다. 가령 우리나라에 '백장미단'으로 알려진 숄 자매(소피 숄과 그 오빠인 한스 숄)의 반나치 활동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한국국방안포포럼(KODEF)'이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발간하는 국방 안보 총서의 일부라는 것을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그 포럼은 "21세기 국방 정론을 발전시키고 국가 안보에 대한 미래 전략적 대안들을 제시하기 위해 뜻있는 군, 정치, 언론, 법조, 경제, 문화, 마니아 집단이 만든 사단법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대충 어떤 곳인지 독자들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시리즈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치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유명해진 사진 잡지 <라이프>처럼 역사의 끔찍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현장들에 내재한 뭇 인간들의 고난과 슬픔, 눈물과 아픔까지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특히 식민지 시대의 폭압과 그에 이은 전쟁과 학살의 참화, 그리고 다시 장기간의 군사 독재를 겪은 이 나라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이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먼 유럽이 아닌 바로 이 땅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진 것들임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을 덮으면서 떠오른 한 가지 의문. 왜 우리는 우리의 굴곡에 찬 근현대사에 관하여 이런 좋은 다큐멘터리 책들을 아직까지 갖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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