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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박근혜…그는 '괴물'인가,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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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박근혜…그는 '괴물'인가, '희망'인가?

[박근혜를 말한다] <박근혜의 거울> vs <고성국의 정치in>

"바꾸자!" vs "버티자!"

1년 이상 남았지만 이미 대한민국은 대선 정국이다. 사실상 레임덕 상태를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안팎에서 차기 권력을 향한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몇 개월간 더욱더 노골화할 전망이다. 부산저축은행을 둘러싸고 드러나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 3년간 곪을 때로 곪은 권력 비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질 태세고, 대학생의 등록금 반란에서 나타나듯이 시장에 사회를 맡겼던 그간의 후과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1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바꾸려는 이들'과 '버티려는 자들' 사이에 한판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그 중심에 바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 있다.

차기 대통령 감을 묻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꾸준히 30퍼센트대 중·후반의 지지를 받고 있다. 4·27 재·보선 이후에 야권의 대선 주자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여전히 10퍼센트 내외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오는 대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야권 단일 후보와 양자 대결을 벌인다면 박빙 승부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야권의 사정은 단일 후보는커녕 통합, 연대를 위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권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다는 분석에 선뜻 고개를 젓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박근혜'가 시민들과 만들어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과연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아니, 가능하기는 한가? 이런 질문에 직접적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답변을 시도한 두 권의 책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의 <박근혜의 거울 : 왜곡된 반사 또는 부풀려진 신화>(시대의창 펴냄),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의 <고성국의 정치in : 2012 대선 전망>(미지애드컴 펴냄).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 박근혜'를 보는 두 개의 시각을 또렷이 보여주는 이 책들은 2012년 어떤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판단의 기준점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있게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계기도 마련한다.

'프레시안 books'는 이 책들의 시선이 마주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색다른 자리를 마련했다. 고성국 박사가 <박근혜의 거울>을, 손석춘 이사장이 <고성국의 정치in>을 각각 읽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두 글을 아래에 연속해서 싣는다.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하다. <편집자>


그 거울에 비친 박근혜는 과연 누구인가?

고성국 / 정치평론가


▲ <박근혜의 거울 : 왜곡된 반사 또는 부풀려진 신화>(손석춘 지음,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손석춘은 기자다. 그의 현재 직함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 '진보 대통합 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지만, 내게 그는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기자다.

<박근혜의 거울>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뜨거운 기자 정신이 만들어 낸 책이다.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통령 후보 박근혜의 실체를 파헤치려 한 책이다. 정파적 프레임을 앞세운 이런 저런 '박근혜 론'들 속에서 정작 박근혜의 실체를 제대로 정리, 분석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손석춘의 기자적 문제의식이 만들어낸 책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의 거울>은 박근혜에게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한 번은 정독해야 할 필독서다.

<박근혜의 거울>은 내용의 대부분이 박근혜의 행적과 말로 이루어져 있다. 손석춘은 박근혜의 행적과 말을 시간대별로 추적해 재구성해 놓았다. 미디어 관련 법 파동 당시 박근혜의 행적과 말을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재구성한 부분은 그의 기자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대목이다.

손석춘의 현장 감각은 지금은 역사의 인물이 되고 역사의 현장이 돼버린 과거 정권들과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서술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솜씨 좋게 재구성해 보여주는 우리의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일별하는 것도 재미와 의미를 같이 느낄 흔치 않은 경험일 듯하다.

문제는 그의 '주장'이다. 그는 300쪽 가까운 가볍지 않은 책 전체를 통해 네 가지 주장을 되풀이 한다.

1. 박정희식 경제 성장은 21세기 한국 경제에 가능하지 않다.
2. 박정희와 박근혜는 친 서민 정치인이 아니다.
3.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 아니다.
4. 박근혜는 경제 발전, 선진국 도약, 평화 통일에 적격이 아니다.

다시 말해, 박정희식 경제 성장이 21세기에도 가능하고 박정희와 박근혜가 친 서민적이며 박근혜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고 경제 발전과 선진국 도약, 평화 통일에 적격인 정치 지도자라는 대중적 인식 또는 이미지는 "왜곡된 반사 또는 부풀려진 신화"라는 것이 손석춘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의 '주장'은 박근혜의 행적과 말에 의거에 주장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손석춘이 조사하고 동원한 박근혜의 행적도 박근혜의 말도 또 박근혜의 행적과 말이 행해진 정치 상황도 모두 '맥락'이 있는 법이다. 정치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 속에서 박근혜의 행적과 말을 해석하려면 당시의 정치 상황, 박근혜의 행적, 박근혜의 말이라는 3요소에 대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맥락적 해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 '맥락적 해석'이야말로 객관타당성을 입증할 절대적 기준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정치 상황의 재구성도, 그 속에서 재조명되는 박근혜의 행적도 박근혜의 말도 본질적으로 손석춘의 주관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손석춘이 '사실'이 아니라 '주장'을 펴는 순간 이 책은 손석춘의 '주관'을 '주장'하는 책이 된다.

정치 평론에서 '주관'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며 권장되어야 할 요소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여당은 이렇게 말하고 야당은 저렇게 말하고 있다'는 식의 뉴스 브리핑은 얼마나 맨송맨송한가? 기자의 리포트와 평론가의 평론이 갈라지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기자는 주관성을 최소화하고 평론가는 주관성을 최대화한다.

평론가는 최소한의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나 기자는 최대한의 사실을 추구한다. 손석춘은 기자인가 평론가인다. 둘 다 명예로운 직업이고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어느 쪽을 선택한들 어떠랴. 그러나 둘 다 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여전히 그를 기자로 보지만 손석춘은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손석춘은 이 책을 "박근혜가 표방하는 가치관과 지향점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떠오른 복지, 주권, 소통이라는 관계에 비춰보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박근혜의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복지, 주권, 소통이라는 자신이 파악한 이 시대의 가치 프레임에 비친 박근혜의 모습이었다. 그가 중요하다고 설정한 가치의 거울에 비춰진 박근혜의 이미지, 박근혜의 표상이었다.

이런 식의 접근은 그것대로 의미 있다. 손석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에게 박근혜가 자신들의 가치 프레임에 맞는 사람인지를 맞춰볼 수 있으므로. 문제는 이런 방식의 접근은 처음부터 정치적 편향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그가 박근혜에게 던진 네 가지 질문은 부정적인 결론이 예정된 질문이었다.

따라서 이 부정적 결론 즉 박근혜는 친서민적이지도 않고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도 아니라는 '주장'은 이 프레임을 채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 그가 프롤로그에 쓴 대구 택시 노동자와의 대화는 민심의 향배를 보여주는 훌륭한 르포지만 여기서 획득한 현장성과 현실감이 "예정된 결론"의 설득력을 높이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그쳤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나는 이 책을 스스로 친박이라 생각하는 분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분들에게는 아마도 이 책의 결론이 마뜩치 않을 것이다. 책 표지에 있는 "왜곡된 반사, 부풀려진 신화"라는 부제만 보고도 얼굴을 찌푸린 분들도 더러 계실 것이다. 표지 사진을 보고 왠지 "불온하다"고 느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분들이야말로 이 책을 꼭 읽기를 권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데 그 정도의 인내심도 발휘하지 못한단 말인가.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좋은 정치를 펼쳐나가게 하기 위해 그 정도의 인내도 하지 못한단 말인가. 흘러넘치는 이념 과잉을 탓하기 전에 이런 시각, 이런 주장이 "객관적으로" 존재함을 여유 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찰적 독서'를 기대한다.

그는 왜 지금 박근혜를 주제로 책을 썼을까?

손석춘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 <고성국의 정치in : 2012 대선 전망>(고성국 지음, 미지애드컴 펴냄). ⓒ미지애드컴
고성국의 <고성국의 정치in>을 받았을 때 문득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언론인 김중배가 '진보적 경제정의실천연합'을 만들자며 몇몇 사람들과 정기적 모임을 주재하던 시절이니 어느새 20년 남짓 흘렀다. 참여연대 창립으로 구현된 '진보적 경실련'을 준비하는 회의에서 본 고성국의 첫 인상은 '맑음'이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건장한 몸의 그가 육식은 전혀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호감은 더 깊어졌다.

아마도 나는 고성국의 인간적 매력에 반한 듯하다. 책 표지를 가득 채운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새 50대 중반인 그는 여전히 동안이다. 참여연대가 창립되고 그를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이따금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첫 인상이 겹친다. 인간적 호감은 지금도 변함없다. 몇 해 전 TV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마주쳤을 때 참 반가웠다. 그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도 굳이 논박하고 싶지 않았을 정도다. 물론, 거기에는 그가 당당하게 정치 평론의 길을 걸어왔다는 대전제가 깔려있다.

인간적 호감이 짙은 사람의 책에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진정성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같은 시기에 박근혜를 주제로 책을 냈다는 '인연', 그러면서 다른 시각을 보였다는 데 날카롭게 주목한 '프레시안 books'의 '권고'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정치평론가로서 고성국의 명성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고성국의 정치in>에서 2012년 대선을 분석한 '판 읽기'에도 공감하는 대목은 하나둘이 아니다. 가령 1987~88년의 대선과 총선을 '정초 선거'로 개념화하고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화 물결이 거대한 변화를 몰아"온 25년이 흐른 지금 "87년 이후 체제의 출현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은 핵심을 찌른다.

야권 연합이 2012년 총선, 대선 승리의 보증 수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대목도 적실하다. 고성국은 야권 연합만 하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고,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셈법이 진보 개혁 세력을 휩싸고 있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옳은 지적이다. 박근혜의 대세론은 야권 연합 한방으로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 않다며, 야권 연합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무사안일을 경계하라는 비판도 시의적절하다.

다만 그 이유를 분석하는 데선 고성국과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의 거울>에서 썼듯이 나도 그처럼 박근혜를 만만하게 보거나 독재자의 딸로 바라보는 일부 진보 개혁 세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처럼 박근혜가 지닌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이나 강점 때문은 아니다.

그 점에서 보면 고성국의 박근혜를 바라보는 눈길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 말은 그의 정치적 분석이 감성적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는 어느 누리꾼이 분석했듯이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합리적으로 정치 현실을 분석하는 장점이 있다. 각을 세워 비판하는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짐작했듯이 내겐 그런 미덕이 없다. 물론, <박근혜의 거울>은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썼다. 하지만 <고성국의 정치in>에 견주면 전혀 중립이 아니다. 그래서다. 마지막 장까지 읽고 책을 덮으며 문득 고성국은 이 책을 왜 썼을까 짚어보았다.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한 비평일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선을 넓혀주는 장점이 있다.

나 또한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해 박근혜 책을 썼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서평을 쓰는 상황에선 정직하고 싶다.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해서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그녀를 주제로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박근혜가 단순히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오늘의 위치에 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성국처럼 그녀를 '신뢰의 프레임'으로 분석하거나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이라는 "참 좋은 가정 환경이자 출신 배경"을 갖췄다고 단언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박근혜와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 언제나 구체적 예시를 드는 고성국이 박근혜의 신뢰나 원칙에 대해선 마땅히 다뤄야 할 대목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이를테면 미디어 관련 법의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흔들린 소신이 그것이다.

육영수를 박근혜와 연관을 지어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의 아내로서 육영수는 김대중-노무현의 아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혜를 누렸다. 생각해보라. 노무현의 아내 권양숙이 청와대에 있을 때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딴 교육 사업이나 장학 사업은 물론, 천문학적 규모의 재단을 설립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정희와 육영수는 그렇게 했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정수장학회'나 '정영사' 따위는 이름부터 반민주적이고 역겹다. 그 뿐인가. 영남대학교 교주가 대통령 박정희이고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이 만들어져 지금도 그 부부의 자녀들이, 특히 맏딸인 박근혜가 대학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특권을 누렸고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유감이지만 고성국은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과거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 독재자의 딸로만 박근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고성국의 명제에 동의하면서도 그 근거에 대해 판단을 달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정치의 과거, 좁혀서 박근혜가 1997년 대선 막바지에서 이회창의 선거 운동원으로 적극 나서며 정계에 복귀한 이후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과거를 찬찬히 톺아보아야 할 이유도 같은 데 있다.

지역 정치, 색깔 정치, 언론 정치라는 한국 정치의 소통 구조, 아니 먹통 구조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과거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단적인 보기가 색깔정치다. 고성국은 놓치고 있지만―아니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박근혜가 노동운동을 대하는 시선은 살천스럽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바라보는 데서 색깔 정치의 과거는 선연하게 표면화한다.

나는 영남 주민들이나 유권자들이 박근혜의 과거를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기대가 얼마나 파국적인 정치 현실을 불러오는가는 책에서 제시했듯이 '이명박 학습 효과'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학습 효과마저 지역과 색깔, 제도 언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쓴 책조차 그 벽에 갇히는 상황을 예상하며 책을 출간하기란 씁쓸한 일이다.

민주당과 야당 연합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차이는 가장 크게 벌어진다. 물론, 고성국이 진보 개혁 세력이 야권 연합을 통해 박근혜와 일대일로 맞붙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야권의 대선 주자 중 박근혜만큼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고성국은 그 해법으로 '플러스알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야권 연합'을 강조하며 '중원'에 주목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중도주의를 폐기하고 진보를 표방한 것은, 그리하여 당의 이념적 위상을 적어도 당론 상으로는 심각하게 좌 클릭한 것은 정치적, 전략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정치를 포기하고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한 그렇다"라고 단언한다. 요컨대 민주당이 "중도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어서 그는 "다른 야당들이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 중심으로 야권 연합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나는 그가 보기에 여전히 현실보다 이념으로 정치를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게 현실일까? 나는 민주당의 '좌클릭'이 현실을 반영한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 다만 책에서 썼듯이 좌클릭의 진정성을 믿지 않을 뿐이다. 야권 연합이 '플러스알파'가 되기 위해서라도 진보 대연합이 절실하다고 제안한 이유다.

고성국은 책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기원하며 마치고 있다. 온전히 그 길에서 그의 맑은 얼굴과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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