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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걸은 당신, 그들의 '고발'을 무서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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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걸은 당신, 그들의 '고발'을 무서워하라!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강정에서 강정을 말하자

망설이다 쓴다.
은근슬쩍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마이뉴스>에서 제주도에 건설하려는 군사 기지와 관련하여 글을 써달라는 연락이 왔다.
고민 없이 쓰겠노라 했고, 썼다.

제주는 이미 평화의 섬이니, 평화롭게 평화를 가꾸었으면 한다는 게 중심 내용이었건만, 글의 일부 표현을 꼬투리 잡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나를 고발하는 게 아닌가.
누가 고발했는지 굳이 밝히지 않겠다. 다 알 테니까.

덕분에 출두하여 화기애애(?)하게 조사에 임했고 몇 달 지나 검찰로부터 혐의 없다는, 짧지만 내게는 결코 짧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

어찌 보면 단순한 해프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뒤로 자빠진다고, 그 찝찝한 심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그 기간 동안 '강정'으로 시작하거나 '해군'으로 시작하는 글, 더군다나 '개'자가 들어가는 글은 물론이고 개만 보면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흔들렸지만 그래도 써야 하니까 이제야 부끄러운 마음으로 쓴다.

강정에 해군 기지가 들어서야 한다거나, 들어서건 말건 나랑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제발 부탁하노니 한 번만이라도 제주도의 남쪽 끝 강정에 가 보시라.

가서, 아름다운 바다와 착한 마을을 둘러보시라. 어느 집이든 좋으니 출출하거나 목이 마르면 "있수과?" 하고 들어가시라. 비록 풍성하진 않겠지만 따뜻하고 소박한 강정의 속마음에 어렵지 않게 다가설 수 있으니 부디 꼭 한번 들르시라.

이왕이면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오시라. 하여 사랑하는 이에게, 어린 자녀에게 대체 이 바다를, 이 마을을 어떻게 하는 게 평화이고, 더불어 사는 삶이고, 아름다운 상생이고, 제주의 미래인지에 대해 본 대로 느낀 대로 조근조근 들려주시라.

시간이 좀 남으면 올레길 7코스에 해당하는 바닷길을 걸어 중덕바당 지나 구럼비에도 다녀오시라. 그 바당이 사라지고 그 바위가 으깨어진다는 생각도 잠시 하시라. 아끈천이나 강정천 맑은 물에서의 탁족도 잊지 마시라. 어쩌면 그 맑고 시원한 일강정 물도 깡그리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보시라.

혹시 바닷가를 걷다가 붉은 색 등껍질을 한, 말똥 냄새가 나는 게('개'가 절대 아니다)가 눈에 띠걸랑, '아, 네가 바로 붉은발말똥게로구나!'하고 눈높이를 맞추시라.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이시라. 미안하다고, 인간이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 강정 마을 인근 바다의 연산호 군락지에서 볼 수 있는 분홍바다맨드라미. ⓒ녹색연합

얼마 전 그의 동료로 추정되는 벗들이 인간들이 설치한 통발 속에서 떼죽음 당한 사실을 그도 모를 리 없을 터이니 그대가 그래도 인간이라면 무릎 꿇고 최대한 몸을 낮춰 우선 생명에 대한 예부터 갖추시라.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0만 년 전에 처음으로 한라산이 불을 뿜었고 500만 년 전에 소위 인간 비슷한 종족이 지구상에 등장했음을 알고 있다면, 저 붉은발말똥게의 시조에 해당하는 투구게가 지상에 나타난 시기가 4억 혹은 5억 년 전이었음도 기억하시라.

다시 말해 당신이나 나보다 무려 3억9500만 년이거나 4억9500만 년 전부터 이 산과 저 바다가 만나는 바로 여기가 그네들의 삶터였고 그 주인이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시라.

글을 마치려니 새삼 그때가 떠오른다.
지난번엔 명예 훼손이었지만 이번엔 누가 무슨 죄명으로 고발할 건가?
없을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있다. 붉은발말똥게다.

이번엔 여린 뭇 생명의 오랜 삶터를 무자비하게 파헤치거나 짓밟아 몰살시키려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서 그에 동조한 죄로 나를 고발할 것 같다. 중덕바당도 구럼비도 아끈천도 강정천도 붉은발말똥게의 증인으로 나서서 시시콜콜 죄상을 까발릴 것만 같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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