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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군 기지에 쓸 헛돈을 천안함에 썼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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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군 기지에 쓸 헛돈을 천안함에 썼더라면…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강정, 다시 평화 쪽으로

제주도 서귀포 강정 마을에 해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놓고 현지 주민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갈등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주민의 반대에도 정부는 해군 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놓고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프레시안>에 약 8회에 걸쳐서 글을 연재한다.

"식게밥 노나 먹는 일이 아주 어서져부런."

이 말을 할 때 제주도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침통한 눈빛을 보입니다. 강정이 고향인 한 교수는 수인사 나눈 지 얼마 안 된 초면의 필자 앞에서 급기야 눈물을 쏟았습니다.

제주에는 육지와 다른 혼례 풍습이며 장례 절차와 함께 독특한 제사 풍습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식게밥 나누기'가 그것입니다. 제사 때마다 친척들이 모여 식게밥(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담 너머 이웃에 두루 돌리는 전통에 기대어 제주 공동체는 피차 살아가는 힘을 부조해왔습니다. 혈연 공동체가 일상을 안위해 주는 그 힘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일 것입니다.

이 사소하고도 유구한 평화가 어업권 보상, 토지권 보상, 기지 건설에 따르는 경제 규모 확장이라는 해군의 그물에 포획되었습니다. 각기 이해에 따라 주민 간 다툼이 일어나고 편이 갈라지게 만드는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었습니다. 그 그물을 벗어나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주민들의 4년에 걸친 몸부림을 현재 정치권은 지켜만 보고, 제주도백은 모르쇠하고, 사법부는 무시하고, 경찰은 연행으로 답하는 중입니다.

식게밥 나누기가 사라진 강정 마을에는 부끄러운 수군거림이 오갑니다. 한 마당 안에 살던 부자가 의견이 갈려 반목하고, 연락을 끊고, 길에서 마주친 형제나 숙질이 외면하며 지나치는 일은 예사입니다. 마을 주민 일부를 현장 노동자로 고용하여 공사를 저지하는 주민들과 맞닥뜨리게 하는 건설 업체의 야만 앞에 주민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공황 상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강정은 이미 전장인 셈입니다.

공사 저지를 이유로 지난 4월 6일 연행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제주 출신 영화평론가 양윤모는 오랜 단식으로 기진한 몸임에도 이에 분노하며 "400여 년 거기 살아온 주민들을 어떻게 존중하지 않고, 없는 사람들처럼 무시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개인을 경시하고 가족을 해체하고 마을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이념, 종교, 자본, 군사 동맹은 악입니다.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설계되는 국가의 미래 역시 공허합니다.

우리도 평화의 섬 하나 지킬 수 있지 않은가

21세기 지구촌을 이끌어가는 명제가 '환경, 문화, 평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정부와 해군과 제주도 당국의 완력을 국토의 외딴 섬마을 강정 주민들이 홀로 견인하는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은 '부당하다'입니다.

정부가 대양 해군 정책을 철회함에 따라 강정 해군 기지를 건설해야할 당위성은 현저히 줄었습니다. 미군의 동북아 전략 기지 확보와 해군의 세력 확장이라는 목표에 제주가 희생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천안함 침몰 당시 각 언론들은 우리나라 해군이 소유한 군함과 전력 무기들이 장병들이 평소 위협을 느낄 만큼 낡았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된 기사들에 대해 별다른 반박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해군은 모쪼록 강정 기지 건설에 투자할 거액의 예산을 해군 내실을 기하는 데 사용하기 바랍니다.

강정 해군 기지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 수행 기지로 사용될 것이라는 공공연한 사실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합니다. 미군 기지화 후 받아들여야 할 예측 가능한 사회적 역기능들 또한 오키나와 주민들이 겪은 선례를 통해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전쟁 기지가 된 강정을 품은 채 제주에서 평화를 운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뉴시스

평화는 다음과 같은 풍경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1.2킬로미터 해안이 한 판 현무암으로 되어있는 구럼비 해안은 제주에서도 강정뿐입니다. 이 검은 현무암 판이 끝나는 바다 쪽 난간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를 타고 은어 떼가 강정천으로 오릅니다. 올름은어입니다. 4, 5월에 어린이들이 올름은어 뛰어오르는 몸짓을 응원하고 강정 바다에 고래 떼 와서 노니는 광경을 바라보며 환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다와 강정천이 만나는 기수면에는 멸종 위기 생물인 붉은발말똥게가 계속 살아가야 하며 무엇보다, 강정이 왜 해군 기지로부터 지켜져야 했는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어른들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 아이들의 혈관에 전쟁보다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 시급했으며, 돈보다 공동체 회복이 중요했다는 말을 흘려 넣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제주도 당국은 지금이라도 주민 10명 중 4.3명이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는 지역 언론이 발표한 주민 건강 조사 결과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서적 안정을 잃은 주민들을 보살피는 일을 정치적 계산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4·3을 겪으며 처절한 공동체 파괴를 경험하고 60년에 걸쳐 가까스로 그 상처를 치유해온 제주도민들은 스스로 정체성을 '평화의 섬'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결정을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랜 고통을 통과한 공동체가 만들어낸 고상한 가치입니다.

중앙 정부와 다수의 권력자들 횡포에 눌려 침묵하는 제주 도민들을 열강의 세력 다툼 속에 희생으로 던져놓아서는 안 되며, 제주도를 미사일 과녁으로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물론 안 됩니다.

이미 중국에 편입된 지 오래 된 티베트의 독립 운동이 세계인들에게 지지받고 존중받는 까닭은 티베트 인들이 평화를 기치로 국권 회복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땅인 티베트를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고 순례하는 현상 또한 티베트 인들의 지향에 마음을 기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외세의 전략적 요충지 노릇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제주 역시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해군 기지를 건설하지 못하여 당할 수 있는 위협에 대한 대안을 저에게 묻지 마십시오. 국민의 현재를 안위하고 미래를 지키는 대안 만들기는 우리 사회가 낳고 기르고 교육하고 전문인으로 대우해주고 있는 정치인과 외교관과 군사 전문가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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