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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읽지 않고 잘난 척하는 넌 누구냐!"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앨버트 후라니의 <아랍인의 역사>

이 책은 한마디로 필독서다. 세계 문명사의 흐름과 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알고자 하는 이라면 앨버트 후라니의 책에서 무수히 값진 자양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레바논 출신의 영국인 앨버트 후라니(1915년생)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현대 중동사를 강의했으며, 미국역사학회에서 이슬람 관계 서적에 그의 이름을 딴 상까지 제정했을 정도로 그의 학문적 명성은 국제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

<아랍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Arab Peoples)>(김정명·홍미정 옮김, 심산문화사 펴냄)는 앨버트 후라니가 76세였던 1991년에 나왔고 원서가 주까지 합해 550쪽이며, 번역서는 900쪽에 이르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워낙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써내려가 독자로서 읽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아니 도리어 무척 흥미롭고 속도감 있다. 책은 나오자 곧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우리에게 번역 소개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0년이었으니 아랍, 이슬람 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과 지식의 수준은 너무도 뒤떨어진 셈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고 난 이후, 중동 그리고 이슬람 지역에 대한 국제적 패권의 향방은 미국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했지만 그 이전을 따져보면 영국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영국 역사가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영국이 수집하고 축적해 놓은 이슬람에 대한 역사 자료는 제국 관리의 측면에서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식의 박물학적 풍부함이나 역사 전체를 거침없이 조망하는 힘은 앨버트 후라니 개인의 탁월한 성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나이 70대 중반을 넘는 때의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놀랍다.

이슬람 문명권에서 학자의 위상

▲ <아랍인의 역사>(앨버트 후라니 지음, 김정명·홍미정 옮김, 심산문화사 펴냄). ⓒ심산문화사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게 되면 역사 지식을 습득하고 정리해낸다는 것이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좀 더 파고들면, 이러한 역사관이나 지적 탁월함은 다름 아닌 이슬람 문명의 전통인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 된 이슬람 역사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문명론자라고 할 수 있는 14세기 말엽의 인물 이븐 할둔도 이슬람 역사에서 '학자'에게 주어진 높은 위상의 흐름 속에서 나온 존재다.

이슬람 문명권의 서쪽을 가리켜 '마그리브'라고 하는데 그 끝에 위치한 오늘날의 튀니지 출신의 이븐 할둔은 역사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연구에 이름을 남겼다. 권력의 쇠퇴는 그 안에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본 할둔의 역사관은 역사 교체의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몽골의 후예이자 이슬람 제국의 팽창에 힘을 쏟았던 티무르와 만나기도 했는데 이 만남은 그에게 역사를 사고하는 물리적 공간 자체의 넓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할둔보다 앞서 이슬람 문명권 거의 전체와 인도를 여행하고, 중국까지 가려 했던 14세기 중반의 세계적 여행가 이븐 바투타 역시 튀니지 옆에 있는 모로코 출신으로 법을 공부한 학자다.

"울라마"라고 불린 학자는 이슬람 문명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되어 있다. 신의 뜻을 해석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고 정리하며 다시 해석해내는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이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유지는 이슬람 문명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결정적 기반이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인물에 대한 전기 연구도 따라서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된다. 그가 어떤 가계에서 태어났으며 무엇을 공부했고 누구와 만나 교류했으며 어떤 성취를 했는지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일은 이슬람 사회의 지적 자산을 불려나가는 기본이 되었다.

이슬람이 7세기 이후 북아프리카까지 석권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쥐게 되고 제국의 안정을 꾀하면서 수백 년에 걸쳐 그리스 로마 문명의 자산을 지속적으로 번역하고 이를 통해 이슬람의 과학, 철학, 문학을 발전시켜나간 것은 인류 문명의 보고를 지켜내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그리스 문명의 번역 작업은 "지식의 출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통해 이슬람 문명의 내면을 살찌웠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근대적 각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슬람 문명과 접촉하면서 깨우친 충격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아말감

그런데 르네상스 이전에도 이미 안달루시아라고 불린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의 중심지역 코르도바는 유럽 북부의 지식인, 상인들이 찾아와 지적 갈증과 물적 교류의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슬람은 유럽의 중세와 근대에 일종의 문명사적 젖줄이 되어 준 셈이다. 지중해에서 기존의 로마 제국이 누렸던 패권 체제가 더는 유지되지 못했지만 이슬람의 등장은 지중해 문명권을 보다 다양한 코즈모폴리턴 구조로 전환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그 자신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제국 사이의 긴장과 대립, 그리고 충돌과 상호 정복의 반복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 중심주의의 시각에서 아랍 또는 이슬람을 멸시하는 시선이 얼마나 역사적 진실과 어긋난 것인지를 우리는 이 시기의 역사적 현실에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이슬람의 종교와 지적 전통은 문명 교류학을 세워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정수일이 <문명 담론과 문명 교류>(살림 펴냄)에서 지적했던 바처럼 기독교, 페르시아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의 복합체 또는 혼합체인 "아말감(amalgam)"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앨버터 후라니의 책을 읽으면서 아랍의 이슬람 확장 이후 이 문명에 신학적 논쟁과 문학의 발달, 의학과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는지를 주목하게 되며 정치학과 철학, 이상적 세계를 이뤄나가는 여러 가지 논쟁이 치열하게 펼쳐져왔음도 아울러 알게 된다. 이슬람 문명권은 "책의 문명"이며 이는 아랍어로 써진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 경전 쿠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식의 체계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앨버트 후라니의 책은 출간 당시 "전근대적 후진성과 테러"라는 이미지로 왜곡된 아랍 세계에 대한 서구의 이해에 도전과 충격을 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 역사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슬람이 성취한 문명사적 자산도 함께 나눌 수 없고, 이슬람 세계가 서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구 열강과 이슬람 국가들의 대립 또는 동맹의 구조를 알기는 어렵다.

아랍인의 역사, 그 전체의 얼개

<아랍인의 역사>는 이슬람이 아랍에 중심 거점을 둔 7세기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정치권력의 핵심인 칼리파의 거대한 제국으로 형성되어갔으며 그로써 애초에는 무함마드를 지도자로 한 소수파의 종교 운동이었던 이슬람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문명 체계로 정리되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이슬람 문명권의 도시, 종교, 학문, 문화 등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대목들은 앨버트 후라니의 지적 깊이와 폭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이슬람 문명의 구체적인 진상을 학습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또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한 오마이야 왕조,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압바스 왕조 멸망 이후 성립한 이스탄불 중심의 오스만 제국의 발전 과정과 유럽의 제국주의가 이슬람권을 공격하면서 오스만제국의 해체, 식민지 체제, 아랍 민족 국가의 형성, 그 후의 혼란과 갈등 등의 시기에 걸쳐 종횡무진으로 묘사하고 분석해주고 있다.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오늘날의 이슬람 체제와 문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면, 한국 사회가 그간 지녀온 아랍에 대한 서구 중심의 시각과 이미지는 깨끗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븐 바투타보다 앞서서 세계 여행의 기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의 쿠빌라이까지 만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 문명권의 교량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그의 <동방견문록>에서도 도처에 이슬람의 신자 무슬림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역사적 조건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낭 브로델이 이슬람은 "문명의 다리"라고 한 것은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이슬람 자체의 문명사적 가치를 다소 소홀히 여기는 느낌을 주는 측면이 있는 한편, 이슬람이 문명의 교류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설명한 결과라고 하겠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이슬람 문명의 기둥이 된 아랍어는 그리스어가 주류였던 동방 기독교권 일부에서는 국제어처럼 쓰였고 1492년 이슬람이 스페인에서 축출되기 전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은 아랍어를 배워 철학과 과학, 문학의 지적 전통을 세워나갔으며 페르시아어가 주류였던 이란에서조차 아랍어는 종교와 법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슬람 경전 쿠란이 아랍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아랍어는 신성한 언어로 떠받들려져 아랍어 발전은 엄청난 문명사적 발전의 기본 수단이자 정보 저장의 창고가 되었던 것이다.

아랍에 대한 우리 인식의 후진성

앨버트 후라니는 이러한 아랍 또는 이슬람 문명권의 수준과 기여에 대한 인식이 바로 세워진다면 서구와 이슬람권의 관계가 보다 우호적으로 진전되고 아랍의 보다 활력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조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에드워드 사이드가 후라니를 "오늘날 가장 탁월한 중동사학자"라고 말했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모든 중동 출신의 인문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바람일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책이 그의 <팔레스타인 문제(The Question of Palestine)>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1991년 원저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2002년판을 번역한 이 책에는 중동사학자 말리즈 루즈벤의 후기가 실려 있다. 2001년 9·11 이후의 세계를 전제로 한 이 후기에는 오늘의 국제 정세와 앨버트 후라니의 책이 서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읽혀질 수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랍의 현실에 접근하는 미국과 기타 서방에 대한 인식 변화의 촉구로 읽혀진다.

아랍, 중동, 이슬람, 북아프리카, 이런 단어들과 그 실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식은 여전히 수렁에 빠진 상태다.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중동 건설 붐"이라는 지난 시기의 경제적 과실은 기억하면서 이들과 어떻게 진실로 만날 수 있을 것인지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이슬람 문명이 가지고 있는 무진장한 보고에 대해서도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회에 독파해 보라!

앨버트 후라니의 <아랍인의 역사>를 이번 기회에 한번 손에 들고 독파해 보시라. 세계적 현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절로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마스쿠스, 카이로, 바그다드, 말무크, 이드리시드, 알모라비드, 샐주크, 사파비드, 이런 도시와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이슬람 신자들은 자신을 신의 창조물과 신을 섬기는 종으로서만이 아니라 신의 친구, 신의 벗(왈리), 또는 반려자로 여기고 있다. 쿠란에 쓰여 있는 대로.

"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여, 당신은 현세와 내세에서 나의 벗, 반려자이십니다."

신을 벗 삼아 사는 이들의 정신 세계가 궁금하지 않는가? 인도의 접경 지대에서부터 스페인 남부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세운 문명의 제국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싶진 않은가? 이스탄불이라는 거대한 동서 교류 현장의 역사적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고 싶진 않은가?

이슬람이 어느새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는 길을 찾고 싶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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