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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똥 덩어리들아, 내가 이래도 우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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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 똥 덩어리들아, 내가 이래도 우익이냐!"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10년은 오웰이 마흔여섯이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 60주기가 되는 해였다, 그래서 아직까지 한 번도 번역이 되지 않았던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과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가 나란히 출간 되었다.

오웰은 <1984년>과 <동물농장>이 워낙 유명해서 우리들에게는 소설가로만 각인되고 있지만, 그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에세이 작가였으면서 위대한 영국의 마지막 에세이스트로 평가 받는다. 또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기인 <카탈로니아 찬가>(정영목 옮김, 민음사 펴냄)는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홍수원 옮김, 두레 펴냄),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서찬석 옮김, 책갈피 펴냄)와 함께 보고 문학의 3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나는 여기에 시인 김수영이 질투로 극찬했던 찰스 라이트 밀스의 <양코배기야, 들어봐라!>(윤구병 옮김, 장백 펴냄)를 더하고 싶다.

이번 독후감의 대상이 되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1936년 오웰이 '레프트 북클럽'이라는 좌익 출판문화 단체로부터 영국 북부 탄광 지대에 대한 르포 집필 건의를 받고, 서른세 살 때 쓴 르포다. 오웰은 청탁을 받고 냉큼 탄광 지대로 달려갔는데, 그에게는 남다른 보고문학적인 감각과 아울러 현장에 대한 친화력이 있었다.

▲ <위건 부두로 가는 길>(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앞서 언급했던 <카탈로니아 찬가>도 그랬거니와, 그의 여러 에세이들은 유랑 노동자들과 호프 열매를 땄던 경험이나 구빈원과 유치장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하층민이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때문일까? 그와 이튼 칼리지를 함께 다녔던 학우들은 오웰을 가리켜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 신에 가장 근접한 사람"(폴 존슨,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이문희 옮김, 이마고 펴냄), 221쪽)이었다고 하며, "성인의 자질"(219쪽)이 있었다고도 한다.

오웰이 어떤 현장을 즐겨 찾았고 그 현장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게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은 오웰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웰의 약력을 잠시 살펴봐야 한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영제국의 인도 식민지를 관리하는 식민 관료였고, 그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에서 태어났다. 이후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귀국한 그는 왕실 장학생으로 상류층 명문인 이튼 칼리지에 다녔으나 졸업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다. 대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하여, 5년간 버마(미얀마)에서 경찰 간부 생활을 한다. 그때 나이가 19~24세.

오웰의 식민지 경찰은 물론이고 식민주의 전반에 대한 염증은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에 뛰어나게 기술되어 있는데, 그는 제국주의의 충견 노릇을 하는 자신의 양심을 무마하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낸다. 그러고 나서 속죄의 의미로 3년간 부랑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경험이 자전 소설 또는 수기로도 분류되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로 정리되었으니, 그것이 오웰의 첫 책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한 귀퉁이에는 그가 대우 좋은 식민지 경찰 간부직을 팽개친 심경이 꽤 자세하게 피력되어 있다.

나는 5년 동안 압제의 일원으로 복무했고, 그만큼 양심의 가책이 컸다. 잊히지 않는 숱한 얼굴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 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다. 잘못된 이론일지 모르나 압제자가 되어본 사람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200~201쪽)

제국주의의 하수인 시절을 속죄하고자 3년간의 부랑자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버마가 아닌 자기 나라 안에, 버마인과 같은 '내부 식민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이 영국의 노동자 계급에게로 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내가 노동 계급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에게서 유사성을 발견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의에 당하는 상징적 희생자였으며 버마에서 버마인들이 하는 역할을 영국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마에서는 문제가 비교적 단순했다. 백인이 위에 있고 유색인은 밑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유색인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영국에 와보니 압제와 착취를 찾아보기 위해 버마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영국에, 바로 자기 발밑에, 다르긴 해도 어느 동양인 못지않게 비참한 생활을 하는 밑바닥 노동 계급이 있었던 것이다. (201쪽)

오웰이 있고자 한 현장은 피압제자·노동 계급·밑바닥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장에 대한 친화력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오웰 스스로가 실토하고 있는 바, 부랑 생활을 통해 "'하류 가운데 최하류' 사이에, 서구 세계의 밑바닥"(206쪽)에 있게 되기 이전에 그는 "노동 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고, "실업에 대한 통계를 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과 속죄의 부랑 생활을 하면서 최하층 계급과 뒹굴기 이전에 그런 것들은 "내 경험 밖에 있는 일"이었다(202쪽).

오웰이 속한 계급은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밑바닥"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영국 계급 체계 속에서 하위에 속한다는 것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까닭은 계급 체계를 "돈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이상 164쪽)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계급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 진전이 있을 수 없다. (…) 직시해야 할 사실은, 계급 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다. 여기 중산층의 전형적인 일원인 내가 있다. 내가 계급 차별을 없애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거의 모든 것은 계급 차별의 산물이다. 나의 모든 관념은(선악에 대한, 유쾌와 불쾌에 대한, 경박과 경건에 대한, 미추에 대한) 어쩔 수 없이 '중산층'의 관념이다.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 명예에 대한 나의 감각, 나의 염치, 나의 식사예절, 나의 어투, 나의 억양, 심지어 나의 독특한 몸동작도 전부 특정한 훈육의 산물이며, 사회 위계의 윗부분에 있는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다. 그런 사실을 이해할 때,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217쪽)

사회적 계층과 경제적 계층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중산층 가운데 상당수가 서서히 프롤레타리아로 변해가고 있"(301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프롤레타리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노동 계급에 속하지만 내 자신을 부르주아의 일원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여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303쪽)이다. 뿐만 아니라, "중산층인 사람이 몰락하여 최악의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해도 노동 계급에 대한 매몰찬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으며, 이런 사람들은 끝내 자신이 노동 계층이라는 것을 수용하기보다 "쉽사리 파시스트 정당에 동조"(303~304쪽)하게 된다.

이 책은 1937년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고, 연이어 벌어질 제2차 세계 대전을 목전에 두고 출간됐다. 하지만 중산층의 계급적 위선은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들어맞으며, 경제적 양극화의 밑변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정치적으로는 도리어 보수화되는 중산층의 역설을 꿰뚫어 보여 준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내용이나 주제가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탄광 지역에 대한 사실적인 보고문이라면, 2부는 애초에 오웰이 맡았던 임무와 전혀 다른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에서 논란이 되었던 2부에서 오웰은 "계급이라는 지독히 까다로운 문제"(163쪽)를 규명해 보겠다면서, 사회주의자들이 육체 노동을 이상시 하는 경향 탓에 실제로는 광부나 부두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수많은 사무원과 점원들이 자신을 프롤레타리아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아무튼 프롤레타리아는 육체 노동자뿐인 듯 대하는 잘못된 습성은 버려야 한다. 사무원, 엔지니어, 출장 판매원, '영락한' 중산층, 마을 식품점 주인, 하급 공무원, 그 밖의 온갖 애 매한 사람들에게 바로 그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란 사실을, 그리고 사회주의란 건설 인 부나 농장 인부만큼이나 그들에게도 바람직한 체제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305쪽)

또한 이 책의 2부는 프롤레타리아의 친구인 척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노동 계급을 경멸하는 지식인 사회주의자들의 이중적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이들은 일상어와 동떨어진 전문 용어나 정·반·합이라는 트릭 그리고 정통(러시아)을 내세우면서, 토요일 밤 아무 선술집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식인 사회주의자들은 "삶에 대한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완전히 버리"거나 "나를 철저히 변화시"(217쪽)키기보다 "책으로 단련된 사회주의자"(242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우리나라의 '강단' 사회주의자들은 이 대목이 뜨끔할 것이다.

사족이다. 경멸해 마지않는 '지식인 파파라치'이면서 피노체트를 추앙하는 똥 덩어리 폴 존슨은, 내가 존경하는 아나키스트 박홍규와 도저히 한 문단속에 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저자들이다. 그런데 폴 존슨의 기념비적인 쓰레기 <지식인들>(한언 펴냄)과 박홍규의 <조지 오웰>(이학사 펴냄)에 나오는 한 구절은 조지 오웰의 복잡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낸다.

1950년, 오웰이 세상을 떠날 당시 그의 궁극적인 정치적 입장이 불분명해서 막연히 좌익 지식인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우익과 좌익은 오웰이 충성을 맹세한 이데올로기는 자기네 진영이라고 서로 우겼고 지금도 이 같은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지식인들>(하권), 254~255쪽)

오웰은 복잡하다. 그 복잡성은 그에 대한 다양한 신자를 낳는다. 우익도 있고 좌익도 있다. 노동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다. 그러나 오웰은 어느 편도 아니었다. 우익은 물론 좌익도 아니었다. (<조지 오웰>, 54쪽)

두 사람의 말이 그럴듯하다는 것은, 25명의 현역 작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고 작가나 문학 작품 속의 인물과 가상의 인터뷰를 펼쳤던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중앙북스 펴냄)에 실린 복거일과 오웰의 가상 인터뷰가 증빙해 준다. 그 가상 인터뷰에서 악취를 풍기기로는 폴 존슨과 거의 막상막하라고 할 수 있는 복거일은, 한사코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성토하고 민중주의와 민족주의를 경계하며 온갖 이념을 의심하는 자유주의 지식인으로 오웰을 각색해 놓았다.

하지만 "빈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압제와 전쟁을 진정으로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사회주의 편이다"(293쪽)고 말하는 오웰의 사상적 좌표를 분석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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