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원자로 수명 연장을 3개월 유예시키고 노후 원자로 7기 가동을 중단시킨 기민당-자유당 연정의 결정을 넘어 즉각적인 탈(脫) 원전 실행을 요구하였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독일 전역에서 불고 있는 반(反) 원전 바람은 원자로 수명 연장을 밀어붙였던 기민당에서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고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지난주에 있었던 작센안할트 주 의회 선거에서 반 원전 정책을 주도하는 녹색당이 7% 득표로 처음으로 의회 진출에 성공하더니, 27일의 바덴뷔텐베르크 주 의회 선거에서 역사의 장이 다시 쓰였다. 지난 58년간 기민당의 아성으로 남아있던 바덴뷔텐베르크에서 녹색당이 24% 득표에 주정부 수상을 배출하였던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 전환을 바라는 독일 시민 사회의 바람이 녹색당 지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독일은 기민당과 자유당 연정으로 밀어붙인 2040년까지의 원자로 수명 연장 정책을 되돌려 2001년의 "원자력 합의"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2000년 합의하고 2001년에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2001년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 하에서 원자력 발전을 주도하는 에너지 기업들은 가동 중인 원전을 최대 2029년까지는 폐쇄한다는 약속을 하였었다. 독일 생태연구소(Öko-Institut)는 올해 3월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마지막 원전 폐쇄를 2015년에서 2020년 사이로 앞당기더라도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아 반 원전을 지지하는 시민사회의 탈 원전 압력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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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는 기민당-자유당 연정 하에서 탈 원전 정책에서 후진하던 독일 사회로 하여금 탈 원전 정책의 가속 페달을 밟게 하고 있다. 전 세계를 방사능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독일은 탈 원전을 지연하고자 한 2010년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되돌리는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원자로 안전위원회(Reaktorsicherheitskommission)로 하여금 원자력의 기술적 안전을 근본적으로 검토하도록 하는 한편, 탈 원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시 한 번 도출하고자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계, 종교계, 업계 대표들이 참여하도록 하였다. 여기서는 원자로 수명 연장 정책 등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런 정책선 선회는 독일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반 원전 분위기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에 의한 전력 수급 비중이 23%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에서 탈 원전을 향한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인구 8000만에 자동차, 기계 등 수출 산업국으로서의 지위를 원전 없이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일본 원전 사고에 의한 방사능 위험도 적은 곳에서 원전 사고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안전을 위해 치러야 하는 경제적 손실을 간과한 이상주의적인 발상은 아닌가?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원자력 없는 세상을 꿈꾸어보지 못한 우리에게 이 도전은 어쩌면 무모해보이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에너지 정책과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독일이 이룬 성과들을 보게 되면 이것이 다만 이상적 목표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항공우주센터와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2010년 12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무엇보다 독일에서는 현재 1차 에너지 생산성이 연간 1.8%씩 증가를 보이고 있고 이 증가율은 2020년까지 2.7%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 소비 자체가 2020년에 2009년의 84%로 줄어들게 된다.
전력 소비에서 2020년에 2009년 대비 86%로 줄어들고,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은 약 40%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09년 현재 전력 생산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6%이다. 에너지 소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난방열 등 열 소비 분야에서도 2020년에는 2009년도의 85%로 소비가 감축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원을 활용한 열 생산 비중은 18%로 증가한다. 즉, 에너지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생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고 있고, 이 소비에서 차지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이 늘어가면서 원전 의존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경우, 2025년에 전력에서 원전 발전 없이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고 본다. 1990년 데이터부터 현재까지 에너지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속 가능 지표 역시 에너지 수요의 지속적 감소를 보여준다. 이 지표에 따르면, 에너지 생산성은 1990년을 100으로 하였을 때 2009년은 140.36으로 에너지 효율이 40% 이상 높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에 근거하여 2010년 9월 독일 정부는 2050년에는 전력 소비를 2009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최종 에너지 소비의 60%를 재생가능에너지만으로 충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 데이터는 독일 사회의 탈 원전이 실현 가능한 계획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탈 원전의 가능성은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의 산물인 2001년의 원자력 합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오래전부터 독일 사회는 탈 원전을 준비해왔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석유 파동은 독일 사회에서 석유를 보완하는 에너지원으로 원전이 자리 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풍력과 태양광으로 대표되는 재생가능에너지 기술과 에너지 효율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해주었다.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된 반핵, 반 원전 운동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강화하였고,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안으로 에너지 효율과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1974년부터 원자력 연구 지원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였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와 효율 기술에 정부의 연구 지원이 시작되었다. 이를 토대로 대학, 산업과 정부 연구소들에서 탈 원전의 기술적 바탕이 되는 재생가능에너지 기술 축적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1977년에는 생태연구소가 설립되어 대항 전문가들이 원전, 화석 연료 체제에 대한 대안 기획들을 만들어가고, 산업 분야에서도 태양광 산업 협회 등이 이들 기획을 뒷받침해주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들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직후 본격적인 탈 원전 기획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1990년에 풍력, 태양광 등 재생 가능 에너지가 전력 시스템에 통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전력 매입법이 만들어졌고,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 시장 조성을 위한 정부 지원도 본격화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98년 적녹 연정이 탄생하면서 탈원전인 정치적 과제가 되었고, 독일 사회는 마침내 2001년 원자력 합의에 이르게 된다. 아울러 재생 가능 에너지 체제로의 에너지 전환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에너지 효율,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이 지속되었던 탓에 탈 원전은 독일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기획이 될 수 있었다. 또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반핵, 반 원전 논쟁들은 독일 사회로 하여금 원전에 대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였다. 지금도 전 세계 발전량의 14%만이 443기의 원자로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1차 에너지 공급에서 4% 미만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원전의 지위를 독일 사회에서는 일찍 깨닫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총 에너지 소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물 난방, 수송은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어왔다. 건축물 단열을 강화하고 연비를 개선하여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열 전환이 필요 없는 방식으로 난방이 가능하게 하면 재생 가능 에너지로도 충분히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력, 열, 수송 분야로 구분한 에너지 수요 절감 계획과 절감된 수요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로 대체한다는 에너지 정책의 기본 원칙은 지속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원자력의 경제성을 지탱해오던 각종 보조금 제도 개선도 시행되었다. 탈 원전을 위한 준비는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체르노빌에 이어 원전의 재앙적 위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술력으로 무장하였다고 자처하는 일본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는 원자로를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원자로 운영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독일의 경험은 원자력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위험한 파트너가 아니라 우리가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획과 그 기획의 실행 의지에 따라 제휴를 끊을 수도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원전이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으로 부상하던 바로 그 시기에 다른 에너지 체제도 가능하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릿하지만 지속적으로 그 다른 꿈을 실현에 옮겨왔다.
후쿠시마의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탈원전 꿈꾸기가 정말 필요할 때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의 다른 꿈꾸기를 현혹할 수 있었던 원자력 르네상스도 후쿠시마 원전의 파괴와 더불어 종언을 고하고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했던 중국이 지난주에 계획된 원자로 건설 승인을 미루고 새로운 28기 건설 장기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하였다. 중국의 원자로 건설 계획이 전 세계 원자로 건설 계획의 40%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번 중국의 결정은 르네상스의 종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자로 부지 선정의 어려움은 더 가속될 것이고, 원자로 안전 표준 강화, 규제 강화로 원전 건설의 사업성은 악화될 수 있다. 저물어가는 시장에서 원자력 기술 선도국이라는 명예를 얻고자 예상되는 경제적 손실을 계속할 것인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사업을 명분 있게 정리할 기회인 것이다.
대신 원자력 없는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기획하고 여기에 필요한 기술 축적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집중하도록 하자. 원자력 수출 강국의 꿈 대신에 원자력 없이 사는 사회의 꿈을 꾸도록 하자.
앞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칼럼 '초록發光'이 <프레시안>을 통해서 독자를 찾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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