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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김정일이 동시에 사랑한 '그것', 그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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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김정일이 동시에 사랑한 '그것', 그 정체는…

[프레시안 books] '아톰의 시대'를 넘어서

'프레시안 books' 31호에 실린 머리기사를 읽고서 몇몇 독자가 의견을 주었습니다. 아래 등장하는 'L 친구'도 그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라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 : 일본이 핵에 무너진 날…"우리는 모두 일본인이다!")

L 친구에게,

보내준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신학기에 한창 바쁠 텐데,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을 꼼꼼히 챙기고 이렇게 기사에 의견까지 보내줘서 반가웠습니다. 바로 답장을 보내지 못해서 미안해요. 친구가 던진 질문이 모두 다 만만치 않았던 터라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답니다.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친구는 이렇게 물었지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다 주말에 기자님의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저는 더 우울해졌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이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이거든요.

이미 한국은 전기의 30% 정도를 원자력 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자력 발전소를 포기한다면, 그만큼의 전기는 어떻게 생산하나요? 더구나 기후 변화를 막고자 온실 기체를 줄일 수밖에 없다면,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 기체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가요?

저 역시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는 싫어요.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한, 원자력 에너지는 필요악 아닐까요?"


사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친구뿐만이 아니에요. 원자력 발전소를 한반도에 짓는 것도 모자라 세계 곳곳으로 수출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한국 시민 대다수가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원자력뿐이야. 다른 대안은 없어!'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혹시 이런 생각이야말로 '원자력 신화' 아닐까요?

ⓒ프레시안(손문상)

원자력 성적표 : 2.3 혹은 39

사람들과 원자력 에너지를 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사람들이 원자력 에너지에 대해서 모르는 게 정말로(!)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제가 던지는 질문이 있답니다. 자, 친구도 한 번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중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몇 퍼센트(%)나 될까요?"

이런 질문에 대개의 사람들은 "한 40% 아닌가요?" 이렇게 답합니다. 그러나 정답은 이렇습니다. 2007년 현재 난방, 수송, 전기 등 전 세계 소비 에너지 중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3%'에 불과해요.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7%에 불과합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해볼게요.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는 몇 개나 될까요?" 이 질문에도 대개는 "한 100개국 아닌가요?" 이렇게 답합니다. 역시 정답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2008년 현재 439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는 고작 31개국뿐이거든요. 이게 1946년에 처음으로 상업 발전을 시작한 원자력 에너지의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계속 해볼게요. 친구도 언급한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의 복수>(세종서적 펴냄)에서 "지구가 열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은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는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러브록은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었던 터라서, 이런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 동안 "핵은 죽음이다" 이런 구호를 외치며 반핵 운동에 앞장서온 환경운동가 중 일부도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으니까요. 마크 라이너스, 조지 몬비오,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환경 담당 기자인) 프레드 피어스 같은 이들이 대표적입니다. 자, 그렇다면 열 받은 지구를 원자력 에너지로 식히는 게 가능할까요?

원자력 에너지가 이런 역할을 하려면 우선 전 세계 소비 에너지의 11.6%, 전기 생산의 67.8%를 차지하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아주 빠른 시간, 즉 최소한 50년 안에 대체해야 합니다. 화석연료가 전력(온실 기체의 21%), 산업(17%), 수송(14%) 등에 쓰이면서 배출하는 온실 기체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지금 원자력 에너지가 전 세계 소비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2.3%)은 정말로 보잘 것 없어요.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나라도 적고요(31개국). 더구나 지금 가동 중인 439기의 평균 운영 기간은 25년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40년으로 가정하면, 앞으로 15년 안에 이들 원자력 발전소는 폐쇄될 운명입니다.

이렇게 조만간 폐쇄할 수밖에 없는 원자력 발전소가 많은 탓에 2025년까지 약 190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도 전체 에너지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기는커녕 지금 수준을 유지하기도 버겁습니다. 그렇다면, 러브록의 기대를 충족하려면 얼마나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할까요?

앞으로 50년간 영광, 울진의 원자력 발전소(1000메가와트) 2~3000기를 전 세계 곳곳에 지어야 합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까, 앞으로 50년간 1주일에 하나씩 원자력 발전소를 특히 미국, 유럽, 동아시아 등에 집중적으로 지어야 해요. 그런데, 이렇게 원자력 발전소를 1주일에 하나씩 짓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비교적 원자력 에너지에 호의적이었던 지난 50년간 지어진 원자력 발전소가 439기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더구나 설사 전 인류가 원자력에 홀려서 기적적으로 수천 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짓더라도 온실 기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화석 연료는 전기 생산뿐만 아니라 산업(17%), 수송(14%) 등에서 적지 않은 온실 기체를 배출해요. 당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배출하는 온실 기체의 절반은 자동차(40%), 비행기(6%)에서 나와요.

원자력 발전소에서 아무리 전기를 생산한들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 비행기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널리 보급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자, 이래도 원자력 발전소가 러브록의 말처럼 '기후 변화의 해결사'인가요? 혹시 우리는 열 받는 지구의 미래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원자력'이라는 신화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원자력 쓰레기의 진실

▲ <가이아의 복수>(제임스 러브록 지음, 이한음 옮김, 세종서적 펴냄). ⓒ세종서적
앞으로 50년간 1주일에 하나씩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게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하도 "원자력 에너지는 청정한 에너지"라고 광고를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깜박하는 게 있어요.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방사성 독성 물질을 잔뜩 포함한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바로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이번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곳곳에 임시로 보관해둔 이런 방사성 폐기물에 문제가 생겨서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후쿠시마에서는 이런 위험한 쓰레기를 발전소 곳곳에 둘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건, 바로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더 해볼게요. "전 세계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처리장은 몇 곳이나 있을까요?"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가 31개국이니까 최소한 이런 처리장이 31곳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답은 '0'입니다.

앗, 그럼 경주에 짓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뭐냐고요? 원자력 발전소에 나오는 쓰레기는 방사성 독성 물질의 양에 따라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나눕니다. 경주에서 짓는 시설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입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만들지 못했답니다.

도대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얼마나 처치 곤란하기에 반세기가 넘도록 변변한 처리장 하나 마련하지 못했을까요?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속에는 짧게는 수천 년에서 길게는 수십만 년 동안 격리시켜야 할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 말로는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해봤자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10년 계획도 버거워하는 보통사람의 시간 감각으로는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동안 통제해야 할 위험이라는 것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유적 중 하나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입니다.

약 4~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피라미드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수십만 명이 동원돼 만들어진 왕의 무덤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도 실감이 안 난다면 만들어진 지 채(?) 1000년도 안 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어떤가요?

이런 고대 유적을 염두에 두면, 과연 우리가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동안 통제할 수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서 이 위험한 곳에 접근하려는 이들에게 '위험' 경고를 어떻게 할까요? 알다시피 인간의 언어는 워낙 빨리 변해서 약 500년이 지나면 거의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요.

지금 고등학생인 친구의 국어 수업 시간을 떠올려보세요.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조선 시대의 한글을 거의 이해할 수 없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위험'이라고 써놓아도 불과 수백 년이 지나면, 후손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방사성 독성 물질은 계속해서 외부로 나올 텐데요.

설사 수천 년,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뒤까지 경고할 방법을 찾았다고 칩시다. (실제로 글자가 아닌 그림을 이용한 경고가 궁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경고 표시는 어떻게 남겨야 할까요?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뒤까지 풍화작용을 비롯한 온갖 파괴 현상을 견뎌낼 경고판을 마련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자, 이렇게 원자력 에너지는 인류로 하여금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를 부추깁니다. 당장 지난 반세기 동안 약 30만 톤(t)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세계 곳곳의 원자력 발전소에 흩어져 보관돼 있습니다. 여기에 매년 1만 톤이 추가되고 있고요. 당장 인류는 이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이런 데도 원자력을 필요악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면을 쓴 원자력

▲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혹시 드라마를 즐겨 보나요? 저는 시간 날 때마다 미국 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그 중에 지금은 종영한 <24>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2001년부터 10년에 걸쳐서 총 여덟 시즌이 방송되었습니다. 영웅 '잭 바우어'가 온갖 테러에 맞서는 이야기인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아이리스> 시리즈의 원조 격인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드라마에는 현실에서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테러가 등장해요. 한 번은 첫 번째부터 마지막 시즌까지 어떤 테러가 등장하는지 따져봤어요. 네, 그렇습니다. 드라마 전체에 걸쳐서 온갖 종류의 핵공격이 등장합니다. 특히 네 번째 이야기는 원자력 발전소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끔찍한 핵무기로 돌변하는지 실감나게 보여주지요.

굳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후쿠시마 사고를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만약에 테러리스트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접수한 다음에 냉각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오싹하지요? 유럽의 환경운동가들이 심심찮게 원자력 발전소에 잠입해 깃발을 꽂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이런 테러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서랍니다.

지난 50년간 원자력 발전소가 많이 안전해진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없었어요. (지난 기사에서 이 얘기는 길게 했었지요.) 더구나 원자력 연료의 수송, 원자력 발전소 테러 등의 위험을 염두에 두면 원자력 발전소는 여전히 위험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에요. 최근에 북한,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서 보듯이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원자력 발전소)'과 '군사적 이용(핵무기)'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의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가 핵무기 보유 욕심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번에 후쿠시마 사고로 참담한 상황에 빠진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자력 전문가로 이례적으로 반핵 운동에 앞장선 일본의 지식인 다카기 진자부로(1938~2000년)는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녹색평론사 펴냄)에서 그 이유를 "거대한 힘을 손에 넣고 보자"는 욕망으로 설명합니다. 세계 최초이자 최후의 원자력 피폭 국가인 일본이 역설적으로 원자력 에너지에 집착하게 된 데는 "거대한 힘"을 상징하는 원자력(핵무기)을 보유하려는 욕심 탓이었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 곳곳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선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생산한 플루토늄은 언제든지 핵무기 생산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목격한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핵무기 확보에 나섰던 것처럼, 누군가 한 번 더 핵무기의 방아쇠를 당긴다면 또 다시 전 세계적인 핵 경쟁이 벌어지겠지요.

걱정스럽게도 그 경쟁은 동북아시아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큽니다. 막무가내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북한은 물론이고 원자력 에너지 확대에 매진하는 한국, 일본, 중국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사실 원자력 에너지를 사랑하는 점에서는 남쪽의 지도자와 북쪽의 지도자가 너무나 똑같습니다.) 어쩌면 이번 후쿠시마 사고는 그런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 클리오(역사의 여신)의 경고 아닐까요?

'아톰의 시대'를 넘어서

▲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이유진 외 지음, 도요새 펴냄). ⓒ도요새
얘기가 길었습니다. 사실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 나온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도요새 펴냄)은 원자력 에너지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으니 많은 참고가 될 거예요. (단, 쉽게 쓰려고 저자들이 노력은 했습니다만 일반 시민이 보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이제 긴 편지를 마칠 때가 되었네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안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풍력, 태양 에너지 등 말은 무성하지만 그것이 대안이 되기에는 힘이 너무 약해 보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독일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독일은 총 17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 중입니다. 설비 용량만 놓고 보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한국은 설비 용량 크기로 따지면 다섯 번째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2000년에 원자력 포기를 선언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이 다하면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0년 9월에 현재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평균 수명을 12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만, 그 때 내세웠던 이유도 "풍력,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할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어요. 그나마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독일 정부가 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독일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체르노빌 사고로 시민들이 원자력 에너지가 아닌 다른 대안을 갈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힘이 모아져 결국 2000년의 원자력 포기 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원자력 에너지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원자력 에너지가 아닌 풍력,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들, 그들의 지지를 받아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정치인들, 그런 재생 가능 에너지로 돈을 버는 기업인, 그런 산업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시 원자력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지요."


2007년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녹색당 의원이 저에게 들려준 답입니다. 이런 독일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체르노빌 사고가 독일 에너지 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후쿠시마 사고가 에너지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지금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모은다면, 한 10년 후에는 원자력 에너지 포기 선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제 넘는 부탁입니다만, 이번 변화의 맨 앞에 친구와 같은 10대들이 큰 역할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고 보니, 과학기술자가 되고 싶어서 2학년이 되면서 이과를 선택했다고요? 앞으로 풍력,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나 혹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학기술에 인생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그런 움직임이 하나둘 모아졌을 때, 우리는 '아톰의 시대'를 넘어서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질문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카기 진자부로의 얘기를 전합니다. 이제 친구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원자력 문제는)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핵 없이 살자는 우리의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때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런 믿음 속에서 희망이 다시 용솟음쳐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3월 25일

강양구 드림.

함께 읽기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점과 대안 에너지의 가능성을 다룬 책은 정말로(!) 많아서 셀 수조차 없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부정확한 정보를 담은 책도 많지요.

우선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점을 한꺼번에 조감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앞에서 언급한 다카기 진자부로의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을 권합니다. 이 책을 31호 머리기사에서 소개한 '과학기술과 불확실성'이라는 관점을 염두에 두고 비판적으로 읽으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조만간 개정판이 나올 예정입니다.

▲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강양구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북
앞에서 언급한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김수진·오수길·이유진·이헌석·정용일·정희정·진상현 지음, 도요새 펴냄)은 비교적 최신 정보를 토대로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점을 전체적으로 짚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짧은 글로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강양구, "원자력을 둘러싼 일곱 가지 신화", <녹색평론> 2010년 5-6월호(제112호))

독일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책으로는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이필렬 지음, 궁리 펴냄)가 있습니다. 2001년에 나온 이 책이 아쉽다면 다음 책도 참고할 만합니다.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강양구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주권>(배진아 옮김, 고즈윈 펴냄)도 고민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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