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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 약속한 MB? 결과는 '악취'와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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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 약속한 MB? 결과는 '악취'와 '오염'!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맥닐의 <20세기 환경의 역사>

악취와 오염에 익숙한 권력?

파고 묻고 덮었지만 문제는 더 커지고 말았다. 구제역 대응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태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물의 생명에 대한 생각은 물론이고, 생매장이라는 참혹한 방식과 이후 벌어질 환경 재앙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가 열렸을 때 "음식 쓰레기 냄새 나니 내놓지 말라"고 했던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명박 정부의 환경지수와 생명 감수성은 이렇게 우리 사회를 악취로 채우고 도처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결한 환경에서 공장식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육식 산업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육식 체질에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새롭게 성찰해야 할 사태가 일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모두를 국가적 책임으로 풀어가야 할 정부의 자세는 환경 재앙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환경평가, 문화재 조사 절차도 도외시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권력이니만큼 이번 구제역 사태의 현실은 필연적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자연을 개발과 이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존중이나 인위적 개발 이후의 자연환경 변화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기 어렵다. 이미 산업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자연 재앙의 비용을 지불해온 선진국의 경험과 역사의 교훈은 소통 불능의 권력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음에 불과한 모양이다. 때로는 매우 급격하게, 때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진행되는 환경 위기는 우리의 삶 그 근본토대를 허물고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인간의 역사와 자연사의 일치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와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봐야 한다는 역사학계의 반성은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세기 환경의 역사>(존 로버트 맥닐 지음, 홍욱희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자연환경의 가치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했던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팽창, 식민지 약탈, 자연에 대한 무차별적 착취의 결과가 인류의 미래를 위기에 몰아놓고 있다는 반성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계적 관심을 미약하게나마 모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 로버트 맥닐의 <20세기 환경의 역사>(홍욱희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는 인간의 역사와 자연사를 하나로 결합시킨 주목되는 저서다.

맥닐은 그의 아버지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세계사가 윌리엄 맥닐이고, 그 아버지와 함께 <휴먼 웹 : 세계화의 세계사>(유정희·김우영 옮김, 이산 펴냄)를 공동 저술한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윌리엄 맥닐이 질병의 역사(<전염병의 세계사>(김우영 옮김, 이산 펴냄))를 쓴 덕분으로 맥닐은 환경의 문제를 다룰 때 전염병, 질병 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지식과 민감한 의식을 보여준다.

또 중요한 것은 맥닐의 역사관이 하나의 지역사나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세계사 전체의 연관 구조를 통해 전개된다는 점에서도 그의 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자 홍욱희 역시 환경과학자라는 점에서 이 책의 번역은 애정과 의지를 가진 결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세계사 전체의 연관 구조와 자연사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드먼드 버크 3세는 케네스 포메란츠와 함께 엮은 <자연과 세계사(The Environment and World History)>의 서문에서, 엄청난 자연환경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인간의 역사, 인간의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연환경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지 않는 역사는 역사학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산업화와 개발주의의 재앙

이는 더욱이 국제 관계가 세계적 구조로 연결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너무나도 분명한 이야기가 된다.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강의 오염이 한 나라의 문제로 그칠 수 없고, 빠른 속도의 산업화로 인한 대기 오염의 움직임이 인근 국가에게 행복일 수 없기 때문이다.

톈안먼 사건 출신으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 고민을 하게 된 리민치가 쓴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종말>(류현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도 지적되어 있다시피 중국의 산업화 속도와 규모는 오늘날 인류가 누리고 있는 자연자원의 한계와 환경 문제를 생각해볼 때 중국의 패권적 위상의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도전이 된다. 인간이 보다 나은 경제생활과 편리한 삶을 추구하고 부유한 위치에 오르려는 욕망과 의지가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근본을 파괴하는 쪽으로 치닫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닐은 다름 아닌 이러한 시선으로 특히 20세기의 산업화 과정과 경제, 정치, 국제 관계가 자연환경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세세하게 점검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책 부제가 "하늘 아래 그 어느 것도 새것이 없다"는 성서의 전도서를 뒤집는 "하늘 아래 드디어 새것이 나타났으니"라고 되어 있는 것도 20세기가 지난 수십만 년, 또는 수만 년의 지구사를 뛰어넘는 자연환경의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산업화의 성공이 자연환경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실패를 그 대가로 치르게 하고 있다는 인식의 열매다.

지난 1960년~70년대 우리가 일본의 산업 폐기물을 돈을 받고 들여와 이 땅 어딘가에 묻거나 강 또는 바다에 버린 기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그의 책에 이런 산업 폐기물의 발생과 폐기 과정이 낳은 재앙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각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또 어떤 산업 폐기물들이 우리의 산하에 흘러들어 갔거나 파묻혀 우리가 먹는 물과 식량을 오염시키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미국의 멕시코와의 FTA 경험을 통해서 보더라도 멕시코의 환경을 엄청나게 오염시키고 파괴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다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듯이 그리 간단하게 처리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공기, 물, 흙, 생태계의 위기

맥닐은 산업화 초기와 이후 세계 각처에서 벌어진 대기 오염, 토양의 파괴, 수질의 변질, 생태계의 이상 징후, 기후의 변화 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경제적 요구가 앞서고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 없는 남용이 가져오는 폐해를 치밀하게 고발하고 있다. 애초에 발전이라고 여긴 여러 가지 개발 정책들이 사실은 우리의 폐를 썩게 하고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며, 여러 다양한 생물종의 멸종사태를 가져온다는 것을 그는 일깨우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오늘날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되지 못할 수 있으나 그건 일반적 개념에서 그렇고, 개별적 국가와 사회가 어떤 고통을 치렀고 그 결과 어떤 선택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려 했는지를 아는 지식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빈곤한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 부국이 자신의 경제적 욕망과 목표를 위해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연 재앙을 전가시키고 그 나라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황폐화시킨 일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발전경로에서 희생된 사람과 자연이 얼마나 무수한가를 새삼 자각하게 된다.

가령 이집트의 아스완 댐 건설의 과정에서 아무런 통고도 받지 못한 채 난민처럼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후 나일 강의 수위 변화, 수질 변화로 인해 생긴 물 부족 사태와 문화재 부식, 건조한 기후의 심화와 강물의 소금화 현상 등에 대한 증언은 인간이 강물을 함부로 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산하에 어떤 환경재앙을 가져다 줄지 모르는 "4대강 함부로 손대기 사업"에 대한 강력한 역사적 경고이기도 하다.

공장화된 육식 산업이 만들어내는 토질과 수질 오염 문제, 막대한 양의 질소 비료가 퍼부어지는 기업 농업의 문제, 일단 일어나면 수만 년 이상의 재앙으로 남게 되는 핵발전소 문제나 핵폐기물의 처리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험 등 이 모두는 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일들이며 문제다. 다행히 선진국의 경우, 환경운동이 정치적 위상을 가지면서 상황 개선이 일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부담이 한편에서는 가난한 나라로 이전되거나, 또는 거대 기업들이 여전히 환경 규제와 관련한 법적, 제도적 틀을 가로 막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이 문제는 사회의식의 변화와 정치로 압축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용기 있는 지식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의 경우, 당장에 한국타이어에서의 산업 재해, 삼성전자에서 일어난 산업 재해 사건들을 처리하는 권력의 자세와 한국 사회의 무관심은 자본의 경제적 목표에 인간과 자연이 희생되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약품 개발을 한다면서 이로 인해 미생물의 대응 능력을 도리어 강화시키고 있는 현실 속에 사는 우리로서는 아주 작은 진동 같은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재앙으로 변모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1962년, 살충제, 제초제의 무차별한 사용이 어떤 자연 재앙을 가져오는지 고발한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철 카슨은 그녀의 책이 나오자 이내 정부와 대기업의 공격목표가 된다. 살균용 DDT가 인체에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도 분석한 그녀의 증언은 관련 산업계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용기 있는 노력은 인정을 받아 그녀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까지 세워지고 그녀의 초상화가 찍힌 우표까지 발행하게 된다. 누군가 지식과 의지와 용기를 가지니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한 '젖'과 '꿀'이란

한 가지 사람들의 오해가 많은 대목 하나 정리해보자. 성서의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광야로 탈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는 모두 "젖과 꿀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교회와 세상은 오랫동안 이 대목을 물질적 풍요가 보장되는 미래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들 광야에서 헤매고 있던 이들은 배가 고파 제국 이집트의 고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설득시키며 광야를 가로지르자면, 젖과 꿀은 설득력이 없는 구호다. 대신 "참아라, 조금만 가면 고기를 배터지게 먹게 해주겠다"고 해야 한다.

여기서 "젖과 꿀"은 욕망을 채우고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상징이 아니다. 그건 전혀 다른 체질로 변모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누군가의 피를 흘리거나 착취하지 않는, 평화로운 생활방식과 삶의 모습이다. 그런 곳에서는 대량 육식 산업의 처참한 환경과 구제역의 비극적 대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가져온 욕망에서 탈출한 이들이 선택하는 미래는 그런 것과 인연을 갖지 않는다.

욕망의 정치가 아니라, 생명의 정치를 사고하는 인간과 사회에서 인류의 역사와 자연의 생명은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 "하늘 아래 새것이 드디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환경 재앙이 아니라 자연환경의 생명력이 복구되는 그런 미래를 의미하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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