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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불능' MB에게 정신분석학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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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불능' MB에게 정신분석학이 필요한 이유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김서영의 <프로이트의 환자들>

'프레시안 books'는 2011년, 독서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는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리브로스 비바'입니다. '리브로스 비바(Libros Viva)'는 직역하면 '살아있는 책'으로, 책의 생명력에 대한 환호, 그리고 책의 생명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격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영혼의 내시경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혼의 내시경이 있다면? 그래서 이제껏 스스로도 몰랐던 진심을 알게 되고, 까닭 모를 병의 원인을 마음에서 찾아내 정확히 진단해낼 수 있다면? 그런 뒤 명쾌한 처방도 내려 상처가 치유되고 건강한 삶을 회복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이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내면의 고통과 갈등이 병이 되어갈 때, 그 매듭을 풀어 마음에 자유와 기력을 불어넣는 작업인 것이다.

▲ <프로이트의 환자들>(김서영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프로네시스
프로이트의 저작 24권에서 환자들의 사례만을 중심으로 뽑아 정리한 김서영의 <프로이트의 환자들>(프로네시스 펴냄)은 "모두를 위한 정신분석학"을 목표로 한 저자의 성실하고도 친절한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라캉", "원시적 근원을 가진 집단 무의식을 조명한 융"까지도 프로이트의 고민에서 출발해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비교설명해 놓았다.

그래서 김서영의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독자들이 프로이트를 너무 단순화시키거나 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도왔고, 프로이트와는 다른 시선으로 인간 정신을 파고드는 다양한 길에 대해 잘 안내하고 있다. 저자가 라캉의 주체에 대한 연구와 베냐민의 변증법을 결합시키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데다가, 라캉과 지젝 등의 저서를 번역했다는 점을 주목해보아도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기반이 단단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듯한 체온이 담긴 책

이에 더해 그런 그의 저술 방식에는 여성적 섬세함과 인간 심리에 대한 치유적 관점에 잘 녹아 있어 이 책에 수록된 사례들과 독자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학 이해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글쓰기에 따뜻한 체온이 실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독자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친숙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걸 기반으로 자신은 누구인지를 깨우쳐 가는 힘을 기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김서영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프로이트를 통해 나는 내 마음 속의 두려움을 볼 수 있었고 잘못된 생활 방식을 고칠 수도 있었습니다. 더욱 건강해졌고 행복해졌습니다.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고 마음 속 감정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자 역시 자기 분석을 통해 정신 분석이 제공하는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일상생활의 정신 분석을 통해 나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면 오늘부터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해보세요."

바로 이런 시선으로 읽는 프로이트이기에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깊다. 전문 용어로 독자들의 기를 죽이는 일이 없다.

"백만 인을 위한 정신분석이 되어야 합니다. 정신분석은 거리에서, 거실에서, 교실에서, 전철 안에서, 술자리에서, 나 홀로 방안에서 쓸 수 있는 이론이어야 합니다. 나를 읽어내고 다른 사람을 읽어내고 상황을 파악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 분석을 하기 위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설 수 있게 되어야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자신에 대해 접근할 것을 권하고 있다.

"정신 분석의 키워드는 인정입니다. '그때 그랬었어.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했었고, 그 사람은 그런 말들을 했어. 내가 실수했어.' 그리고 제일 먼저 내가 나를 보듬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해주어야 하고 그 창피하고 부끄러운 느낌들을 견뎌줄 수 있어야 합니다. (…) 나 자신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공격하지 마세요. 말로 내 감정들과 기억들을 풀어내며 그 서사를 이해하고 감싸보세요. 의식이 만든 생각의 틀을 넘어 변수와 변화가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정신적 외상으로 몸이 아파지거나 그 영혼이 기력을 빼앗긴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을 김서영은 정신분석학의 역할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옳다. 인간 내면에 보이지 않게 들끓고 있는 마그마의 정체를 직시하고 그 마그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면서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뒤흔들어 고통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 또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가식적 정의를 넘어서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프로이트가 어떤 임상적 경험을 통해 정신분석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가 다룬 문제들의 유형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걸 프로이트는 어떻게 해석해갔는지, 그 분석의 시각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잘 정리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개념적 이해에 파묻히지 않고 살아 있는 생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현실을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경청하면서 정신분석의 묘미에 빠질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자신의 내면에 울리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거짓된 자아가 아니라 진실된 자아를 구해내는 시도라는 점에서 김서영의 말대로 "정신 분석은 '나'에 대한 모든 가식적 정의를 파괴하는 과정"이 된다. 라캉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라캉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은 터에 저자는 무의식의 자리에 제대로 서보는 프로이트의 노력을 새롭게 주시하는 것으로 라캉의 요체를 정리했고, 융을 통해서는 무의식이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낸다.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우리를 공격하는 가해자이지만 융의 에너지는 우리를 감싸는 치유자입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막힌 곳을 에둘러 갈 수 밖에 없는 처지인 반면, 융의 에너지는 막힌 곳을 뚫기 위해 전진합니다. 프로이트는 하나의 신화로써 우리 생활을 설명하지만 융은 수많은 신화와 함께 생활합니다. (…) 프로이트에게 꿈은 소원을 성취하는 장소인 반면, 융에게 꿈은 우리가 치유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듯하면서도 사실 프로이트나 융 모두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에게 자신의 진실로 인도하는 창문, 또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 무의식의 내용물을 무엇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는가에 대한 입장만 차이가 날 뿐, 감추어졌던 통로를 발견하고 이 통로를 통해 인간 존재의 지하실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를 탐색하는 영혼의 고고학자라는 점에서 프로이트나 융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이에 더해 김서영은 프로이트와 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단이 더 풍부해진 점을 주목하고 그걸 자신에 대한 분석의 도구로 활용해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

이 책은 프로이트를 프로이트로 만든 임상 사례를 풍부하게 실어 프로이트 전집 전체를 읽는 수고를 덜어주고 있으며, 프로이트의 뛰어난 추리력과 상상력, 그리고 해석의 힘을 구체적으로 맛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또 도라, 한스, 쥐인간, 늑대인간, 슈레버 판사 등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사례 가운데 유명해진 경우도 빠뜨리지 않고 해설하고 있어 독자들이 프로이트를 이해하는 범위를 여유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추리소설 같은 프로이트의 책

여기서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프로이트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된 첫 해였으니 갑자기 생긴 시간 때문에 읽고 싶었던 책에 잔뜩 눈독을 들였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심리 분석에 꽤나 흥미를 가졌던 당시, 꿈, 정신 분석 등의 단어에 매료되어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프로이트 저작의 일어판은 읽어낼 능력이 없는 터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그때만 해도 있었던 청계천 중고 서점에서 구해 읽으면서 푹 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의 프로이트 이해 수준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겠지만, 프로이트의 책은 사례 하나 하나에 대한 해석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했다. 단어 하나에 대한 민감한 이해,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내면의 진실, 하나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맥락에 대한 정보와 해석, 이런 내용들이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역시 원작이 주는 힘은 사뭇 달랐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까, 우연이나 실수처럼 보이는 일들 속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들을 풀어가는 과정은 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청소년기와 겹쳐 프로이트를 껴안고 살게 했다. 프로이트 저작의 번역서가 많지 않았던 때라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나의 꿈은 정신분석의가 되는 것이었다.

이후 대학 시절에 에리히 프롬, 마르쿠제 등을 통해서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마르크스와 접하기 전까지, 나의 관심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인물은 계속해서 프로이트였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방법론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과정을 통한 그 시대의 독특한 인간형의 형성과 그 내면에 대한 탐구에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 해석에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었다. 1970년대 우리 사회의 지적 풍토에서 에리히 프롬의 출현은 대단히 신선한 충격이었고, 금지 표시가 세워져 있던 마르크스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석사 학위 논문이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것이었고, 이 중심에는 프로이트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프로이트 읽기는 그 당시 한국 사회의 지적 구도에서 그다지 의미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같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현실을 뚫고 나갈 힘으로 프로이트를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그러기 쉽지 않았던 탓이 아닌가 싶다. 또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한국 사회에 적용되면서 "비판적 현실 읽기와 치유"라는 관점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성 에너지의 억압에 따른 신경병적 증세에 대한 낡은 이론과 해석 정도로 정리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러나 오늘날, 프로이트를 다시 꺼내들고 읽는 일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녀가고 있다. 우선 프로이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사회적으로 넓고 깊어졌고 라캉과 지젝의 등장으로 우리는 프로이트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적 이론의 틀로 담아낼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내면적 투쟁을 어루만지는 노력 없이 이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점점 더 확연하게 깨우쳐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이상한 인간형을 지도자로 뽑는가 하면, 성공에 대한 갈망과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중간지대에서 매일 허우적댄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때로 공격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상처가 난 자신을 더욱 상처내기도 한다. 자기성찰이 자학이 되기도 하고 상대를 감싼다고 하면서 날을 세워 비난하기도 한다. 모순투성이다. 그러면서도 자신 스스로도 그 까닭을 모르고, 실수와 잘못을 반복한다. 이건 어리석고 위태롭다.

자기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증폭시키고 거짓된 자아로 자신을 통제하면서 진정한 자기 주체를 질식시켜 나가는 과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이 사회가 서로 행복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다름 아닌 프로이트 읽기의 밑바닥에 놓여 있다. 여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김서영이 말했듯이 '경청'이다.

경청의 힘

그렇지 않아도.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만이 아니라 <듣기의 기술(The Art of Listening)>이라는 책도 내놓았다. 50년 이상을 정신분석의로 임상 경험을 가졌던 그로서는 이 듣기, 경청의 힘이 치유의 근본적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김서영은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학의 기본자세에 충실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것 아닌가? 소통의 가치가 주목되는 까닭도 경청의 능력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의 반증이다.

2011년 새해가 되면서 서평의 첫 책으로 <프로이트의 환자들>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상처 난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이든, 이웃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거다. 그로써 모두가 모두에게 적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에게 치유자로서의 존재로 반겨지는 그런 미래를 꿈꾸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위로를 받고 자신의 내면 분석에 좋은 동반자를 얻는 즐거움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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