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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인가, '사람'인가…기회는 단 한 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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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인가, '사람'인가…기회는 단 한 번뿐!

[김영종의 '잡설'·끝] '잡설의 연재를 마치며

'잡설의 연재를 마치며

'간디스토마 아기 코만도'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 현대 문명 속에서 이 유충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탐색해봄으로써, 언어를 이용한 상징 조작이 인간이 부릴 수 있는 농간 중에 가장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도 이 농간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사회는 인간이 자연에 살면서 엮어놓은 가상의 이야기다. 사회는 이야기-시나리오에 입각한 가상의 놀이이자 다른 한편으로 그 놀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시나리오다. '위계의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수록 가상의 '놀이'라는 것이 실감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고정된 '실체'라는 것을 절감한다.

소시민인 대중은 질서 의식으로 무장되어 사회를 가상으로 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러한 대중에게서 자유의지를 기대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극소수 지배자들은 세계를 가지고 노는 그들만의 유희를 대중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 축제를 말살하고 그것을 상업적인 엔터테인먼트로 대체해버렸다.

자연 축제야말로 사회가 고정체가 아니라 가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민중의 매체였다. 자연 축제가 사라진 현대에 자유분방한 언어는 고정체 언어에 억압돼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이른바 '언론의 자유'는 이런 구도 위에서 세계를 가지고 노는 극소수 지배자가 언론 장악을 위해 고안한 교묘한 표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밖에도 전쟁, 국가 부도 사태, 살벌한 교육 경쟁 등을 통해서 그들은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힌 소시민들이 그들만의 유희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은 점점 이기심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게 내몰리고 있다. 이것은 극소수 지배자가 만들어낸 최고의 성과물이다. 대중의 이기심을 이용하지 않고는 대중을 이처럼 자발적인 노예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은 전방위로 대중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연한 대량 실업 사태를 맞은 20대 청년들은 구직에 매달려 세상일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세대별로 볼 때 가장 높은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가장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극소수 지배자들이 사회를 유도한 대로 결실을 본 훌륭한 본보기다. 이 추세는 탄력을 받아 가속도를 내고 있다.

현실 속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살려고 할수록 소시민들은 자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자유를 상실하고 노예화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서' 이것을 막지 않으면 시대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 된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태어날 후손의 삶을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하고 있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전무하게 자식을 가장 보호하고 애지중지하건만 도리어 자식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후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자기 관리만 하는 중·노년층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나잇값을 하는 것이 젊어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데도, 이른바 '웰빙 시대'라는 것을 맞아 모두들 젊어 보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세대의 책임감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가 종과 횡으로 연대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은 시간의 축, 횡은 공간의 축으로, 이 십자형 연대는 우주 생물의 기본적인 삶이다. 아직 이를 위반한 생명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류 중에서도 오직 현대의 인류만이 이 연대를 파괴하고 있다.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재앙의 현장이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김용철

'역사 속으로 그리고 역사 밖으로(into history and out of history)'는 재앙의 현장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만 문제의 근원적(우주적)인 해결은 역사 밖에 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예컨대 4대강 사업은 인간의 계획이므로 역사 안의 일이지만, 4대강의 자연과 함께 살아온 토착민의 삶은 그 중심이 역사 밖에 있다.

십자형 연대와 관련해서 보면 토착민들은 종축으로 '자연사의 삶'을, 횡축으로 '자연마을의 삶'을 살아왔다. 도시인의 '문명사의 삶' '인공도시의 삶'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예컨대 도시인의 삶을 건축가에 비유한다면 토착민의 삶은 거미에 비유할 수 있다. 건축가는 설계도를 가지고 집을 짓지만 거미는 본능적으로 집을 짓는다. 거미의 집은 어느 건축가가 지은 집보다도 아름답고 완벽하다. 건축가의 설계도가 인과관계 속에 있는 팩트라고 한다면 거미의 본능은 예술 속에 있는 꿈이다.

4대강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꿈을 깨는 것으로, 토착민들을 팩트로 돌아오게 한다. 팩트는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역사 속에 위치하므로 토착민들은 투쟁이라는 역사적 대응을 피할 수 없다. 오직 그것만이 꿈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즉 유토피아를 위해서라면 사업자 쪽과 닮은꼴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만 행하는 투쟁의 결과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인'꿈'을 위해서다. 꿈속에만 우주의 십자형 연대가 고스란히 살아나므로.

꿈은 강에, 숲에 그리고 사건들 개개에 들어 있는 것이지 그 개개가 없는 추상적 본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은 개개에 들어 있는 정령(精靈)이라고 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반대 운동 속에도 꿈이 정령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지식인은 몰라도 토착민들은 당연히 그렇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돈도 싫고, 더 좋은 땅도 싫고, 개발의 혜택도 싫고, 자기들의 보금자리에서 살던 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성서의 나봇처럼, 파우스트의 노부부처럼. 십자형 연대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꿈의 목소리, 정령의 목소리다.

어떠한 역사적 운동도 역사 밖의 꿈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으로 들어가게 된다. '역사 속으로'라는 한 방향만으로 갈 때 맞이하는 피할 수 없는 파국이다. 따라서 코만도 유충의 조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장 큰 피해는 결국 후손한테 전가된다.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다른 이유도 많지만, 후손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지금으로서는 내가 십자형 연대를 주장하는 최우선의 이유다. 그런 나이가 된 모양이다. 천체의 별자리가 바뀌어 물병자리시대를 맞고 있다. 새로운 세상(Aeon, 시대)이 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밤하늘의 뭇별은 전에 없던 에너지를 보내고 있다. 신들의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증거다.

물병자리가 하늘의 별들에게 물을 떠주기 시작했다. 가뭄에 단비를 맞듯 살아난 별들이 신들을 깨운 것이다. 별들의 진동이 바뀌고, 만물이 수신주파수를 바꾸고 있다. 인간만이 그렇게 바뀐 진동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별들의 정복을 외치고 있다. 이름 하여 '우주 개발'. 여기에는 지구를 하나의 별로 영토화해서 지구에 단일한 지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하나의 세계 정부를 만들려는 거대한 음모이자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 프로젝트와 함께 세계 인류는 머지않아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되는 현실을 맞게 될 것이다.

―지구촌의 운명. 전 세계가 인디언 보호 구역화한다.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현실이 지구촌 전체에 걸쳐 실현된다.
―사회의 운명. 지구촌의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온 감시 체제로 운영된다.
―개인의 운명. 개인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세 가지는 인류를 진보로 나아가게 하는 '유토피아'가 조만간 보여줄 실제 모습이다. 인류는 근대 이후 불철주야로 개발해온 그들만의 유토피아에 곧 착륙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인류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선택밖에 남아 있지 않다. 별자리가 바뀌어 우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인류가 여기에 적응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이다. 지금이 왜 유일한 기회냐 하면, 극소수의 세계지배자들도 바로 지금 마지막 공정만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마침내 유토피아는 도래한다. 그것이 곧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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