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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국부는 워싱턴이 아니다?

[김영종의 '잡설'·31] 유토피아야말로 지옥이다 ①

유토피아야말로 지옥이다 ①

우리에게 유토피아라는 말을 선사한 르네상스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토머스 모어(1477~1535)는 그 무렵 발견된 아메리카 신대륙을 유토피아로 그리고 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은 그곳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욕망에 불타 있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 잘 부응하고 있다. '한 손에 총, 한 손에 성경'을 든 이들 청교도 유럽인들은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무려 1억 명 안팎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살육했다. 그것이 신의 뜻이고 진리였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정당했다.

'한 손에 총 한 손에 성경'이란 문구에서 성경을 평화로 읽으면 팍스로마나(로마제국의 평화), 팍스브리태니커(대영제국의 평화),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 등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팍스'는 당시 제국이 무력으로 가장 넓은 식민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분란 없이 평화를 유지해 번영을 구가했다는 뜻이다. 언어가 원래 그렇듯이 '평화'라는 단어도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이처럼 달라진다.

제국주의자들이 원하는 '평화의 최상 상태'⎯그것이 이루어진 공간이 유토피아라 한다면, 그 '평화의 최상 상태'는 과연 어떤 것일까?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보면 대외와 대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평화의 최상 상태'를 그렇게 구분하여 서술한 것으로 봐도 된다. 먼저 대외 관계부터 알아보자.

8. 주변국을 독재 정치에서 해방시키는 강한 미덕의 나라.
9. 적을 이성의 힘으로 굴복시키는 평화의 나라. 단, 전쟁이 불가피할 경우는 암살과 내분을 일으키고 자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용병이나 우방국의 군대를 동원한다. (위의 번호는 정순미가 번역하면서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달아놓은 소제목의 번호다. 인용도 이 책에서 하였다.)


이 항목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이 떠올랐을지 궁금하다. 나는 아주 당연하게도 미국이 떠올랐다. <유토피아>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보자.

"유토피아인은 오래전부터 주변의 대다수 국가들을 독재 정치에서 해방시켰다. 정부 관리를 보내 나라가 잘 통치되도록 하는데, 이는 해당 국가가 원하는 일이다. 한 국가의 복지는 전적으로 통치자의 자질에 달려 있고, 유토피아인은 분명히 이런 일에 이상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대외 관계에서 관리를 파견한 나라를 동맹국이라 하며,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는 국가를 우방국이라 한다. 외국과의 조약은 체결한 적이 없는데, 유럽과는 달리 유토피아 근처의 세계에서 조약은 전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세우는 명분은 이렇다.

'조약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은가? 자연이 맺어준 근본적인 결합을 중요시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그가 어찌 조약이라는 한마디 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겠는가? 인간은 계약에 의해서보다는 애정에 의해서, 말에 의해서보다는 정신에 의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

유토피아인은 전쟁이 명예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유일한 민족이다. 아주 불가피할 경우에만 전쟁을 하는데, 유토피아가 침략 받는 경우, 우방국(동맹국과 우방국)의 영토를 침략자로부터 지키는 경우, 독재 정권의 희생자들을 해방시키는 경우이다.

그들은 방위 전쟁만이 아니라 침략 행위에 대한 보복 전쟁에서도 우방국에 원병을 제공한다. 또 전쟁의 정당한 이유에는 무력적인 것 외에, 외국에서 상인들이 불공평한 법 때문에, 또는 법은 공평하지만 고의적인 편견 때문에 불공평한 법적 조치를 받을 경우에는 상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다.

유토피아는 자국민에 대한 보호를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단 한 명의 유토피아인이라도 외국 정부나 외국인에 의해서 불구자가 되었거나 살해당했을 경우 외교 사절을 파견해 진상을 조사한 후 범인 인도를 요구해 사형이나 노예에 처한다. 만일 요구를 거절할 경우 전쟁을 선포한다.

유토피아가 전쟁을 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적을 이성의 힘(지혜)에 의해 굴복시킨다.
② ①의 평화적 방법이 실패했을 경우, 적국에 비밀첩자를 보낸다. 첩자는 적국의 왕과 고위 관리를 죽이거나 생포해온 자에게 막대한 상금을 준다는 선전문을 눈에 띄는 곳마다 대량으로 붙인다. 선전문에는 고위 관료들 중에서 동료를 배반하고 귀순한 자에 대해서도 같은 상금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돈으로 매수하는 선전전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매수 작전에 대해 비난하지만 유토피아 사람들은 실제 전투 없이 큰 전쟁을 끝내는 것이므로 가장 현명하며 가장 인도적인 행위라고 믿는다.

③ ②의 방법이 실패했을 경우, 적국 왕의 형제나 다른 귀족이 왕의 자리를 탐내도록 선동하여 적국 내에 불화의 씨를 뿌리고 이 씨를 기른다. 만일 적국에서 내분이 가라앉는 기색이 보이면, 옛날의 영토 소유권을 들먹이면서 적국의 이웃 국가가 적대감을 갖게 만든다. 이 이웃 국가가 전쟁을 수행한다면 후원할 것을 약속하며, 약속은 많은 돈을 제공하되 아주 적은 병력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지킨다.

④직접 전쟁을 치러야 할 경우에는 용병을 고용한다. 용병은 목숨을 빼앗는 것을 생계 수단으로 하는 야만인들이므로 얼마나 많이 전사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도덕적이고 사악한 사람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은 인류를 위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⑤병력이 더 필요할 경우, 먼저 자신들이 싸워준 나라의 병력을 이용하며, 다음으로 우방국들이 파견하는 원군을, 마지막으로 유토피아 시민들을 보낸다. 유토피아군 가운데서 연합군의 사령관을 임명한다.

한편, 유토피아인은 전쟁 무기를 발명·제조해내는 일에 뛰어나며 이 무기를 실전에 사용하기 전까지는 극비에 부친다. 패전국에 대해선 지출된 전쟁 경비뿐 아니라 영토 중 쓸모 있는 땅의 소유권을 요구해 많은 외국으로부터 획득한 재산이 어마어마하다. 또 패전국에 세금 징수원을 파견해 거두어들인 세금 중 쓰고 남은 돈을 그 나라에 다시 빌려준다."


이쯤 되면 몇 백 년 뒤를 내다본, 미국의 국가 건설 마스터플랜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이 마스터플랜은 현대 미국의 대외 정책일 뿐 아니라 과거 백인들의 인디언 침략사이기도 하다. '미국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가 붙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을 보면 이것과 비슷한 방식에 전율할 것이다.

ⓒ김영종

이제 유토피아국의 내부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1. 사유재산이 없는 작은 나라.
2. 노동이 즐겁고 여섯 시간만 일해도 풍족하게 사는 사회.
3. 적절한 인구, 공평한 분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복지사회.
4. 황금을 돌같이 보는 사회.
5. 행복을 위해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회.
6. 배우기를 좋아하고 탐구한 것을 개발하는 사회.
7. 최소한의 법률로 유지되는 도덕적 사회.
(…)
10.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
11.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계급 없는 민주 사회.


이 내용을 보면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의 비전과 정체성이 바로 이 유토피아 사상에 나오는 '사회주의적 모럴'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독교사회주의 같은 청교도적 도덕성 이상은 아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 '사회주의적 모럴'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정신이다.

미국 사회의 황금만능주의는 4항(황금을 돌같이 보는 사회)과 같은 청교도의 금욕주의가 배태한 결실이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가 탐욕이 아니라 세속적 금욕을 통해 발전해왔음을 놀라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구명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최고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돈을 벌고 더욱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향락을 엄격히 피하면서. 그것은 모든 행복과 쾌락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돈 버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여기므로, 개인의 행복과 효용에 대립되어 매우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 윤리는 인간이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

나아가 이 세속적 금욕주의는 기업가 정신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공유하는 가치관이다. "경제사의 모든 시대에 볼 수 있는 무모하고 파렴치한 투기업자나 경제적 모험가나 단순히 부호"가 아니라, "엄격한 시민적 관점과 원칙을 갖고, 냉정한 인생의 학교에서 자라나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특히 공정하고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생활 원리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노동의 이유를 묻다>, 노명우 지음, 사계절 펴냄).


지금도 미국인들은 17세기 청교도 사회를 이상적인 세계로 간주하며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극도로 치달을 때마다 그 사회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미국의 17세기 청교도 사회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모럴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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