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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엘리트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있나?"

[김영종의 '잡설'·28] 엘리트주의만 남은 진보 ①

엘리트주의만 남은 진보 ①

어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엘리트주의를 한참 성토하는데, 옆 사람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누가 엘리트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있나?"

갑자기 조용하다. 뭔가 찔린 듯 아무도 대꾸를 못한다. 다들 젊었을 때 민중을 외치며 엘리트주의를 혐오했던 운동권 출신인데 꿀 먹은 벙어리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 주위의 진보 인사들 중에는 그 물음에 답할 만한 사람이 없다. 지금 모두 다 엘리트인 것이다. 학벌의 연대에 의해서.

이 글에서는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데 앞장섰고 지금도 그 생각에 큰 변화가 없는 학생운동권 출신의 진보적 지식인을 비판하려 한다. 이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고 여전히 엘리트주의를 부정하는 건전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점 때문에 매우 생산적인 비판이 되리라 기대한다.

학생운동은 한국 진보운동의 주력이었다. 운동권 학생은 사회가 선망하는 엘리트로 대부분 가난한 농민이나 서민의 자녀들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류대학을 나와야 엘리트가 된다. 엘리트는 이 땅에서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0순위다. 계급 상승을 통해 돈과 명예를 함께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권 학생은 군사독재의 현실 앞에서 개인의 영달이 보장된 미래를 반납하고 민중과 사회를 택했다. 사회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을 보장해주는 수단인 학벌에 대해서는 좀 더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사회를 계급의 체계로만 보았지 계급 사회를 자발적으로 추종하게 하는 힘이 자본 자체(형이상학이 배제된 자본)가 아니라 자본이 자본이게 하는, 즉 자본에 '인격과 품위를 부여하는 학력/지식'이라는 점은 간과했다. (종교가 신학에 의해 뒷받침되듯이 자본도 교육/지식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적 지식과 학문은 근대 초기에 부르주아지가 귀족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 이것이 교양의 연원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경멸해 출세도 거부하면서 자본과 싸웠지만 결과는 자본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것이 됐다. 천민형 자본주의를 부르주아형으로 고급화시켰는데, 대표적인 예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쟁취, 노동3권의 보장 따위를 들 수 있다.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진 뒤 이들은 길을 잃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1989년 동유럽권 사회주의가 붕괴됐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운동을 놓아버렸다고 말한다. 과연 이들은 사회주의 붕괴로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어미 새를 따라가다 길 잃은 아이 새의 충격 같은 것?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건축의 근거'를 잃은 충격일 것이다. 진보 논리로 무장된 이들에게 '건축의 근거'는 곧 생명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그게 아무리 운동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해도 실제로는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관념의 집'을 허물어버린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다. 그것은 어차피 허물어야 할 건축물이다. 그 집을 허물지 않고는 잃어버린 길을 실제의 현실 속에서 되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진보주의자들에게 가장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 '관념의 집'을 허물려면 학력/지식만을 자본으로 갖고 있는 스스로가 자신의 토대를 허물고 다시 태어나는,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용철

진보주의자들은 한국 사회가 부르주아형 자본주의로 진전해나가는 데서 '학력/지식'이 지렛대 구실을 하는 점을 주목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게 이루어졌다면,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 감각조차 잃은 미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르주아형 자본주의사회(이에 대한 개념은 뒤에 규정하겠다)에서는 전문가가 여론을 지배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운동권의 발언은 설 자리가 없다. 관념적인 주장만 있고 구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이 주거했던 '관념의 집'이 군사독재(천민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는 성공했으나 대의민주주의(부르주아형 자본주의)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제는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 발언을 독점하고 사회의 진로를 주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운동권 지식인이 애당초 바라던 사태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혁명으로써 타도해야 할 대상이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도 못한 것⎯느끼지 못한 까닭은 본래적이기 때문이 아닐까?⎯은 자신의 가치관이 부르주아형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불과함을 뜻한다. 더욱이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운동권 지식인은 자신들의 주장에 전문성과 학문적 근거가 희박함에 좌절하여 침묵하거나 공부하러 대학으로 돌아간다. '관념의 집'은 환영이었고 실체는 그것(부르주아형 자본주의적 가치관)이었던 것이다.

옛날 운동권 학생들은 민중과 함께하기를 열망하면서 계급 타파의 이념 아래 엘리트주의를 혐오했다. 민중과 동일한 계급의식을 지니려는 의지는 자신의 엘리트주의적 기호, 취미, 감성마저 털어내고자 했다. 얼마나 훌륭한 청년인가. 그리고 얼마나 고결한가.

그러나 이 청년은 '네차예프적 요구'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 요구란 직업적 혁명가상(像)을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네차예프 사건을 보고 소설 <악령>을 썼을 만큼 이 사건은 어떤 상징성을 띠고 있다. 여기서 잠깐 네차예프(1847~1882)에 대해 알아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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