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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와 김기웅,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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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홍익표와 김기웅,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기자의 눈] 'NLL 매카시즘'에 맞섰던 6년전 김기웅을 돌아본다

통일부는 12일 일부 고위공무원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6일과 10일 북한과의 당국 간 실무회담에서 수석대표를 맡았던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을 대기발령하고, 김기웅 현 정세분석국장을 신임 단장으로 임명했다.

통일부의 인사는 몇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북측과의 회담이 앞서 2회 있었고, 오는 15일에는 추가 회담이 예정돼 있다. 남북은 아직 3차회담 대표 명단을 교환하지는 않은 상태라서 김 단장이 향후 회담의 수석대표를 맡게 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북협력지구 지원단장은 개성공단을 관리하는 주무 국장이라는 점에서 김 단장이 수석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연속성을 띈 회담이 진행되는 와중에 수석대표가 교체되는 건 이례적이다.

일각에선 앞선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서호 단장의 유연한 태도가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한다. 그러나 통일부는 신임 김기웅 단장에 대해 개성공단 근무 경력 등을 거론하며 "회담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김기웅 단장은 남북회담사무국 회담기획과장과 개성공단사업지원단 기획총괄팀장, 회담본부 회담1과장 등을 거치며 대북 협상 분야에서 200여 차례의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돼 통일부와 '박근혜 인수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김 신임 단장의 과거 이력이다. 김 단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8월 22일 '국정브리핑' 기고문을 통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NLL을 놓고 이념 싸움, 정쟁만 벌이면 되겠느냐. 현실적으로 평화를 만들기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

당시 통일부 평화체제팀장이었던 김 단장은 '서해바다를 평화와 민족 공동번영의 터전으로' 제하의 이 기고문에서 "보다 현명하게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의 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그럼 점에서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있는 서해 평화정착문제도 더 이상 그 해결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라며 "한 가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문제를 이념논쟁의 소재로 제기해 우리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혹은 정치적 이해득실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틈만 나면 NLL 사수를 들고 나오는 일부 정치세력에 던진 견제구였다.

그는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며, 우리 내부의 정파 간 이해를 위해 이용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며 "극단적 주장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현명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검토하고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해 불가침 경계선에 대한 논의만으로도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생기는 것으로 과장한다면 영원히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찾을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해 불가침 경계선문제는 그 성격상 남북이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그리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있기 때문에 그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그 이전이라도 이 지역에서의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그리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하겠다. 혹여 이러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조차 마치 우리 측이 북측에 일방적으로 큰 양보나 하는 것처럼 매도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스스로를 '군대 스타일'이라고 표현할만큼 딱 부러지는 외모와 언변과는 달리,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이 글에서 선보인 김 단장은 이제 박근혜 정부의 고위관리로서 남북회담 수석대표로 나서게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보수 정부의 대통령이고, 군 출신 국정원장이 NLL 문제로 국내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어도, 협상이란 결국 남북이 마주앉아 풀어야 할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상대가 있는 문제이고,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한 문제다.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성 상, '평화 지키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군(軍)의 논리를 이해한다고 쳐도, '평화 만들기'가 주 업무인 통일부는 역지사지의 유연한 사고와 외교적 화법을 구사해야 옳다. 국토부가 이익의 논리로 난개발을 주장하면, 환경부가 보존의 논리로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게 다양한 사회적 이해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부처를 구성한 원리다.

김 단장 인선은 이같은 남북관계의 엄연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멀쩡히 잘 지켜지고 있는 NLL을 이제와 새삼 '사수'해야 한다느니, '포기'를 했었다느니 하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정치공세인가를 확인해 준다. 그런 측면에서 김 단장이 과거 스스로 강조했던 '평화 만들기'를 위해 한 장의 벽돌을 놓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2011년 김기웅 당시 통일부 통일정책기획관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방한한 '디 엘더스' 실무진과 면담하고 있다. 전직 국가수반 등 국제 원로들로 이뤄진 '디 엘더스'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등이 소속돼 있으며,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이 단체는 남북관계가 극도로 냉각됐던 2011년 4월 한국과 북한을 번갈아 방문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한편 국정브리핑에 '김 팀장'의 글이 실린 같은 날, 동일한 주제, 비슷한 문제인식, 유사한 시각의 글이 한 편 더 실렸었다. 글의 필자는 이재정 당시 통일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홍익표 박사였다. 그는 오늘 정치권 이슈의 중심이 된 '귀태(鬼胎) 발언'의 주인공이다. 2012년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해 현 민주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홍 의원이 바로 그이다.

홍 의원은 '서해교전과 NLL 논란에 관한 2가지 진실' 제하의 당시 기고문에서 "NLL에 대한 우리 내부의 논의나 남북 간의 협의를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NLL이 조금이라도 변경될 경우 한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NLL의 존재가 서해상의 안보와 충돌방지에 도움이 되었다면 지난 1999년과 2002년 2차례에 걸쳐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의 원인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며 "쌍방이 합의한 경계선은 분쟁억지와 평화체제에 실제 도움이 되는 반면, 합의하지 않은 경계선은 도리어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이재정 장관 하의 통일부에서, 정책보좌관과 과장급 공무원으로 '합'을 맞췄던 두 사람이 5년 후 같은 날 나란히 뉴스 한 꼭지씩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한 사람은 정부와 여당이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불량 정치인'처럼 매도되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바로 그 정부의 핵심 고위관리로 발탁됐다. 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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