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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주 침묵' 깨고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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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주 침묵' 깨고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분석] 朴 "댓글·NLL 의혹으로 혼란 거듭돼 유감" 발언 속뜻은…

2주 간 침묵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작심 발언'을 쏟아 내면서 그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대선의 정통성으로까지 불씨가 번지는 데 대한 선제적 진화 작업이란 해석이 먼저 나온다. 이후 국면에 대비해 새누리당 등에 내리는 '가이드 라인'의 성격도 읽힌다.

먼저 시점이 절묘하다. 박 대통령의 발언 직전 주말 동안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주축이 된 시민사회 연대체는 주최측 추산 1만 명이 넘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선거 원천무효 투쟁이 제기될 수 있음을 엄숙히 경고한다"고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런데도 대선 과정에 문제가 됐던 국정원 댓글과 NLL 관련 의혹으로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서 유감이다"라는 이날 박 대통령의 말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불편함과 일말의 위기감이 엿보인다.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논란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후 박 대통령은 3부분으로 나눠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따른 이른바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 △국정원 개혁에 대한 입장을 각각 밝혔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댓글 의혹"

이들 사안에 대한 인식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은 위 사안들에 대해 "국정원 댓글과 NLL 관련 의혹"으로 규정한 부분이다. 이로써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댓글 관련 의혹"이 됐다. 지난 대선 기간 권영세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현 주중대사),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현 국회의원) 등이 대화록을 이미 열람했고 그 내용을 선거에 활용했거나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야당은 이 역시 국정원의 정치 개입 행위로 보고 있다. 정상회담 대화록 보관처가 국정원이기 때문이다.

즉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두 가지 행위, '인터넷 여론 조작'과 '남북정상 대화록 활용' 가운데 전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규명을 강조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것. 이는 지난달 24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공개서한에 대한 답에서 "국정원이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한 데서 오히려 물러선 것이다. '야당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의혹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며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조사한 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 이후는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민생에 앞장서 달라"고 했다. 이는 새누리당에 대해 '국정조사에서는 댓글 의혹은 규명하되 다른 부분으로 논쟁이 번지지 않게 해 달라'는 지침을 준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정상회담 대화록의 사전 유출 의혹에 대한 침묵은 지난달 24일 "대선 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면서, '댓글 의혹'은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자신과 상의 없이 저지른 일인 만큼 얼마든지 규명해도 떳떳하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NLL 의혹"

다음으로 박 대통령은 "NLL 관련 의혹"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정원에 의해 정상외교 비공개 대화의 기록이 겨우 6년 만에 무단 공개되는 해외토픽성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국정원과 여당이 쟁점화하려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주장의 진위 공방이 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 이날 발언에 나타난 박 대통령의 인식 수준이다.

청와대는 지금껏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 행위에 대해 '청와대와 무관하다. 국정원이 알아서 한 것이며, 책임도 국정원이 질 것이다'는 입장을 관계자 선에서 내놓았을 뿐이다. 이 행동의 불법성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이 발언한 적은 이날을 포함해 한 차례도 없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결과적으로 정상회담 기록 공개 사건을 "NLL 관련 의혹"으로 '물타기'하려 했다는 비판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이곳이 뚫리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영토를 뺏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생명선"이라고 엉뚱하게 잘 지켜지고 있는 NLL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NLL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 발언과 같은 의도, 같은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제기된 것 자체가 유감"이라고 한 부분은 눈길을 멎게 한다. 지난 대선 때부터 틈만 나면 이 문제를 논란으로 제기한 주체가 새누리당과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라는 점에서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정치권에서 국민들에게 NLL 수호 의지를 분명하게 해서 더 이상의 논쟁과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말은 여당의 '출구 전략'에 힘을 싣는 발언이다.

"국정원 개혁하라…'셀프'로"

박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국정원 개혁에 대해 언급했다. "과거 정권부터 국정원은 많은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면서 "저는 이번 기회에 국정원도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특히 "국정원은 그 본연의 업무인 대북정보 기능 강화와 사이버테러 등에 대응하고 경제안보를 지키는데 전념하도록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는 언급을 놓고서는 국내 파트의 대규모 축소를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당 내에서 "정치권에 종북세력이 있나 없나. 없다면 (국내 정치 파트를) 축소하거나 하는 국정원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종북세력이 있다면 국내 정치 파트를 완전히 없애기 어렵지 않겠느냐"(4일,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강경한 발언이 나오는 판이라 '국내 파트 축소'를 시사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이에 덧붙여 "(국정원은)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한 부분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안병욱 카톨릭대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꾸린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사례에서 보듯, 정권의 관심과 외부의 조력이 있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마당에 국정원 스스로 하는 개혁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하는 우려가 대번에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대통령의 '가이드라인'대로 사안이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날 새누리당 강은희 원내대변인은 "외부에서 국정원 전체 일에 대해 일일이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오버'"라며 "문제가 있으면 내부에서 가장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안을) 국정원 자체에서 해 오되, 그게 객관성을 가지고 누구나 공감할 수준이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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