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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장님' 국세청?…"조세피난처 현황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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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장님' 국세청?…"조세피난처 현황 깜깜"

<뉴스타파> 명단 발표로 '당혹'…의지는 있나

<뉴스타파>가 22일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둔 한국인 명단들을 대거 확인했다고 발표하면서 국세청이 당혹감에 빠져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국세청은 역외탈세를 핵심 과제로 삼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부해왔으나 하루아침에 "해직언론인 몇십명이 모인 신생 언론이 이런 발표를 하는 동안 국세청은 뭐하고 있었느냐"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국세청은 왜 조세피난처 한국인 계좌 명단을 못 구할까?)

이번 발표에 따르면,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쿡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둔 한국인만 수백 명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도입한 해외계좌신고제도가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이 지역에 자진신고한 한국인은 한 명도 없고, 국세청도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뉴스타파> 김용진(왼쪽) 대표와 최승호 뉴스타파 PD겸 앵커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둔 한국인 명단 1차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의심받은 국세청 역외탈세 의지


<뉴스타파>의 발표가 예고된 직후부터 국세청의 역외탈세담당관은 하루종일 기자들의 전화나 메시지가 쏟아졌고, 국세청에서는 허탈감 속에 분주한 분위기였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자료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처음 입수한 것이며, 한국의 <뉴스타파>에는 자료를 제공하면서도 자료 제공을 요청한 국세청에 대해서는 거부해 역외 탈세에 대한 정부기관의 의지 자체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은 23일 "국세청은 눈뜬 장님과 마찬가지"라면서 강도높게 비판했다. 박 의원은 "국세청 등 과세당국이 응당 해야 할 일을 뉴스매체가 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강조해온 지하경제 양성화와 역외탈세 근절이 공염불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국세청이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 컴퍼니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국세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 6월 현재 우리나라가 쿡 아일랜드에 투자한 현지기업은 하나도 없고,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현지기업도 82개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면서 "뉴스타파가 밝힌 페이퍼 컴퍼니 개수에 비해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현지기업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은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조세피난처의 투자현황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거나 엉터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국세청,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박 의원은 "더욱 심각한 것은 뉴스타파가 공개한 3개의 페이퍼 컴퍼니는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버진 아일랜드 투자기업 명단에는 아예 없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면서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세청은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우리나라 현지기업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셈이고 현재 국세청의 시스템으로서는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를 막을래야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박 의원은 "쿡 아일랜드의 경우 작년 3월에 우리나라와 조세정보교환협정이 발효된 상태임에도 페이퍼 컴퍼니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면서 " 수년전에 이미 버진 아일랜드를 포함한 여러 개의 조세피난처와 조세정보교환협정에 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식 발효절차를 밟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과세정보 파악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현재 국세청은 우회적으로 비슷한 자료를 확보했다거나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탈루 혐의를 찾아내기 위한 정보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정부가 탈루 혐의가 있다고 볼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245명의 한국인 명단이 확인됐다면서 3건의 페이퍼컴퍼니와 이를 운용하는 한국인 5명의 실명을 공개했어도 국세청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탈루 혐의가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김덕중 국세청장도 23일 출근길에 만난 <연합뉴스> 기자에게 "아직은 어제 발표된 사람들이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겠다고 미리 얘기하기는 이르다"면서 "내용을 분석해 탈세 혐의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조세피난처를 조세도피처로 바꿔 불러야"

이때문에 이날 오전 9시 30분 국세청 앞에서는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세청의 강력한 세무조사와 처벌을 촉구하며 국세청을 압박했다.

이들은 조세피난처의 '피난'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조세회피를 위한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정당한 행위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라면서, 조세피난처를 '조세도피처'로 바꿔 불러야 한다면서 "조세도피자들인 페이퍼컴퍼니 설립대상자들의 해외탈세 3건을 국세청에 제보하며, 아울러 이들을 포함한 대기업 및 고소득층의 역외탈세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 실시와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뉴스타파>의 발표가 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대해 역량을 집중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뉴스타파>가 취재를 통해 페이퍼컴퍼니와 연계된 계좌까지 운용한 것으로 시인까지 받아낸 이수영 OCI 회장 부부 같은 경우, 국세청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한 <뉴스타파>에 일격을 당한 국세청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역외탈세 정보 확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 관계자도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이와 연계된 계좌까지 보유한 한국인 명단이 발표돼 세무조사에 나설 근거는 이미 마련됐다"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었다는 것 자체는 국내에 내야할 정상적인 세금을 최대한 피하려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만큼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서도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고, 페이퍼컴퍼니와 연결된 계좌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페이퍼컴퍼니와 연결된 계좌가 확인돼도 탈세로 볼 만한 거래 내역을 찾아내는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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