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관련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국세청의 협조 요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연합뉴스> 특파원과의 워싱턴 현지 인터뷰에서 "정부가 정말 이런 자료가 필요하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본다. 총원이 4명에 불과한 우리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라면서 강한 불신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 '지하경제양성화''를 시대적 소임이라고 강조해온 김덕중 신임 국세청장. 취임 직후부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문제로 '역외탈세' 에 대한 의지를 시험받고 있다. ⓒ뉴시스 |
ICIJ, 국세청과 접촉조차 거부하는 불신감
실제로 협회와 자료분석과 보도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인 진보성향 일간지 영국의 <가디언>은 "2008년 금융위기로 선진국에서 세수 문제가 부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외국자본 유치를 명분으로 역외탈세를 정부가 묵인해왔다"면서 "사실상 정부는 역외탈세의 공범이었다"고 지적했다.
24일 국세청에 따르면 ICIJ가 일부 명단을 처음 공개한 직후 이메일과 전화연락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두 거부하고 지금은 국세청 이메일이 자동 반송 되도록 조치했고, 대한민국 국세청 번호가 찍히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을 정도로 외면하고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이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여러 채널을 통해 ICIJ측과 접촉 중이지만 정부 당국에는 (명단을) 주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 다른 채널을 통해 계속 접촉 중"이라고 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정말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다면, 정부와 자료를 공유해서 전문적인 지원과 분석작업을 하는 것이 신속하고 정확한 일처리가 될 것"이라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자진신고 한 명 없는 동안 뭐했나"
하지만 일각에서는 ICIJ가 정부 세정당국에 대한 자료 공유를 거부할 정도로 불신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꼬집고 있다. 국세청이 스스로 밝혔듯 해외금융 신고제도가 시행된 2011년 이후 지금까지 BVI 계좌는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으며, ICIJ의 한국인 명단 중에 탈세 가능성이 높은 계좌가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인구가 3만 명도 되지 않는데 100만 개에 가까운 페이퍼컴퍼니가 등록되어 있을 만큼 '조세피난처'의 대표적인 곳으로 악명높은 곳이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지난 2011년 BVI와 조세정보교환협정 가서명을 했고, 협정발효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협정이 발효되면 탈세를 목적으로 상대국에 계좌를 개설하고 거래했다는 의심을 할 만한 정황이 있을 때 관련 정보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세정보교환협정이라는 것 자체가 '여론 달래기용 형식적 제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역외거래는 의심할 만한 정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이런 정황을 파악한 뒤에야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은 실효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조세피난처 실태에 대한 역작으로 꼽히는 <보물섬>의 저자 니컬러스 색슨은 이 책에서 "한 개인이 타국 내에서 소득을 발생시키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모국의 세무당국은 이를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관련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이렇게 공유된 정보가 적절한 보호 장치 하에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현재 정보교환에 관한 한 가장 주도적인 기준인 OECD의 이른바 '요청 시 제공'이라는 기준은 기만적"이라고 지적했다.
OECD 기준의 '요청 시 제공'은 특정 정보가 필요한 국가는 타국에 정보를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그것도 쌍무적인 조건 즉, 서로 주고받을 것이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정보교환협정을 맺어도 개발도상국에 요청할 정보가 별로 없는 선진국에서는, 개발도상국의 세무당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이때문에 색슨은 "다자적인 조건에서서 이뤄지는 자동적 정보교환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각 정부가 정보 제공요청을 받지 않아도 자국 납세자들의 소득과 자산 정보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방식이 이미 유럽에 시행되고 있다"면서 국제적인 공조가 더욱 강화될 것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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