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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해야 하는 이유

[이철희 칼럼] 단일화 동의한 이상 안철수도 책임 느껴야

한 고비 넘어섰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전원 사퇴했다. 단일화 효과, 즉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 작업이 이뤄낸 쇄신의 성과다. 외형상 갈등으로 비쳐졌지만 좀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문 후보가 민주당 쇄신을 버거워하니 안 후보가 거든 셈이다.

사실 민주당의 인적 쇄신은 진즉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었다. 9월 16일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최종 후보로 선출된 날부터 제기되었고, 사흘 뒤 안 후보가 출마의 명분으로 이걸 내걸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민주당과 문 후보가 그 당연한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 단일화 중단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협상 중단이 발표됐을 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났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사퇴가 뒤늦긴 했지만 그럼에도 대승적 결단임에는 틀림없다. 합법적으로 출범한 지도부가 비정상적 사퇴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니 그 자세는 민주적 리더십의 훌륭한 사례라고 하겠다. 또 이번 사퇴는 문·안 단일화를 통해 민주당이 새롭게 탄생할 것임을 분명히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단일화가 단순히 권력을 위한 담합이 아니라 정치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에서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듯 일부 파행과 갈등도 단일화의 일부다. 어쩌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런 위기를 통해 후보들이 리더십이 부각되는 법이다. 이번에도 문 후보는 내부의 혼선과 감정다툼 없이 지도부 사퇴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안 후보도 한동안 뒤편으로 밀려났던 정치쇄신 프레임을 다시 복원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단일화가 그냥 순항했다면 보여주기 어려운 드라마였을 것이다.

흐름이나 후보 구도의 측면에서 볼 때, '안철수 현상'이나 안 후보의 등장은 새정치를 향한 열망의 표현이자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대중적 거부에 다름아니다. 오랫동안 가장 강력한 후보의 위상을 누려온 박 후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마땅치 않게 생각하나, 그렇다고 민주당이 미더운 것도 아니어서 자연스레 대안을 물색하던 중에 발견하고 호명한 것이 안철수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안 후보도 이런 객관적 맥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안 후보가 '안철수 현상'을 사유화하려 하면 할수록 그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다.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대중적 요구를 동력으로 삼아 정치를 바꾸려 해야지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안철수 현상을 계속 사회화할수록 그의 운신 폭은 넓어질 것이다. 안철수 개인이 대통령직에 오르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설사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안철수를 통해 새로운 정치의 장이 열리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려면 대중과 정치권을 대립시키는 구도로는 어렵다. 이렇게 하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방법은 민주당을 바꾸는 것이다. 더 크고 새로운 정당으로 바꾸는 것이 정치혁신의 가장 핵심적 과제라는 말이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것도 필요하고, 제도로서 입법부의 권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과제도 좋은 정당이 없으면 기대했던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 문제는 정당, 즉 민주당의 혁신이다. 이건 안 후보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과제다.

민주당 지도부의 사퇴 성명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님과 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존중해 주십시오. 민주당은 그 분들이 이끈 정당이고, 박지원 원내대표님을 비롯한 이른바 동교동의 분들, 그리고 이른바 '친노'는 그 분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사선(死線)을 넘었고 평화적 정권교체와 참여적 정치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민주당을 구태정당으로 지목하고, 이 사람들을 청산 대상으로 모는 것은, 두 분 전직 대통령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안 후보께서도 이 분들을 존경한다고 하신 바, 그 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당은 지도부, 국회의원·단체장을 비롯한 정치인, 대의원·당원, 지지자로 구성된다. 지도부와 정치인을 지칭하는 경우 조직민주당, 당원과 지지자까지 포함할 경우 대중민주당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금 현재 민주당의 인적 쇄신 대상은 조직민주당의 일부인 지도부일 뿐이다. 당원과 지지자를 모두 포함하는 대중민주당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쇄신 주장을 곧 민주당을 구태정당, 청산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의도된 프레이밍(framimg, 틀 짜기)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 후보는 며칠 전 단일화 중단 이유를 밝히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 문재인 후보께서 낡은 사고와 행태를 끊어내고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께서 요구하고 계시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미 제기되고 있는 당 혁신 과제들을 즉각 실천에 옮겨 주십시오. 그래서 전국의 민주당 당원들께 새 정치의 자긍심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런 안 후보에게 민주당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혐의를 덧씌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그간 느꼈을 굴욕감을 생각하면 이해도 되지만 그래도 사태 인식의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왜곡이다. 서로가 뒤끝 없이 담백하면 좋겠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안 후보가 새겨야 할 대목도 있다. 안 후보는 민주당, 특히 대중민주당을 존중해야 한다. 대중민주당은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현실적 수단이 있어야 하듯이, 민주당 없이 정치쇄신을 이룰 수 없다. 정치쇄신이든 정권교체든 '민주당 만'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민주당 없이'도 어렵다. 민주당을 더 크고 새로운 정당으로 바꾸는 데에 안 후보의 책임도 적지 않다. 단일화에 동의한 이상 민주당 쇄신에 안 후보가 적극 나서야 한다.

이제 안 후보는 민주당 입당을 고민하고, 결단해야 한다. 후보단일화 전에 어렵다면 후에라도 해야 한다. 무소속 후보로는 설사 단일후보가 되더라고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고, 무소속 대통령으로는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개혁은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로만 달성될 수 있는 과제다. 흔히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것이 정치라 하지 않나. 안 후보는 이제 '불가피한 현실'을 받아들어야 한다.

누가 후보가 되든지 안 후보와 문 후보는 민주당을 더 크고 새로운 정당으로 만들어내는 대혁신의 공동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 내 낡은 체제, 낡은 질서, 낡은 관행을 모두 털어내고 그야말로 대중적 뿌리를 갖는 좋은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정착한 것은 정당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은 헌법 개정이 아니라 정당의 적극적인 역할 때문이다.

영남의 장삼(張三)과 저소득층의 이사(李四)가 민주당원이 되고 싶어하고, 민주당 지지를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정당으로 민주당을 환골탈태시키는 것이 문·안 두 후보에게 부과된 역사적 책무다. 또 두 후보가 같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이 준비한 "믿고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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