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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됐다"…온화한 안철수 '직설 화법' 모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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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됐다"…온화한 안철수 '직설 화법' 모드 전환

[대선읽기] "김재철 물러나야 한다"에 담긴 뜻은?

"김재철 사장은 물러나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는 더 이상 김재철 사장을 비호하면 안 됩니다."

9일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의 말이다. 김재철 문화방송(MBC) 사장 유임을 결정한 전날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결정에,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양문석 방통위원의 폭로를 언급한 것이다.

강연 투의 온화하고 완곡한 화법을 즐겨 구사하던 안 후보의 말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어조였다. 안 후보는 이날 MBC 본사 건물 1층 로비에서 농성 중인 MBC 노조원들을 찾아 이같은 말을, 그것도 두세 번 반복해서 했다.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안 후보가 가장 '뜨거운' 현장인 MBC 노조 농성 현장을, 예정에도 없이 전격적으로 방문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안 후보 측 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이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이 시각, 5분이나 10분 후가 되면 안 후보는 MBC 노조를 방문해서 노조원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갖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거의 유일한 사전 공지였다.

발언 내용도 이례적으로 강력했다. 정치적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후보' 등 다른 정치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뭔가를 촉구하는 일 자체가 드물 정도였던 게 안 후보의 스타일이다. 제주 강정마을에 가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라'고 한 게 아니라 "책임 있는 대통령과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돌려 말했다.

자신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을 거론하면서도 "경찰 분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시킨 분들이 나쁜 분들이죠"라고 했고, 김재철 사장 연임사태 이전 가장 공세적 사안이었던 투표시간 연장 건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 선거법 개정에 동참하시리라고 믿는다", "박 후보가 결심하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나 했지 '동참하라'고 직접 요구하진 않았다.

정진석 추기경 같은 종교 지도자는 "지도자들께서 품위 있는 용어를 써주시면 그게 바로 국민에게 인격수양"이라며 "국민 일상용어의 품격을 높여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좋아했지만, 정계 안팎에서는 감사보다도 가슴을 치는 반응이 더 많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왜 달라졌을까?

먼저 최근 며칠 간은 보통의 시기가 아니었다. 그간 여러 채널을 통해 수 차례 '만나자'고 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요청에 안 후보가 '후보들끼리 직접 만나자'고 역제안 내지 화답했던 전남대 강연이 지난 5일이었다. 그 다음날인 6일에는 두 후보 간의 배석자 없는 단독 회동이 이뤄졌다. 7일에는 단독회동 합의 항목인 '새정치 공동선언' 작성을 위한 실무팀이 꾸려졌고, 8일에는 실무팀 간의 1차 회동이 있었다. 안 후보의 직설화법이 나온 것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는 9일 문화방송(MBC) 본사를 찾아 농성 중인 노조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안 후보 오른쪽은 MBC노조 정영하 위원장, 왼쪽은 이용마 홍보국장이다. ⓒ뉴시스

단지 후보가 한 마디 한 게 전부가 아니다. 선거캠프도 총공세에 나섰다. 송호창 본부장은 오전 간담회에서 "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며 박근혜 후보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 유임이 옳은 결정이라 생각하는지, △김무성 본부장에게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협의를 했는지, △김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대선주자 공동 행동에 동참할 의사가 없는지 등 3개 항목에 대한 질의였다.

안철수 후보 선거캠프가 꾸려진 이후 다른 후보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공세적 행동에 나선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단체에서 공개 질의서를 받았던 적은 있지만 말이다. 송 본부장은 "이명박 정권과 박 후보의 새누리당은 과연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방송을 권력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고 방송을 이용해 선거에서 득을 보려는 낡은 정치행태를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유민영 대변인도 오전 브리핑에서 양문석 위원의 폭로와 관련해 "청와대가 개입을 했는지, 박 후보 측 선대위원장이 압력을 넣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일"이라며 "(국회가) 청문회든 국정조사든 바로 합의해서 실질적·즉각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의 달라진 화법과 선거캠프 총공세의 공통적 배경으로는 두 가지 측면의 가능성이 짚인다. 우선은 MBC 사태 본연의 심각성이다. MBC 노조가 무려 170여 일 동안 파업을 벌이는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지만 사실상 해결된 것은 없다. 공영방송인 MBC의 추락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일이거니와, 송호창 본부장이 언급했듯 대선을 앞두고 불공정한 방송보도가 나올 경우 자칫 치명적 효과가 나올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박빙 구도가 되리라는 게 대체적인 예측이다.

그 다음은 정치적 상황이다. 유민영 대변인이 "때가 됐다"고 했던 말이 이 지점에 공명한다. 앞서 단일화 국면으로 넘어오는 신호탄이 된 지난 5일 전남대 강연의 배경에 대해, 유 대변인은 강연 직후 "때가 됐다고 판단하신 것"이라 했다.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국면에 접어든 안 후보의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민주당 및 야권 지지 성향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1차적 과제다. 지역 일정도 이주 초 광주를 다녀온데 이어 곧 부산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캠프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또 '중도' 공략이 본선에서의 과제라면, 단일화 국면에서는 야권 주자로서의 선명성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안 후보가 이날 MBC 노조의 농성 현장을 찾기 직전 소화한 일정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방문이었던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에 가깝고, 민주노총은 그보다 더 왼쪽에 가까운 분위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단일화 국면에서 지나치게 노동친화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자신이 야권 단일후보가 됐을 때 박근혜 후보와의 본선을 치르는 데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안 후보는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있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방문에서도 사실 특별히 눈에 띄는 제안을 들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김재철 사장 연임 사태는 안 후보가 공세적으로 대응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안이었다. 김 사장의 연임 결정 자체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인 까닭에, 아무리 세게 비판하고 직설적으로 퇴진을 요구해도 사실 '좌클릭'이라 보기도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안 후보가 늘 강조해 온 '상식'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MBC 노조 농성현장을 방문했다는 자체만으로 뉴스가 되고 진보적 유권자들의 마음도 흔들 수 있다.

문 후보와 안 후보 간의 새정치선언 등 단일화 관련 사안과 병행해 김재철 사장 연임 사태가 계속 뉴스에 나오며 이슈가 돼 준다면, 김 사장 퇴임을 선제적으로 요구하며 선명성을 보인 안 후보는 정치적인 효과 면에서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새누리당 문방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안 후보와 민주당 등 야권의 공동 공세를 받아쳤다. 문방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해진 의원(재선, 경남 밀양창녕)은 양문석 위원의 폭로에 대해 "야권 인사가 선거용 정략으로 한 마디 한 것"이라며 "일방적 주장이고, 야당은 어떤 사실적 근거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툭하면 국정조사고 청문회인가?"라고 비아냥대며 "야당이 진정으로 MBC 사태의 해결을 바란다면, 대주주인 방문진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MBC 내부에서 구성원 스스로 해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더 이상 MBC를 선거용 정략의 희생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안 후보에 대해서도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부화뇌동하지 말고, MBC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방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고 훈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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