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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가로막는 두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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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가로막는 두 유령

[이철희 칼럼] 야권 단일화, 필패론ㆍ불가론을 넘어서야

두 유령이 야권을 어지럽히고 있다. 하나는 문재인 필패론, 다른 하나는 안철수 양보론이다. 먼저 문재인 필패론은 문재인이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무조건 진다는 논리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는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1:1로 붙으면 노무현 대 박정희의 싸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문 후보로 단일화되면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이 많이 이탈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문 후보의 경우 20~30대의 지지가 약해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힘이 약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름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문 후보가 흔히 말하는 '숙제'를 안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문재인 브랜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고, 그의 리더십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눈에 비치는 문 후보는 '착한 아저씨'에서 '화난 아저씨'로 바뀌었을 뿐, 국면을 주도하고 조직을 끌어가는 '강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를 두고 '이기는 후보'라는 정서적 열망이 분출하지 않는 것이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 문재인은 필패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를 놓고 여론조사를 해보면,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훨씬 높다. 때문에 문 후보든 안 후보든 이 구도만 제대로 작동시키면 승리할 수 있다. 누가 이 구도를 더 간명하고 선명하게 작동하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안 후보가 다소 앞서 있기는 하지만 문 후보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문 후보가 민주당을 확 바꿈으로써 혁신의 상징성을 강화시키기만 하면 지금 보이는 양자 간의 차이는 해소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가자. 모든 낡은 체제는 변화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훅 불면 날아가 버릴 정도로 허약한 앙시앙레짐(구체제)은 거의 없다. 변화에는 보이든 안 보이든 치열한 투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문 후보가 '눈에 확 띄는' 혁신조치를 펼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혁신의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당내 경선에서 압승했고 당의 최고위가 권한을 후보에게 위임했는데 무슨 동력 타령이냐며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맞는 지적이다. 후보가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혁신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보가 그런 의지를 갖더라도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문 후보의 혁신 의지를 뒷받침할 힘이 편성되어야 혁신의 과정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민주당 내의 개혁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혁신을 추동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면 문 후보도 이 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개혁파는 침묵했다. 후보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강단 있는 목소리는 되레 새누리당 쪽에서 나왔다. 따라서 문 후보가 잘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만 탓할 일도 아니다.

안 후보도 민주당의 혁신을 추동하고, 문 후보를 거들어야 한다. 민주당 전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공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혁파되어야 할 대상은 민주당의 낡은 체제이고, 그를 지탱하는 지도부다.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층이 아니다. 정치학자 키(V. O. Key)에 따르면 정당은 3가지로 구성된다. 유권자 속 정당(Party in the electorate),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정당(party in office), 정당조직(party organization)이 그것이다. 이 중 유권자 속 정당은 이 당을 지지하거나 선거에서 이 당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를 말한다. 이들이 정당의 핵심이다.

이들의 상당수가 민주당의 낡은 체제에 반기를 들고 안 후보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때문에 안 후보가 민주당을 통째로 비판하면 이들의 자존심에도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갖고 있는 변화의 열망을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받아 안아서 강력한 혁신의 에너지로 뿜어내야 한다. 즉 문 후보가 민주당 혁신을 해낼 수 있도록 힘을 합치고,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안 후보가 보여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안 후보와 문 후보가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 정치혁신에 대한 합의를 해내고, 쇄신 드라이브를 함께 펼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 자리는 단일화를 의제로 하는 만남이 아니라 서로 지향하는 바가 같은 분야에서 공동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다. 혁신을 상징하고 추구하는 두 후보가 만나서 야권을 옥죄는 낡은 시스템을 혁파하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새로운 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 야권에선 두 후보 외에 뚜렷한 혁신주체가 없다. 새정치든 정권교체든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두 후보는 지금 만나야 한다. 그래서 경쟁이 야기하는 차별화 외에 함께 풀어가는 동질화의 과정도 진행해야 한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왼쪽)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지금 드러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야권 단일후보로는 안 후보가 더 적합해 보인다. 확장성이 더 있어 보인다. 26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문 후보로 단일화 때에는 안 후보 지지의 11.3%, 안 후보로 단일화 때에는 문 후보의 6.5%가 박근혜 후보 지지로 움직인다. 흐름상으로 보면, 9월 18일 조사에 비해 문 후보 지지층의 안 후보 지지율은 80.1%에서 88.7%로 늘어났다. 반면 안 후보 지지층의 문 후보 지지율은 84.9%에서 79.4%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안 후보가 더 강한 후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게 있다. 이런 흐름은 양 후보 사이에 단일화의 명분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면적으로 비교할 때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두 후보가 단일화의 명분을 만들어 가면서, 단일화를 통해 창출할 새로운 세상의 그림을 보여주면 두 후보의 지지층이 더 흔쾌히, 더 넓고 깊게 뭉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패배, 안철수=승리의 도식은 사라질 것이다. 즉 문재인 필패론은 공허한 얘기가 된다. 나아가 견고한 지지층을 가진 문 후보가 더 강한 후보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

문재인 필패론은 평면적으로 누가 더 경쟁력 있는 후보인지 묻는 파당적 프레임이다. 두 후보 중 누가 더 나은지에 초점을 맞춘 인식틀이다. 이건 옳지 않다. 기계적 단일화의 관점이다. 두 후보가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하는지 따지는 통합적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 국민적 단일화의 관점이다. 그래야 정권교체를 원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이 단일화에 의해 투표장으로 대거 몰려 갈 것이다.

안철수 양보론은 무소속 불가론으로 거칠게 등장했다가 이제는 단일화 담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명심할 게 있다. 단일화가 절대선도 아니고, 필승의 비법도 아니다. 따라서 생각이 비슷하니 기왕이면 단일화해서 새정치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주장과 별개로 단일화를 절대선으로 설정하는 단일화 담론은 자칫 특정 후보를 편드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문재인 필패론이 문 후보의 양보를 압박하는 논리라면, 무조건적 단일화는 안 후보의 양보를 압박하는 것으로 안철수 양보론이라 할 수 있다. 양 논리 모두 잘못된 것이다.

단일화에서 중요한 것이 명분이라면, 제3자가 심판을 자임하면서 윤리적 잣대로 중재하거나 강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사자들이 정 안 하겠다면 그 생각조차 존중해야 한다. 성패의 관점에서 억지로 붙들어 매어 놓고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단일화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단일화는 2명의 후보를 1명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양 지지층이 만나는 것이고 두 후보가 공동후보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면 기성 정치가 재구성되고 혁신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치혁신도 정권교체가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견강부회다. 정치혁신이 없어도 정권교체가 가능할 수 있고,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정치혁신이 실종될 수 있다. 문제는 양자를 연결하는 합리적 고리를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두 후보 뿐만 아니라 야권 전체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요컨대 단일화의 핵심은 누가 후보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단일화란 단어 때문에 생긴 잘못된 이해다. 단일화는 두 후보와 그 지지층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힘을 합칠 것이냐가 본질적 내용이다.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총리나 당대표가 되느냐 하는 차원의 권력분점이 아니다. 핵심은 동반리더십(co-leadership), 공동후보(co-candidate)다. 단일 후보의 이름은 안철수나 문재인이 아니라 새정치여야 하고, 그 속에 두 사람의 정체성과 비전 등이 녹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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