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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가이 안철수, 단일화 깜짝쇼는 헛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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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가이 안철수, 단일화 깜짝쇼는 헛된 꿈

[이철희 칼럼] 단일화만 되면 필승? 스멀거리는 '단일화 피로증'

운이 좋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잘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못해서 그의 강세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흔히 용장, 지장, 덕장의 순으로 명장을 꼽지만 최고는 '운장'(運將)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빗대어 박근혜 후보가 용장이고 문재인 후보가 덕장이라면 안 후보는 운장이라고 하겠다. 과연 그 운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박근혜 후보는 갇힌(boxed in) 후보다. 사고의 틀이 박정희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리더십도 아버지의 그것대로 권위적이다. 문제의 기미를 포착하고 인식하는 기민한 통찰력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열린 시대의 수평적 리더십을 원하는 시대흐름과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예의 그 '불통'에 절로 절레절레 고개를 젓게 된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새누리당, 더 넓게는 보수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노선투쟁을 드러낸다. 김종인 위원장을 필두로 해서 일군의 중도파들이 '뗑깡'을 부린 끝에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아젠다를 다시 용인하자 노선투쟁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이한구 원내대표-김무성 위원장의 보수동맹이 가동된 것이다. 그들이 명분으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NLL이다.

정문헌 의원이 제기한 NLL 문제는 반공보수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땅의 보수는 분단체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반북을 제1의 정체성으로 여기고 있다. 이들에게 햇볕정책은 죄악이다. 햇볕정책으로 구축된 평화체제는 그 자체로 분단체제에 위협이 되는 것이니 이들로선 참을 수 없는 도발인 셈이다. 때문에 정문헌 의원이 '어설프게' 제기한 NLL 문제를 반공보수가 '재빠르게' 잡아채서 의제화시킨 것이다.

NLL 문제는 박 후보가 개혁적 보수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적 방편이다. 중도파의 득세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반북을 이슈로 반공보수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도파의 입지는 위축됐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주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도파는 보수파에게 패배했다. 정수장학회의 최필립 이사장이 박근혜 후보의 장애물이라는 이상돈 위원의 인식은 박 후보에 의해 거부당했다. 21일의 박 후보 기자회견이 이를 잘 말해준다.

보수의 미래, 보수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던 박 후보가, 과거를 연상시키며 반공보수의 품 안에서 안주하면 할수록 안철수 후보의 혁신 상징성은 빛을 발할 것이다. 흰색 배경에 검은 옷이 선명하게 보이듯, 박 후보의 과거 프레임은 안 후보의 혁신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런 현실에서 만약 선거가 박근혜 대 안철수의 구도로 치러진다면 야권에게 상당히 유리한 게임이 될 것이다.

혁신의 발걸음이 무겁기는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는 혁신 대신 통합을 선택했다. '용광로 선대위'라는 콘셉트가 이를 나타낸다. 그런데 혁신이 없다보니 통합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 효과에만 기대어 혁신을 방기하다 패배한 경험의 데자뷰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통합에 매몰돼 있다.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1:1로 맞붙었어도 통합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는데, 이제는 3자 구도이니 통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부터가 오산이다. 아무리 새누리당이 총선과 달리 혁신을 기피하고 있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혁신을 상징하는 안철수 후보의 등장 때문이다.

민주당은 한가하고, 문 후보는 안이하다. 지난 총선에서 54.3%의 투표율에도 득표율이 박빙이었으니 투표율이 그보다 올라가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긴다는 셈법이 야권의 전략이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이해찬 대표의 논리다. 지난 19일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 유권자가 4000만 명인데 투표율 65%를 감안하면 2600만 표(예상 투표자 수)로 1300만 표를 얻으면 이긴다. 새누리당은 1140만 표를 넘은 적이 없다.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후보 다 1140만 표에 그쳤다. 우린 해봤다. 노무현 후보 1200만 표, 권영길 후보 100만 표를 얻은 바 있다." 마치 530여만 표로 대패한 지난 대선에서 선거는 51:49의 싸움이라며 막판까지 느긋해 하던 걸 연상케 한다. 참 한가하다.

후보단일화는 될 것이고, 정당기반을 가진 민주당이 단일화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게 문재인 선거캠프의 전략적 판단이다. 그래서 정당후보론을 주창하고,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으로 안 후보를 압박했다. 민주당 지지층만 결집시키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 후보가 호남을 찾아 참여정부 시절을 반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효과는 미미했다. 호남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턱없이 밀리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 박근혜의 1:1 가상대결에서 문 후보가 지는 조사가 나오면서 '문재인=패배, 안철수=승리'의 도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데도 정당 운운하니 참 안이하다.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의 전략을 주도한 '이해찬 패러다임'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지지율 3등의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쯤 되면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데, 문 후보는 아직 결기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승리를 만들어내는 담대함'(audacity to win), 2008년 오바마 선거를 이끈 캠페인 매니저가 쓴 책 제목이다. 문 후보가 걸어야 할 길이 바로 이것이다. 담대한 변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문 후보가 변화를 지연시키고, 민주당 혁신을 주저하면 할수록 안철수 후보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사실 안 후보는 당장 져야 할 부담이나 급하게 풀어야 할 숙제가 별로 없다. 존재 그 자체로 변화를 상징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충족된다. 혁신 경쟁에서 밀리는 구도에선 문 후보가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어렵다. 혁신 경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누가 더 혁신을 제대로 해낼 것인지를 다투는 능력이나 기반 경쟁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야 문 후보에게 기회가 생긴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안철수 후보는 잘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따지고 보면 '운 좋게 선방하고 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 것 같다. 그가 잘해서라기보다 경쟁자들이 못해서 우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출마 선언 이후 '역시 안철수답다'는 평가를 들을만한 이벤트나 메시지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반사적 지지(negative support)가 그가 잘 버티고 있는 이유라는 말이다.

안 후보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일화 피로증이다. 될 듯 말 듯 하니 기대가 실망으로, 급기야 짜증으로까지 가는 것이다. 단일화만 되면 야권이 승리할 것이란 전망은 이미 퇴색했다. 더 이상 야권 단일화가 필승의 비책은 아니다. 단일화를 하더라도 제대로, 명분있게 해야 한다. 그 명분에 의해 그간 기권했던 젊은층,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투표 동기를 가지게 해야 승리할 수 있다.

허나 단일화의 여부부터 불투명해지면서 단일화의 명분 역시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단일화가 승리를 위한 편법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이건 패배의 길이다.

안 후보는 조만간 후보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서 제시해야 한다. 단일화의 여부부터 일정, 그리고 조건 등을 차근차근 밝혀야 한다. '단일화 깜짝쇼'에 의한 승리는 헛된 꿈이다. 단일화는 결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단일화의 과정에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올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 명분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단일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

잘못된 결정보다 나쁜 것이 무결정이다. 대중을 지치게 하는 건 선거의 금기다. 안 후보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야말로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어 가고 갈 길은 멀지 않은가.

▲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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