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가 장기간 정체되어 남북 간 상호불신 심화, 대립적 상황 지속 및 최근 북핵 상황의 악화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면에서 출범하였다. 또한 미·중 간 경쟁·협력의 교차와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한·일간 및 영토를 둘러싼 중·일간 갈등 야기, 특히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등이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안보환경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북아 평화체제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갈등 해소와 관계 정상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 지난해 12월 12일 발사된 광명성 3-2호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촉발된 한반도 안보위기는 전에 비해 매우 극단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를 비롯,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종말, '9·19 공동성명'의 사멸, 남북관계 전시상황 돌입, 남북 직통전화 및 군 통신선 단절,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의 조치로 남북관계는 사실상 단절상태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상호 신뢰를 구축해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어 핵문제 해결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추진을 가로막고 있다.
이는 남북 간의 신뢰가 있어야 대립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북한이 변화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과 전략 모색이 필요하다. 북한이 변화하기 어려운 경직되고 독특한 체제인 만큼, 확고한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동시에 미·중을 비롯한 주변국 등과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지원·협력체제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4.17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국과 비핵화 및 경제이해 관계가 일치할 때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대북정책은 미·중을 비롯한 주변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또한 남북관계는 남북한의 국내정치와 국제환경 변화와의 연관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북 간 대화와 협력이 남북관계 진전에 영향을 주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미·북 관계의 원활한 관계발전에 영향을 주는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일면 접근으로만 다룬다면 문제의 본질파악과 적절한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다. 다원적·복합적 성격에 맞는 포괄적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강력한 실행의지를 담은 단계적·구체적 실천방안을 조속히 마련, 적극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적 관리를 위해서는 북한의 긴장 고조 및 도발 행위에 대해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강력히 대응하는 한편,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화 및 협력 공간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마련하고 미·중 등 주변국들이 협조·지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남북관계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오랜 시간 정체되고 상호불신이 깊어 남북관계의 구조적 개선을 위한 정책 추진 없이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강경 또는 유연한 조치로는 관계 진전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남북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협력을 통해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쟁점 등이 해소되어야 실질적인 남북관계 정상화 및 진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새로운 남북관계의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간의 전략적 이해와 한·일, 중·일간 역사 갈등과 영토분쟁의 현실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과 체제 유동성 등의 대내외 정세 불확실성 및 불안정은 남북관계 발전과 동북아 평화번영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 정세를 고려해 볼 때, 남북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남북관계 발전의 확대문제, 북한 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문제 등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포괄적인 접근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남북 간 현안 해결은 그 문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본문제와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현안해결에만 급급해서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변화를 가져오기가 어렵다.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북핵문제, 평화체제 문제 등의 논의와 진전 없이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은 우리와 미국의 대화 제의를 거부하였다. 북한은 비핵화 문제보다 평화협정 체결에 무게를 두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먼저 보여야 한다는 대화 재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과 핵위협 포기를 대화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북 간 대화재개 조건의 상충은 그동안 누적되어온 상호불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미·북 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절충과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 균형적·단계적 접근을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북핵문제에 남북관계를 우선적으로 종속시켜서는 안 되며, 대화와 교류·협력의 단계적 추진을 통해 마련된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자생력을 키워 남북당사자 간 비핵화 회담 및 군사회담 등을 개최하여 북한을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문제 등에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지지기반이 확고할 때 북한도 이를 압박으로 느낄 것이며, 변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 콘텐츠를 마련해 일관성 있게 인내심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정책의 진정성이 보일 때, 핵문제 해결의 시발점으로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남북 상호간 신뢰형성은 과정이 필요한 것이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변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신뢰의 토대가 형성되어야 탄력도 붙고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때 진정성과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축이 정상적으로 확고히 서면 미·중도 한반도 상황에 개입으로 인한 대립·갈등이 없어질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화·협력 공간을 마련하여 정세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안보적 측면에서 강력한 대북억지력을 바탕으로 대처하면서 동시에 북한과 상시적인 '대화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북한을 '대화의 틀' 밖에 두고 변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것이며 위험한 것이다. '강경 대 강경' 방식은 상황의 악화와 불신·대결만 고취시킬 뿐,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 간의 대화의 지속만이 북한을 예측 가능하게 관리해갈 수 있는 방법이다. 남북관계는 신뢰와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신뢰와 대화를 통해 축적된 것을 바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포함된 각종 대안으로 북한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7일 청와대에서 통일부, 외교부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위기상황에서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반드시 가동되어야 한다. 문제가 있어도 인내심을 갖고 풀어야 한다."고 대화를 강조한 것이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성명을 통해 "북측이 제기하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북한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대화 제의는 매우 유의미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적극 추진을 통한 남북관계의 개선·발전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 북한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3.31)를 통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노선을 채택하고,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4.1)에서는 새 노선에 따라 핵보유를 고착시키고 핵 억제력을 항구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핵개발 강화가 대외 경제협력에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 체제는 대내적으로 체제의 안정·유지를 위해서 무엇보다 경제난 해결에 주력하고 대외적으로 체제안전보장과 경제적인 지원·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서방과의 대외경제협력 체제 구축 없이는 경제발전의 새로운 변화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만으로는 북한경제의 회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의 이러한 수요를 감안, 전략적 개입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효과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지난 정부 기간 중 남북 간 대립과 불신의 원인이 되었던 모든 현안을 회담 테이블에 상정하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평가·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남북관계 진전의 방향을 정립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이러한 과정이 없으면 상호신뢰를 회복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작업에 착수하고 새로운 남북관계 설정의 바탕 위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상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와 바탕이 마련되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실질적으로 가동되고 탄력이 붙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한·미 정상회담 및 미·중의 대화 노력 등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기 바란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동되어 앞으로 북한의 도발과 위기조성을 막을 수 있도록 남북관계 진전을 모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는 도발을 저지하고 억지하는 군사적 대비도 중요하지만, 도발을 예방하기 위해 남북 간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는 근본적 접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이 균형을 중시한다고 해도 긴장 고조와 위기국면에서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대북정책은 일관성과 인내심을 갖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안목과 호흡으로 남북 간의 변화·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전개될 때, 그 과정에서 핵문제를 비롯한 근본문제 해결의 접점도 찾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중단되면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우리의 주도권과 개입력을 상실시킬 뿐만 아니라, 북한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가 없다.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된다. 이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틀이 마련되어야 할 때이다.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위기를 접고 새로운 평화의 지평을 마련해야 한다. 조속히 남북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3년 5·6월호(제23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 1년 : 평가와 과제'입니다. * 원제 :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동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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