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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이 '현금 보존'에 매달리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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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이 '현금 보존'에 매달리게 된 이유

[해외시각] "숫자로 보는 선진국 경제, 신뢰 상실"

그리스 등 유로존 재정위기국에 구제금융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고, 구제금융을 받을 처지에 몰려도 해당 국가들이 가급적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구제금융을 최대한 손실을 줄이면서 떠날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라면 구제금융은 더욱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6월 들어서는 국내에도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강만수 KDB금융지주 회장 등 관변 경제전문가들이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이 "유로존 위기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바로 다음날 강 회장은 "지금의 위기상황은 대공황보다 심각하다"고 더 세게 나갔다.

일각에서는 '절벽 효과'(cliff effect)'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모든 악재에 간신히 버티던 세계 경제가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현상이 온다는 것이다. '퍼펙트 스톰'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지는 한참 됐다.
▲ 유로존 위기는 투자자들이 수치와 컴퓨터 모델로 파악한 선진경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일대 변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AP=연합
객관적 수치로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데...

유로존 위기 등 세계 경제가 불안해지고 도처에서 충격적인 경고들이 쏟아지니 전세계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치중하고 좀처럼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어 자금 흐름이 더욱 경색되고 있다.

금융업계나 일부 정책 당국자들은 객관적인 수치로 볼 때 이렇게 움추리고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의 금융 전문 칼럼니스트 질리언 테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에 해당하는 칼럼을 썼다.

'수치만 믿기 어려운 변덕스러운 시대(Our volatile age defies spreadsheet strategy)'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테트는 수량적 변수만으로 충분하게 여겨졌던 선진국 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로 휘청거리면서 '비수량적 변수'가 더욱 중요해진 변화로 투자자들이 충격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

'금융과학자'들, 바다에서 헤매는 신세

왜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몰두하고, 안전자산을 찾아 나설까? 그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유로존의 미래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선진국 경제와 관련된 데이터가 좋지 않고, 미국에서는 재정적자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에 대한 우려가 또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눈에 보이는 우려들에 더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상을 바라는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투자자들은 핵심 변수들이 수치나 컴퓨터 모델로 파악될 수 있다고 여겼다.

1970년대 들어 월스트리트나 런던시티에 컴퓨터 혁명이 상륙한 이후 금융은 예술이 아니라 과학으로 취급됐다. 금융업체들은 컴퓨터 모델로 과거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금융 과학자'들은 바다에서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컴퓨터 모델만으로는 더 이상 유로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의미있는 확률을 계산해 내지 못한다. 지금은 핀란드에서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정말 중요한 변수는 정치적 가치, 사회적 통합, 국민의 정체성 같은 비수량적인 요소들이 된 세상이다.

무엇보다 채권의 상환 가능성을 평가하는 핵심 요소인 '크레딧'은 수학적 의미가 아니라, 어원처럼 사회적 의미의 '신뢰'가 중요해졌다. 즉, 유권자들이 정부와 중앙은행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 은행들이 건전하다고 믿는지, 고통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시민들이 얼마나 상호 신뢰하고 협조적인지 등이 중요한 변수가 됐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이러한 비수량적인 요소들이 금융권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현금 흐름 같은 수량적인 요소들만으로 신용위험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배웠던 것이다.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네시아 같은 신흥시장에 대해 투자자들이 분석할 때 현지의 정치적 리스크, 시민적 가치, 사회문화 등에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 경제'에 대해서는 이런 질적인 요소들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플레이션과 부채와 관련된 숫자에 거의 집중했다. 그 결과 유로존 위기가 터지자 많은 투자자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졌다.

선진국 경제, 정치사회적 변동 극심해져

사회적 문제가 선진국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은 이들에게 큰 충격이다. 유럽의 유권자들은 유로존 위기 이후 10여 개의 정부를 갈아치웠고,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사회적 통합과 신뢰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선진국에 대해 이런 리스크 요소들을 반영할 전문성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다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같은 신용평가업체들은 정치문화 같은 요인들의 비중을 높이는 평가 방식을 개발하는 등 현재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컴퓨터 모델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한 고위 관료는 "경력의 대부분을 경제학 연구에 치중했는데, 이제는 정당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이런 변화에 당혹해하는 투자자나 정책당국자들이 많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들조차 "확률적으로 분석하려고 하지만, 유로존이 어떻게 될지 너무 많은 변수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니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를 거부하고, 현금 보존에 몰두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유로존 전망이 어둡다는 것만 아니라 컴퓨터 모델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하기 쉽지 않다. 금융과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에서도 변화가 심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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