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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잘못을 말하지 않으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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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잘못을 말하지 않으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인터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김정은‧광명성 총정리

남쪽에서 총선 결과가 나오고 환호와 탄식이 엇갈리는 시간, 북쪽의 정치 시계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11일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최고위직인 제1비서에 올랐다. 13일에는 '광명성 3호'가 발사됐고,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김정은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됐다. 김일성 탄생 100돌을 맞은 15일 김일성광장 열병식에서는 김정은의 육성이 최초로 공개됐다. 김정은은 마침내 당‧정‧군을 공식 장악하게 됐지만, '강성대국'의 상징인 인공위성은 공중 폭발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상황은 계속됐다. 북한의 위성 발사는 실패였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한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위반했다며 북한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16일 채택했다. 안보리의 대응 수위에 따라 북한의 3차 핵실험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수위는 과거보다 높았다. 이에 북한은 어김없이 "의장성명을 배격한다"며 반발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 - 안보리 의장성명 - 핵실험 - 안보리 제재 결의'로 이어졌던 2009년의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제 3차 핵실험으로 가는 것인가?

하지만 2009년과 2012년은 다르다. 그때의 북중관계가 오늘의 그것과 다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핵실험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모른다. 최고의 북한전문가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때와 다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다를 것 같은 실마리를 봤다고 말했다.

실마리를 발견하는 건 엉킨 실타래를 푸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 그걸 붙잡고 이리저리 빼 보려고 손을 놀려야 한다. 이 전 장관에게는 실타래를 풀 의지는 있지만, 실마리를 쥘 권한이 없다. 권한이 있는 사람들은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어디가 실마리 같다고 알려주긴 해야 한다. 작년 12월 김정일 사후 숨 막히게 달려 온 북한의 4개월을 지켜본 결과 어떤 실마리를 찾았는지 이 전 장관에게 물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성남에 있는 세종연구소에서 있었다. <편집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자료사진

"김정은, 위성 발사 실패했다고 데미지 입지 않아"

프레시안 :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려는 의도를 발사 후의 시점에서 다시 정리한다면?

이종석 : 여러 정황으로 보아 올 4월 위성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은 적어도 가을 이전에 수립됐을 것이다. 체제 단결과 김정은 권력의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 발사 기술의 진전 목적 두 가지가 다 결합된 행동이었다고 본다.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발사 실패를 인정한 게 설명이 안 된다. 실패해도 성공했다고 주장하거나, 실패했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레시안 :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년에 맞춰 부랴부랴 준비해서 실패했다는 해석은?

이종석 : 실패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건데, 사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해서 궤도에 올린 적이 없다. 물론 이번에 성공했으면 태양절을 맞아 적극 홍보할 수 있었겠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에 별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외국 언론인‧전문가 100여명을 부른 걸 보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지 않았을까?

이종석 : 그런 측면도 있었겠지만, 외국 사람들을 부른 건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과 더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김정은 시대가 되면서 북한이 투명성을 제고하고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위성 실패를 해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이고 우격다짐으로 숭배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실리적‧실용적 분위기 속에서 리더십을 확보하는 쪽으로 나가지 않나 싶다.

그런 흐름은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김정일 위원장 영결식을 생중계한다거나, 아직은 대중연설의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걸 알면서도 김정은의 연설을 생중계한다거나,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맞서 자기들의 대응 훈련 영상을 내보낸다거나…또 요즘 외국 사람들이 북한에 가면 과거보다 좀 더 자유롭게 시장을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한다.

위성 실패에 대해서도, 아마 주민들한테 '남조선에서도 두 번 실패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학습시키면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체제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확립되었다고 본다. 실패 자체가 김정은 체제에 데미지를 입힐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만약 3차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위성 실패에 대한 자존심 회복용'으로 보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풍선에 바람을 빼는' 김정은 시대의 프로파간다

프레시안 : 김정일 사후 4개월을 평가한다면?

이종석 : 사망 직후 나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당분간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4개월 동안 김정은의 리더십이 생각보다 빨리 드러나긴 했는데, 승계 과정은 예상대로 안정적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뇌혈관계 질환을 겪은 후 자기 운명을 예상해서인지 여러 작업을 했다.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외부적으로도 부지런하게 혹은 급하게 중국을 2년간 3번이나 다녀오면서 확실한 후원국으로 만들고 후계체제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 그런 요소들이 4개월 동안 김정은이 새 지도자로 공고화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레시안 : 4월 15일 인민군 열병식에서 연설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보고 '아직 어리다'는 느낌을 가졌다. 결국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와 고모부인 장성택 정치국 위원이 뒤에서 조종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데…

이종석 : 김정은이 절대권력자로 위상을 지니지만 공고화된 지도자로 가는 과정에 있다. 김정은 1인의 리더십이 완전히 작동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장성택이 김정은 체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몸짓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연설이 조금 서툴러 보인 것은 연설을 많이 안 해봐서 그랬을 것이다. 테크니컬한 부분일 뿐이다. 연설을 보면서 오히려 김정은이 김정일과 다른 통치 스타일을 지녔고 나름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시안 : 지난주 군 총정치국장 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된 최룡해와,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된 김원홍 같은 사람들이 과거 장성택과 부침을 같이 했기 때문에, 이번에 급부상한 걸 보고 '장성택의 인사'라는 평가가 있던데…

이종석 :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1인자가 될 수 없는 2인자'다. 김정은의 지배력이 완전히 확보되기 전까지 당연히 장성택의 영향력이 제일 클 것이다. 그러나 파벌과 인맥을 만들어 김정은에 대항하기 위한 영향력인지, 아니면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권력 구조를 다지고 재편하는 데에 쓰이는 영향력인지가 중요하다. 아직은 모르지만, 파벌을 만들기 위한 영향력이라고 보기 힘들다. 김정은의 사람들이 곧 장성택의 사람들인 것이다.

최룡해의 경우, 김정은 후계 체제의 강력한 메지시 중 하나가 '혁명의 대를 잇는다'는 것이다. 빨치산의 후예들이 정권의 대를 잇는다는 뜻이다. 최룡해는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의 아들이다. 또 과거 12년간 사로청(김일성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위원장을 맡으면서 일을 해 본 사람이다. 그런 요소들이 작용해서 부상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걸 가지고 순전히 누구의 인사라고 표현하긴 어렵다.

프레시안 : '장성택의 인사'니 하는 표현은 결국 남쪽의 틀로 북쪽을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 틀이 유효하지 않은 핵심적인 차이점은 뭔가?

이종석 : 남쪽에서는 권력이나 권위가 분배되어 있다. 다양한 세력이 연합해 대통령을 만들고, 그 세력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다양한 국가 기관에 속하게 되어도, 그들은 여전히 '지분'이란 걸 갖는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른바 유일적 영도체제에서 유일적 지도자 밑에서 사람들이 부속품처럼 존재한다. 그런 체제가 70년간 계속되어 왔다. 나중에 바뀔 수 있어도,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과거엔 김정일이 모든 걸 했지만 지금은 혈연관계가 있고 능력을 겸비한 장성택이 돕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목표는 여전히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가운데),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왼쪽)이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광장 열병식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앞에 잠깐 언급했지만 김정은에게서 보이는 새로운 리더십이 있다면?

이종석 : 과거 남쪽에서 키리졸브 훈련이 있으면 북한도 대응 훈련을 실제로 하면서 여차하면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쪽에서 훈련을 하니까 북한이 자기네 군사훈련 영상을 <AP> 통신을 통해 공개하면서 선전전을 했다. 남측 병영에 있는 김정은에 대한 막말 구호가 보도됐을 때,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써 있는 표적지를 군인들이 칼로 찌르는 장면을 보여줬다. 잔인해 보였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변화가 숨어있다.

북한이 외부세력과의 대결 속에서 고조되는 내부 긴장을 조절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과거에는 부풀어 오른 풍선이 제어되지 않고 빵 터질 가능성이 컸다면, 지금은 부푼 풍선이 터지지 않게 살짝 바늘로 찔러서 공기를 빼는 방식이다. 그런 장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 긴장이 고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람이 빠진다. 물리적 충돌보다는 프로파간다 경쟁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안을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이건 김정은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방식이라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외국 기자들을 불러 위성을 구경시키고 발사 실패를 인정하는 공개성과 투명성은 과거 북한의 외교 행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격다짐에서 실리적‧실용적으로 나가는 것 같다. 여전히 비합리적인 게 많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프레시안 :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1월 "경제부문의 일꾼이나 경제학자가 경영관리를 '이런 방법으로 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기하면, '자본주의적 방법을 도입하려고 한다'고 비판받기 때문에 경제관리에 관한 의견을 갖고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판을 하면 '자본주의적이다'라고 공격하는 건 북한판 색깔론이 아닌가 한다. 김정은이 '흑묘백묘론'식 실용주의를 택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종석 : <마이니치>의 보도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과거에도 북한에 대한 특종 보도를 몇 개 했었다. 과거 남측에서도 사회주의적 요소의 긍정성을 이해하자는 식으로 말하면 빨갱이라고 공격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 시장이나 개혁 같은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훨씬 더 강하게 공격받는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전통적인 분위기에 대한 경고라고 본다.

우리는 북한이 미국과의 2.29 합의도 안 지키고 위성 발사를 하는 걸 보고 여전히 막가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오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상당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그런 변화를 잘 포착한다면 남북 대결 국면을 종식하는 데에도 활용할 측면이 있다.

"도발-제재 게임에서 우리가 얻을 게 없다"

프레시안 : 위성 발사 국면에서 나온 이명박 정부의 메시지는 '위성이 아니라 미사일이다. 도발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식량 살 돈으로 미사일을 쏜다'로 정리된다. 한·미·일 3국이 같은 말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봤나?

이종석 : 북한과 한·미·일 3국은 현재 적대적 대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기보다, 상대방을 제압하고 흠집내는 게 정책의 목표로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발사한 건 인공위성이다. 다만 미사일 기술이 사용되기 때문에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경고해야 한다. 그게 객관적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북한의 도발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미·일 3국은 그냥 미사일이라고 규정해버렸다. 감정이 섞인 대응인데, 결국 적대적 대결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대응은 비합리적인 대응을 낳는다.

위성을 한 번 쏘면 북한 주민들의 몇 년치 부족한 식량을 살 돈이 날아간다고 한다. 러시아 학자들은 그보다 훨씬 낮게 평가했으니 뭐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북한 정권의 부도덕성을 드러내기 위한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로파간다도 못할 건 없지만, 그걸 하려면 적어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외면하지 않고 해야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인도적 지원을 못 하는 것도 북한 정권의 탓이라고 하면서, 북한의 모든 행동을 식량으로 환산하는 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쪽의 진실은 얘기할지 몰라도, 다른 반쪽의 진실에는 눈감는 것이다.

프레시안 : 위성 발사 후 새누리당이 대북규탄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종석 :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때에도 대북규탄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발사 다음날 바로 나왔다. 이번에도 규탄결의안을 내려면 즉시 냈어야 한다. 이미 국회 국방위원회 결의안이 발사 당일 나왔고, 며칠 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이 나왔다. 국회 본회의 차원의 규탄결의안을 낼 타이밍이 지난 것이다. 그러하면 이제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막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결의안을 내건 안 내건 큰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고 본다. 국회가 그간 뭘 하고 지금에 와서야 규탄결의안을 하겠다는 것인지…라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혹시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참관하라며 초청한 외국 기자들에게 8일 평북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추진 로켓(은하 3호)과 인공위성(광명성 3호)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북한 병사가 외국 기자들이 광명성 3호 주위에 모인 가운데 장내 정돈에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프레시안 : 위성 발사 후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의 수위에 따라, 그리고 의장성명이 나온 후에는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 따라 북한이 3차 핵실험으로까지 갈지 말지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실험까지 가는 시나리오를 다 짜놨기 때문에 뭘 해도 소용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종석 : 우린 한 번도 그런 테스트를 엄밀하게 해본 적이 없다. 북한이 유엔 의장성명과 상관없이 핵실험까지 가는 시나리오를 다 짰다고 말하려면, 의장성명을 안 냈을 때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테스트를 해봤어야 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고, 따라서 핵실험까지의 시나리오가 있다는 건 그럴듯하기는 하나 검증된 주장이 아니다. 과거 김정일과 북한의 스타일로 봤을 때 3차 핵실험으로 간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그런 건 아니다.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때와 지금은 다른 점이 있다. 일단 북중관계가 2009년 하반기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이 이번 안보리 의장성명에도 찬성했지만 그건 북한을 편든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 컸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이 북한의 일방적인 위성 발사에 기분이 나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기존의 대북관계를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해서 추가 제재를 받는다고 해도 북중 양국의 경제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까지 갈지는 나도 궁금하다. 그러나 북중관계가 달라졌고, 북한의 외교적 행위 양식에 일정한 변화가 보였다. 그런 요소들이 북한의 다음 행동을 어떻게 이끌지 한 번 봐야겠다.

무조건 핵실험으로 간다고 보는 것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악순환의 사이클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켓을 발사하면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오고, 북한이 반발해서 핵실험을 하는 사이클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정책을 하는 당국자들이 그 사이클을 받아들이면 결국 그렇게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상황이다.

핵실험을 해도 제재할 수단도 없고, 결국 핵 능력만 강화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게임에서 더 이상 우리가 얻을 게 없다. 북한을 끊임없이 상처내고 불량국가로 만들어 봤자, 북한은 이미 불량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클이 돌아가는 걸 방치하고 있다. 그 사이클이라도 돌려야만 북한의 도발을 막지 못했다는 여론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데,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이 악순환을 깨뜨릴 새로운 발상과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핵 개발을 해서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다. 오히려 핵을 포기해야 김정은이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정상국가' 북한의 길이 열린다. 김정은 체제가 정말 실리적으로 변화할 의지가 있다면 북핵문제를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약속받고 포기해야 한다. 9.19 공동성명에 그 길이 있다.

"북한의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프레시안 :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이종석 : 유시민 대표가 '새누리당은 신이 내린 정당'이라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민주통합당이 신이 내린 정당 같다. 전략적인 지도‧지휘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했는데도 두 야당이 140석을 얻었다. 야권이 질 수 없는 게임을 졌다고도 볼 수 있고 답답한 면도 있지만, 수많은 민주세력이 노심초사한 결과로 보고,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래오지 않았나.

민주적 정당은 전략적 리더십을 갖춰서, 민주적이지만 체계적이고 질서 있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일 때 신뢰감을 얻을 수 있다. 전략적 지도부가 없으면 무질서와 난맥상이 나온다. 1인 지배체제의 효율성과, 민주적이지만 전략적 지도부가 없을 때의 난맥상이 극명히 비교됐을 때, 국민들의 선택이 무언인지 명확히 보여준 것이 이번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야권에 전략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민주적 정당과 조직일수록 어떤 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탁월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정확히 판단하고, 힘을 가지고 조정하고, 전략적 체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안철수 원장 얘기가 많이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민주당은 자기 힘으로 서야 한다. 안 원장의 거취에만 관심을 쏟으면 당은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안 원장 문제는 별도로 떼어 놓고, 민주당은 자생력을 가지고 공고한 리더십을 만들고 후보를 만드는 재생산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안철수 들어오네 마네 하면서 몇 달 논쟁하면 2~3년 전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인상이 남을 것이고, 그건 위험하다.

프레시안 : 광명성 3호가 인공위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측의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판적인 반응이 나왔다. 2006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와 2차 핵실험 때보다 비판적 여론이 더 커진 느낌이다. 비로소 정상화된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을 것 같고,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일본의 진보 세력처럼 북한을 설득하고 포용(engagement)하는 것마저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

이종석 : 북한을 설득해서 끌고 가는 노력은 당연히 계속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실사구시에 기초한 객관적인 판단을 넘어설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북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화해‧협력하고 대화하자는 사람들일수록 상대방이 잘못하고 도발하면 얘기를 해야 한다.

모든 국가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가진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만 봐줄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행동에 품을 수밖에 없는 의심을 풀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주장하면 국제공동체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느 세력이건 그런 북한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첫째, 북한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자기네 노선을 일방적으로 이해하려는 세력을 우습게 여기게 될 것이다. 둘째, 북에 대한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과 결정을 계속 하게 되면 대북정책의 비합리성을 축적시키게 되고, 언젠가는 위험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실사구시적 판단에 기초해서 봐야 한다. '북한 당신들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라고 말해야 한다. 물론 격식을 갖추어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정부라면 타이밍이나 여건도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당신들 잘못했어'라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상대가 발전할 수 있는 자극도 못주고, 자신도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프레시안 : 의외의 답변이다.

이종석 : 내 답을 의외라고 여긴다면, 아직도 내 생각의 기초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를 몇 년을 알아 왔는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하나. 굳이 따지자면 북한 정권은 진보가 아니라 수구에 가깝다.

그러나 북한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과, 우리가 평화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북한의 지도집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다르다. 그게 포용정책의 기반이다. 포용정책을 실천에 옮겼던 김대중 대통령도 그런 생각을 했다. 북이 아무리 말썽을 부리고 골치가 아프더라도 우리의 안녕과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북한을 합리적으로 잘 끌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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