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세가 박빙이다 보니 신경전도 날카롭다. 얼어붙은 수면 밑으로는 흙탕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송사가 여러 건 제기됐다. 심상정 후보 측은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을 통해 심 후보 본인 및 주변 인물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비방했다며 손범규 후보 보좌관 조 아무개 씨를 고발했다. 새누리당 오영숙 고양시의원도 같은 혐의로 앞서 고발했다.
"끝내주지. 심상정의 비리가 이 글에 다 나와 있어"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3일 오후, 관산동 일대 유세 현장에서 만난 손범규 후보는 이에 대해 "뭐가 불법이냐"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손 후보는 오영숙 시의원과 조 아무개 보좌관 고발 건과 관련해 "정말 골 때리는 거지. 완전 미친 소리에요, 그건"이라며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심상정 후보 측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후보 본인이 사건 경과를 기자에게 직접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트위터에서 처음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의 아이디를 가리키며) 이거 봐, 얘가 진원지야. 트위터에 올린거야, 얘가. 누군지도 모르는 앤데, 3월 29일에 이 얘기를 올린거야. 읽어보면 이게 소름이 끼치는 얘기야. 이게 이런 식으로 벌써 무한정 전파가 돼 버렸어. (보좌관) 조○○는 이런 건 있는지도 몰랐어. 그런데 이 아무개라는 이상한 애가 조○○의 페이스북에 이걸 올려놓은 거야. '마구 퍼날라 주세요' 이러면서. 그걸 조○○이가 읽어 보니까, 끝내주지. 엄청난 내용이지. 심상정의 비리가 다 나와 있는데. 그래서 '야, 이거 대단한 거다' 해 가지고 이걸 복사를 해서 자기 아는 사람 8명한테 보낸 거야. 그 중 한 명이 심상정 지지자인 줄도 모르고."
즉 자신의 보좌관 조 씨는 심상정 후보에 대한 비방글의 '원저자'가 아니라 '전달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주장이다. 또 심 후보 측의 주장과는 달리 '대량'으로 발송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손 후보는 "읽어보면 이 글은 (진보정당)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게 드러난다"면서 출처를 짚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심상정 후보 측에서는 '원 작성자가 아닌 전달자라고 해도, 손범규 후보 보좌관이 심상정 후보에 대한 비방글을 유포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다'며 일축하고 있다.
또 오영숙 시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해서도 손 후보는 "3월 30일 <조선일보> 14면을 보면, 심상정 후보(에 대한) 금전 관련 의혹이 있고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있어 아는 사람들에게 보라고 알린 것"이라면서 "수사를 받으니까 받는다고 했는데 뭐가 허위냐"고 했다. 손 후보는 해당 의혹에 대해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심 후보에게 패한 민주통합당 박준 후보가 먼저 제기한 내용이라며 "고발하려면 박준을 하든가. 왜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냐"고 했다.
그러나 심 후보 측에서는 문자메시지 자체에 "(심상정 후보의) 야권단일후보 경선과정 중 벌어진 금품제공약속 관련 녹취록이 추가로 공개됐다"라는 내용이 있어, 이는 '언론 보도를 찾아보라'는 내용과는 별개로 심 후보가 금품 제공을 약속했다는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것에 해당돼 처벌 대상이 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 ⓒ연합뉴스 |
손범규 "네거티브 안 하고 알티만 몇번…"
심상정 후보는 이같은 손 후보 측의 행위가 '흑색선전'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손 후보는 "야권 후보들도 트위터에서 '검증'이 되는 것"이라며 태연히 받았다. 선본 관계자가 "저희 후보는 절대로 네거티브 이런 거 하신 적이 없다"고 하자 후보 본인은 "아니 '알티'(RT, 트위터에서 다른 이용자가 올린 게시물을 재전송하는 것)는 몇 번 했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네거티브 공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과는 달리 상대 후보에 대한 공세가 적극 이어졌다.
"우리 지역구 끝이 파주 경계까지 올라가요. 판문점에서 10km도 안 돼. 여기가 최전방, 옛날에 간첩도 나오고 이러던 데야. 무장공비도 나오고. 그렇게 바로 휴전선인데….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네거티브가 되나? 미군 철수니 국가보안법 폐지니 이런 것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어, 여기?"
색깔론까지 나온 셈이다. 손 후보는 "주민들은 지역 발전이 중단돼선 안 된다 생각하고 '투쟁지향적 정치'보다 실질적 이득을 주는 후보를 선택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라며 "이전투구, 파당적 정치투쟁에 주민들은 신물을 느낀다. 국회를 싸움판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급진적 주장을 하는 투쟁적 후보를 원치 않는다"고도 했다. 사실상 심 후보를 지목해 '투쟁지향적,' '파당적,' '급진적'이라고 평가한 것. 또 손 후보는 기자에게 직접 트위터에서 제기된 심상정 후보 관련 의혹을 귀띔해 주기도 했다.
심상정 후보 측에서는 이같은 공세에 대해 "후보 간에 서로 자질에 의문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검증 청문회를 갖자"고 하고 있다. 하지만 손 후보는 "주민 청문회고 나발이고 내가 응해줄 사람도 아니다"라며 "청문회 하잔다고 내가 왜 하나. 국회인가?"라고 일소에 붙였다. 손 후보는 "추이가 뒤집어지니까 난리"라며 이날 발표된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5%포인트 가량 앞선 것이 심 후보 측의 고발 배경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날 저녁 무렵, 유세 도중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심상정 후보는 "대응을 안 하려 했는데, 안 하다 보니 도를 넘었다"면서 분노를 드러냈다. 심 후보는 "주민들이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영향을 받고, 또 우리가 대응을 안 하다 보니 진짜인 줄 안다. 그래서 단호히 대응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방 중에서도 아주 소설같은, 죄질이 나쁜 비방"이라면서 제기된 의혹은 하나같이 사실과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심상정 "진보, 뿔 달리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는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손 후보에게 다소 밀리는 것으로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500~600명씩 하는 조사로 민심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면서 "제가 쭉 이 지역에 있으면서, 주민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느끼는 그 민심을 믿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끼는 민심이란 어떤 것이냐 묻자 그는 "주민들을 만나면 다 하시는 인사가 '이번에는 돼야지' 하신다"고 전했다.
"반응은 좋은데 여론조사가 잘 안 나왔데요. 하지만 저는 주민들을 믿습니다. 분위기는 뭐 날이 갈수록 좋습니다."
자신의 선거운동 전략에 대해 심 후보는 "주민들에게 성실하게 제 의지를 설득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면서 "아주 보수적인 분들, 연배 많은 어르신들과도 자주 토론하고 논쟁하고 있다. '뿔 달린 진보'가 아니라 진보가 민심의 한복판에 있고 생활정치의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친근한 공감대를 높여가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심 후보가 이처럼 '낮은 자세'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양 덕양갑 지역구는 17대에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당선됐던 곳이지만 도·농 복합 지역인만큼 민심이 보수적인 면이 있다.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도 "여태까지 여기서 야당이 한 번도 된 적이 없다. 유시민도 여당(열린우리당)일 때 됐다. 항상 이 동네는 그 시대의 집권세력을 찍어준다. 일하라고, 이 동네 좀 발전시키라고 찍어주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심 후보도 이런 민심을 알고 있다. 그는 "여기는 관악, 노원에서 당 지지율이 15~20%씩 나올 때 6~7% 나왔던 곳"이라며 "같은 고양이지만 일산보다는 좀 낙후된 곳이어서 개발에 대한 욕구, 지역발전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그러나 "만약 이 지역에서 통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도 통하는 게 아니냐 하는 마음을 먹었다"면서 "지금은 당 지지율이 노원, 관악보다 높게 나온다. 보수가 강한 나라 대한민국을 끌고갈 진보가 되려면 이런 지역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통합진보당 심상정 후보. ⓒ연합뉴스 |
최종 승부는?…손범규 "이제 끝났다" vs 심상정 "결집 있을 것"
도·농 복합지역이지만 수도권이라는 특성 때문에 중앙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 또한 덕양갑 지역의 특색이다. 심 후보 측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면서도 "쉽지 않은 선거"라고 판세를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역대 선거를 봐도 크게 이기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 "관건은 20대인데 투표 참여 의향이 낮다"고 걱정하는 빛을 띠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정권심판이라는) 구도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고 있다. 막판에 야권연대가 힘을 발휘할 것이고 정권심판 여론 65%가 저희 쪽에 결집할 것"이라며 승리를 장담했다. 그는 또 "이 지역구는 중앙정치에 좌우되는 폭이 크다"면서 "(구시가지인) 원당에서도 우리가 유리하다. 영세상인 분들이 통합진보당의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나 골목상권 보호 활동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 정치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손범규 후보 측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손 후보 측 관계자는 지역구 특성에 대해 "바람이 센 곳"이라면서 "서울에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원주민들은 여당 성향이 강하지만 화정동 등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은 야당 성향이 좀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손 후보 측도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손 후보 쪽 선본 관계자들은 야권연대 이후 줄곧 앞서나갔던 심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점점 줄어들어 이날 <문화일보> 조사에서는 오히려 역전한 것으로 나온 데에 고무된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야권통합 이후 처음 뒤집었다"고 들뜬 반응이었다. 손 후보 본인도 여론조사 기관마다 집계 방식 등의 차이가 있어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체적인 추세는 단일화 효과를 누리던 심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얽혀진 의혹의 껍질이 벗겨지니 쭉 내려가고, (본인은) 쭉 올라오고 이렇게 된 것"이라며 자신만만함을 보였다. 손 후보는 앞으로 판세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이대로 계속 가는 거다.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일꾼론'VS'큰 인물론'
손 후보는 '지역 일꾼론'을 내세우고 있다. 선본 관계자는 총선 전략에 대해 "손 후보는 유래없이 지역구 사업을 많이 했다. 반면 상대 후보는 전국을 돌며 '말의 성찬'을 하시는 분이라 일꾼 대 말꾼, 일꾼 대 투사의 선거라는 컨셉(개념)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는 후한 편이었다. '도·농' 중에서는 '농'쪽에 가까운 관산동 지역에서 "저 좀 살려주십시오"라며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그에게 지역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한 60대 남성은 "4년 동안 잘 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도 손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지역일꾼론'에 대해 심상정 후보 측은 '큰 인물론'으로 맞서고 있다. 심 후보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손 후보가) 거의 시의원 급으로 현안을 고르다 보니 일부 주민들께서는 '지역 일은 많이 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 것이 저에게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렇다고 덕양구가 지난 4년 동안 체감할 만한 변화가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심 후보는 "큰 정치적 힘이 있어야 덕양에서의 큰 변화도 이룰 수 있다"면서 "(손 후보가) 자잘한 것은 했지만 그것이 주민들의 삶을 근본적·질적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손 후보와는 '급'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심 후보의 지역 유세에서도 '전국구 스타'인 그를 알아본 시민들은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두 아이와 함께 길을 가던 40대 여성은 "TV에서 봤다"면서 웃음띤 얼굴로 유세차량을 한동안 지켜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앞날을 점치기 힘든 덕양갑의 선거 판세는 결국 주민들이 '지역일꾼'을 택할지 '큰 인물'을 택할지에 따라, 또 정권심판론이라는 야권의 공동 주장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받느냐에 따라 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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