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 하 한미동맹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약화되었다는 인식을 갖고 출범했다. 이런 인식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외교안보 분야의 제1순위 과제로 삼았다. 한미동맹만 강화하면 남북관계를 포함한 여러 이슈들이 부수적으로 해결되거나 개선될 수 있다는 식으로 임했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은 2002년 대선국면과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의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한미동맹 강화론은 기본적으로 일시적 현실에 대한 평가에 기반을 두고 있고, 노무현 정부 중반 이후에 한미관계가 양호하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과 야당 정치인들이 확대재생산한 인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여러 오류를 내재하고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정도로 순탄했던 한미관계를 두고 한미동맹 강화를 무척 강조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에 올인하는 실책을 범했다. 동맹강화책으로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맹의 정체성 변화와 그에 따른 동맹의 임무 및 역할 확대를 의미한다. 2009년 6월 한미 양국이 채택한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미 전략동맹은 기존의 영토 방위 이외에 지역적‧범세계적 범주의 다양한 안보협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의 정체성은 대북 억지력의 보루이자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증진자로서 한반도와 동북아라는 지역적 영토방위의 안보협력체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전략동맹으로 변화된 현 시점에서 동맹의 정체성은 기존의 영토방위라는 지정학적 안보 이외에 지역적‧세계적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다양한 안보 도전에도 대처해야 하는 기능적 안보 행위자의 성격도 갖게 되었다.
동맹의 정체성 변화 및 그에 따른 동맹의 임무 및 역할 확대를 야기하는 한미 전략동맹은 불가피하게 다각적인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중심의 동맹전략 부재와 동맹에 대한 의존성 강화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치밀한 전략적 고민 부재와 타율적 처신을 초래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자율적 운신의 폭을 스스로 결박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외교의 창의성, 주도성, 적극성이 크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한국의 안보이익과 동맹이익을 동일시하는 착시현상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은 각각의 고유한 국가이익과 동맹이익을 갖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안보이익과 동맹이익의 동일시는 적어도 한반도 및 동북아 영역에 한정되는 경우이고, 그 밖의 영역에 있어서는 한국의 안보이익이라기 보다는 동맹이익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안보이익은 세계적 차원에 걸쳐있기 때문에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맹이익이 동일시되는 영역은 기본적으로 넓고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한미 전략동맹은 '동맹의 강화는 언제나 한국의 안보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무조건적 동맹숭배론을 일반화시켜 동맹을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착각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연관된 문제로 지역적‧국제적으로 우리가 미국의 안보전략에 '연루'될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한미 전략동맹은 한국의 안보이익과 동맹이익의 등치를 강화시켜 한국의 안보이익이 모호하고 매우 추상적인 지역적‧국제적 분쟁지역에 미국의 안보전략에 따라 우리가 연루될 개연성이나 위험성을 높여 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동맹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는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한국의 파병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며 가시적인 한국의 안보이익이 거의 부재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안보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켜 궁극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는 동북아 외교구도에서 균형 상실로 이어졌다. 특정 국가로의 과도한 쏠림은 다른 주변국들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야기시켰다. 대표적으로 한중관계의 악화를 꼽을 수 있다. 2008년 첫 양국 정상회담에서부터 불협화음이 시작되더니 2010년 '천안함 외교'를 계기로 한중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여러 중국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한중수교 이래 지금과 같이 한중간에 신뢰에 금이 가고 정책공조에 틈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
전략동맹으로 인해 우리의 국방비 증가 및 동맹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더욱 커졌다. 한미 전략동맹의 군사적 임무와 역할은 논리적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안보활동 영역의 확대와 맞물리면서 이에 필요한 국방비의 증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한국은 국가 생존이라는 전통적 안보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국방비뿐만 아니라 동맹 차원에서 전개되는 지역적‧국제적 분쟁에 대처할 수 있는 기능적 안보위협에 대한 비용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맹의 이중적 목적에서 파생될 수 있는 한미 양국 간의 상호 부조화는 역설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동맹 갈등을 주기적으로 표출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개연성을 갖는다. 이는 한미 양국에 있어서 포기와 연루, 그리고 이용이라는 기회주의적 행태에 따른 동맹의 안보 딜레마를 부각시킬 수 있고, 또한 대북 억지 정책의 수위와 그 정책적‧전략적 수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문제를 정도의 차원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문제 영역으로 변화시킬 개연성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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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전략동맹에 내포되어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치유하고 동맹관계에서 한국의 안보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맹 강화가 아니라 동맹의 역동성 강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국의 안보전략을 군사력 위주의 균형정책에 초점을 두고 동맹이익을 강조하기 때문에 동맹 갈등 잠재력, 방위비 증가와 비용분담 증대, 그리고 미국의 안보전략으로의 편입 가능성이 높아져 궁극적으로 한국의 안보 자율성 제약을 가져 온다. 또한 동맹 강화는 한국의 실질적 역량과 의지, 그리고 대외적 안보 역할간의 간격을 넓혀 한국의 안보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나 위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동맹의 역동성 강화란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안보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동맹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기본적으로 경직된 동맹의 군사적 성격보다는 동맹의 정치적‧정책적 차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한미동맹의 역동성 강화는 한국과 미국 각자가 고유한 국가 안보이익을 존중하는 가운데 상황에 따른 동맹이익의 영역과 종류에 대한 활발한 협의와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보다 대등하고 건강한 동맹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역동성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인식적‧정책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 한미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에서 벗어나 우리 중심의 사고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60여년 동안 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안보의 근간으로 작용해 왔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한국의 생존, 민주화 및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한국의 여론주도층과 일반 국민들에게 '동맹 의존심리'를 심어 주었으며, 안보정책의 수단인 동맹을 목적화하는 주객전도 현상을 야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을 벗어나 우리 중심의 사고를 갖고 외교안보 능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둘째, '중견국가'에 부합하는 동맹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전제로 우리는 체계적인 동맹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특히, '중견국가'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증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신중한 외교와 균형안보 개념에 입각한 동맹전략의 수립이 대단히 중요하다. 동맹전략 수립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떻게 한미동맹을 한반도의 평화증진에 활용할 것이며, 상황에 따라 미국의 대중 견제 내지 봉쇄의 일환으로 활용될 수 있는 한미동맹의 균형정책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향후 우리는 위험분산 차원에서 한미동맹 전략을 수립해 나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의 안보이익과 동맹이익을 구별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전략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대해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한미동맹의 강화가 곧장 한국의 안보이익의 증진이자 미국과의 신뢰 강화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역량 부족과 자의식의 부재에 따른 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맹 강화가 필연적으로 한국의 안보이익 증진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중견국가로 성장한 한국이 성공적인 중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안보이익과 한미동맹의 동맹이익간의 공통분모와 이들 간의 차별성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특히, 한미 전략동맹에서 한국은 한국만의 고유한 안보이익과 미국과의 협력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동맹 이익 간의 차별성을 분류해 한국의 안보이익을 침해받지 않으면서 동맹이익을 담보해낼 수 있는 동맹 관리전략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맹 임무의 일환이 아니라 한국의 독자적인 평화활동 방안을 정립해 평화애호국으로서의 중견국가 위상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중견국가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 있어서 국제적‧지역적 평화활동은 매우 중요한 규범적 대외 활동 중의 하나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은 현재 구축되어 있는 평화유지 상비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평화활동 계획'을 수립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역과 국제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의 독자적인 평화활동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 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또한 한미동맹 차원에서의 평화활동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즉, 한국이 적극적인 평화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동맹국의 세계전략을 지원‧협력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중견국가의 국제적 위상 확보 차원이자 향후 한반도 통일 관련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아내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글은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제언을 내놓는 이수훈 경남대 교수의 7편의 글 중 세번째이다. 이 교수는 12월 대통령 선거에 앞서 진보·개혁 진영의 대외 전략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나라당의 새 정강정책에 대한 비판(1편)을 시작으로 남북관계(2편), 한미관계(3편), 한중관계(4편), 동북아 협력 문제(5편), 중견국가론(6편), 국제협력 외교(7편)를 논한다. 이 교수는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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