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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리셋을 위한 제1원칙은 '남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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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리셋을 위한 제1원칙은 '남탓하지 않는다'"

[이수훈 칼럼]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을 위하여 <2>

이명박 정부의 실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분야가 남북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파탄났을 뿐더러 마치 냉전 시기처럼 후퇴했다는 평가는 이미 많은 분석가들에 의해 내려진 바이기 때문에 중언부언이 필요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실종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파괴된 평화를 회복하여 점진적 통일을 향해갈 수 있는 발본적 정책패키지를 개발하는 데 있다. 이 작업은 이런 저런 정책적 교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남북관계에 대한 총체적 '리셋'(reset)을 요구하는 일이라서 발본적으로 개시해야 한다는 표현을 쓸 지경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실패의 단초는 남북관계라는 끈을 놓아버린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책을 구사한 나머지 한반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한미관계만 잘 되면 남북관계를 비롯한 나머지 외교안보 분야 과제들이 부수적으로 순탄하게 풀린다는 거대한 착오를 범한 탓이다. 따라서 새 대북정책 시스템의 개발은 남북관계의 끈을 다시 잡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정책 기조를 적대에서 화해협력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며, 그에 부합되는 정책은 이전 민주정부의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계승발전시킨 '신포용정책'일 수밖에 없다.

신포용정책은 남북관계의 3대 장전이랄 수 있는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발효), '6.15 공동선언' (2000년), '10.4 정상선언'(2007년)을 이론적·인식론적·방법론적 기반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동북아 평화헌장이라고 부름직할 만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포괄적 설계도인 '9.19 공동성명'을 참고할 뿐만 아니라 2005년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 특별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만으로 필요충분 요건을 두루 갖추게 될 것이다. 이들은 화해협력 기조, 평화번영의 증진, 점진적 통일이라는 방법과 목표를 위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설계도를 대표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이행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구체적 방안과 정책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14일 밤 평양 목란관 만찬에서 남북공동선언문 서명에 앞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며 참석자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포용정책'은 북한의 붕괴나 급변사태 같은 재앙적 사변을 정책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 대신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통한 남과 북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 점을 새삼 재론하는 것은 과거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로 북한 변화 불능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과거 포용정책이 개혁·개방을 무척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변화 유도에 실패했다는 비판은 오늘날에도 위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에 '신포용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중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더하다.

게다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에 김정은 시스템이 안정화되고 있는 현실은 북한 개혁·개방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 시스템이 단절적 변화를 하기는 당분간 어렵겠지만 어떤 종류나 수준이 되었건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의 변화없이 장기간 북한 인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지탱해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그 변화의 주 내용은 경제회생과 대외적 위협 극복이 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이런 북한 지도부의 절박성에 비추어볼 때 '신포용정책'이 북한에 수용될 개연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신포용정책'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그리고 비핵화라는 3대 핵심과제를 제기한다. 물론 이들은 전혀 새로운 과제가 아니며, 우리의 해묵은 숙제에 해당된다. 우리 국민의 태만과 여러 정부들의 직무유기로 인해 숙제가 미루고 미루어진 나머지 반복적으로 기출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이 한반도의 부끄러운 현주소인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 당국의 책임도 적잖이 있고, 동북아의 먼 과거로부터 오늘날 주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부단히 작용하고 있는 탓도 없지 않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하고 자주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여러 지엄한 명령에 비추어 볼 때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야 말로 미숙하고도 염치없는 자세일 것이다. 이제 우리 문제를 반드시 우리의 역량 발휘를 통해 성취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질 필요가 더하다. 북한 탓, 중국 탓, 미국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나가고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어 미국과 중국의 지지를 받아야 할 일이다.

우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제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과 더불어 이행되어야 하는 데, 북미간 수교 협정과 관계정상화가 필요할 터이고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의 이행에 따라 평화 증진이 상당 정도 진척된 나머지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미국과 중국이 지지하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짚어야 할 점은 이 과제가 무슨 도식처럼 전개될 리가 없고 남북관계에서 전반적으로 일대 진전이 일어나고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가 진전이 일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긴밀한 정책공조를 이루어내야 한다. 게다가 일본이나 러시아마저도 여기에 동승해야 하는 등등의 우호적 환경 조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정세의 전개에 따라 유연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며, 정황에 따라서는 우리가 공세적으로 완력을 발휘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과제인데, 무엇보다도 평화 증진이나 비핵화 프로세스가 부재한 환경에서 남북경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 이명박 정부를 통해 생생하게 입증된 터라 어느 하나의 과제가 다른 과제(들)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인식을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경협의 심화와 확대를 통한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과정은 개성공단 사례가 웅변하듯이 일정한 정도의 진전이 이루어져 남북 양측 어느 쪽에서건 경제적 실리가 이념적 군사적 대결에 따른 추상적 이해관계를 훌쩍 뛰어넘을 지경이 되면 그 자체의 동력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과제와 관련해서는 '10.4 정상선언'에서 합의된 수많은 구체적 프로젝트들 가운데 현실적합도가 높고 쌍방에 이득을 주는 그런 사업들을 위주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마구잡이로 벌이기 보다는 기왕에 양측이 합의하고 일정 정도 추진된 경협 사업들을 심화시켜나가는 것이 전략적 접근법이 될 것이다. 대략 일별하자면, 개성공단 확대와 금강산 관광 재개는 눈에 들어오는 과제이고, 철도와 도로의 개·보수 같은 소소한 프로젝트들이 수반될 것이며, 개성과 백두산 관광 등등도 재개하거나 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체제 구축이든 경제공동체이든 남북관계가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될 필요가 있다. 평화 증진이나 경협 확대 그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의 지표이기도 하지만, 이와 더불어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한반도 전반의 분위기가 화해협력적으로 변화해야 보다 큰 과제들이 탄력을 받으면서 추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도 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제기되어온 "시민참여형" 통일같은 주문을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비핵화 과제가 있다.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비핵화 과제도 다른 과제들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워 그것이 안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우를 두 번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비핵화를 가벼이 다룰 수도 없는 것이 남한과 주변국들의 사회적 혹은 정책적 요구이기도 하다. 비핵화 프로세스는 어쨌건 6자회담이라는 틀을 재가동하는 외교적 노력을 일차적으로 요구한다.

이명박 정부 남은 임기 동안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6자회담에 대해 너무 비관적이거나 무용론적 입장을 경계해야 한다. 6자회담은 비핵화라는 일차 목표를 위해서만 그 존재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만약 재개하지 못하더라도 붕괴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6자회담과 관련해서도 새삼 강조되어야 할 것이 남북관계의 복원 및 진전이다. 미국은 대체로 현상 관리 전략으로 기울었고, 중국은 안정과 평화에 치중해 있다. 미국은 비확산에 정책의 방점이 가 있고, 지역적으로는 중동에 치우쳐 있다. 중국에게 북한은 자신의 주변 여러 소국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가령 베트남, 미얀마, 혹은 티베트와 특별히 다른 취급을 북한이 받을 대단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냉정한 논리를 쫒아보자면 결국 비핵화의 동력도 남쪽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신포용정책'이 핵국가인 북한과 더불어 평화체제를 논하고 경제공동체 구축을 말할 만큼 '포용적'일 수는 없다.



* 이 글에서 '신포용정책'이란 아직 공식 명명이랄 수 없는, 과거 포용정책보다는 제반 정세 변화와 다소간의 새로움을 반영하는 그런 포용정책이라는 정도의 표현이다. <필자>



* 이 글은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제언을 내놓는 이수훈 경남대 교수의 7편의 글 중 두번째이다. 이 교수는 12월 대통령 선거에 앞서 진보·개혁 진영의 대외 전략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나라당의 새 정강정책에 대한 비판(1편)을 시작으로 남북관계(2편), 한미관계(3편), 한중관계(4편), 동북아 협력 문제(5편), 중견국가론(6편), 국제협력 외교(7편)를 논할 예정이다. 이수훈 교수는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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