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중국 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이달 말부터 스위스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중국을 겨냥해 국제협약상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할 것을 거론하기로 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그동안 중국 측에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탈북자를 제3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촉구해왔다"면서 "이런 노력에 더해 이번에 인권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방향으로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조 대변인은 "탈북자는 강제 북송될 경우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면서 "난민협약과 고문방지 협약에 가입한 모든 나라는 협약상의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UNHRC에서 중국을 직접 거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국가를 지명할지는 효과의 장단점 등을 생각해보고 검토를 좀 더 할 계획"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정부가 유엔총회 등에서 탈북자 문제를 거론한 적은 있지만 UNHRC에서 중국을 겨냥해 탈북자 강제 북송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회의에는 외교부의 민동석 2차관이나 김봉연 다자외교조정관이 정부 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지난 19일 중국 내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 우려와 관련해 중국에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협약을 준수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UNHRC에서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것은 그 후속 조치인 셈이다.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이날 탈북자 강제 북송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 효자동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 내 탈북자를 데려오기 위해 한중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기본중의 기본' 원칙을 저버리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은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탈북자를 불법 입경자로 보고 북한으로 보낸다는 입장이다. 이는 유엔 난민협약에서 정치적·종교적으로 극심한 처벌을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 강제 송환을 금지한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중국은 북한과의 특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그같은 일을 저질러 왔다. 중국은 대신 치외법권 지역인 타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들어간 탈북자들에 한해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비공개로 한국 등 제3국 송환을 허용해 왔다.
이같은 이른바 '조용한 외교'가 가능하려면 전반적인 한중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한중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러한 식의 해결은 점점 어려워졌다. 현재 국군포로 가족 5명을 포함한 11명의 탈북자가 베이징과 선양의 한국 영사관에서 최장 3년 가까이 사실상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한중관계 악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유엔 외교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중국의 체면을 깎는다면 한중관계는 더 나빠지고, 결과적으로 탈북자들의 한국 송환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이날 <조선일보>에 "중국의 국제법상 의무 위반을 공론화해 '중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불편한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은 그같은 외교가 문제를 악화시킬 뿐임을 보여준다.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20일 "중국은 국제법과 국내법, 그리고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면서, 탈북자의 강제 북송이 국제난민협약 등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화법을 수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훙 대변인은 21일에도 "해당 월경자들은 난민의 범위에 속하지 않을뿐더러 유엔 시스템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런 중국의 입장에 대해 한국 정부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UNHRC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 당국은 억류된 탈북자들의 인적 사항은 물론 현재의 상황에 대해 확인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들려오는 얘기들에 대한 무언의 거부 반응이다. 과거 중국은 한국이 탈북자 이슈를 공개적으로 제기할수록 더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또한 탈북자가 체포된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되면 북한도 중국 측에 송환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중국은 최근 한국이 탈북자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하자 '한국도 불법 조업으로 단속된 중국 선원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취지로 맞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안을 명확히 연계한 건 아니지만, 한국이 탈북자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함으로써 다른 외교 현안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처사에는 비판할 점이 많지만, 한국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 전략 없이 공개인 외교에 나서는 것은 결국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는 지적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명박 정부가 '시끄러운 외교'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국내정치적 이유밖에 없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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