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의 '농촌·농민 성공시대를 열겠습니다.' 연설(2007년 12월 9일, 충남 홍성)
이명박 대통령의 법정 임기를 딱 1년 19일 남겨둔 오늘의 시점에서 지난 4년을 뒤돌아 볼 때,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의 현주소는 이 정권의 무능과 무지로 350여만 마리의 돼지와 소들을 전국 방방곡곡에 생매장했던 사실이 증거하듯,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단말마(斷末魔)적 난장판을 떠오르게 한다. 이 정부 들어 농민들은 도시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짓는 날들이 늘어났고 농촌 들녘엔 한숨소리가 그득하다.
전국의 농경지는 일부 도시투기꾼들의 사냥감으로 바뀌어 해마다 2만ha 이상씩 비농업용으로 전용되고, 60% 이상의 농경지가 소작 또는 임대농화되고 있다. 농가 호당 명목상의 농업소득마저 줄어들어 이미 농가 부채가 농업 총수입을 뛰어 넘는 2800만원 수준이다. 그리하여 전국의 농가 인구는 300만 명 이하인 296만 명으로 떨어졌다. 젊은이들이 '돈 버는 농업, 살맛나는 농촌'을 버리고 떠남으로서 농가 인구의 40%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MB 정권 말기의 농가 인구 비중이 2012년 현재 전국 인구의 5.9%로 가장 낮아졌다. 국가 농업예산도 4대강 예산을 제하면 실질적으로 매년 줄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식량자급률은 26%, 쌀을 제외하면 단 4% 안팎으로 자급률이 세계 최하위권이다. 이상이 거시경제 통계로 보는 이명박 정권의 농정 4년 결산표이다.
이 정권이 한 일이라고는 취임 초부터 4년 내내 농축산물 무관세 도입과 식량농업의 예속화를 골자로 하는 농업강대국들과의 FTA(자유무역협정) '동시다발' 체결 강행이었다. 막대한 국비를 써가며 외국에 나들이 할 때마다 '경제영토 확장' 운운하며 농축산물 수입시장의 확대로 무관세 수입개방을 촉진하거나 또는 카메룬 다이아몬드처럼 알맹이 없는 식량자원 개발수입 잔치판이다. 막대한 국력을 낭비하여 국가의 미래까지 팔아넘기는 쇼, 쇼, 쇼뿐이다. 치솟는 물가에 대해 진짜 원인(금리와 환율, 통화량과 국가 및 민간 부채)은 제쳐놓고 농축산물의 일시적 계절적 가격상승 때문인 양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전체 물가지수에서 5.5% 밖에 차지하지 않고 있는 농축산물에 대해 전체 물가상승의 누명을 덮어씌워 배추, 쌀, 쇠고기, 돼지고기의 가격폭락을 부추겼다.
대명천지에 어디 배추나 쌀값 때문에 물가가 올랐단 말인가. 그 말이 먹힐 것인지 의심하지 마라. 배후엔 저열(저질+비열)한 흉수가 숨겨 있으니 다름 아닌 책임 소재 흐리기와 농업 포기 전략이 그것이다. 차라리 우리나라에 농축산업이 없어져야 나라가 조용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한미 FTA 국회 비준 때 보니까 야당의 도시 또는 관료 출신 의원들 사이에도 꽤 있는 모양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 도전하던 지난 2006년 경북 칠곡군 기산면의 금종쌀 도정공장에서 열린 참라이스 농민축제에 참가해 한 목사의 설교에 맞춰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된, 정부 관리들에게 품목별로 물가를 책임지라는 세계 최초·유일의 '농산물값 실명제'를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 그러니 농산물 값이 오르면 무조건, 무조건 즉각적인 무관세 수입이다. 이같은 무사려한 수입개방 촉진정책으로 지난 한해 내내 배추값 폭락사태, 올해 초의 소값 폭락 파동, 쌀값 파동이 일어났다. 이 땅의 농민들은 언제나 고통을 받았다. 곧 있으면 돼지값 폭락파동에 이어, 올해 중 감귤, 사과 파동이 예상된다.
이처럼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정부는 무대책 수수방관하거나 또는 땜질처방만 하는 척, 그 대신 좀 오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무관세 수입이다. 가격폭락도 농민들 잘못이다. 가격폭등도 농민 탓이다. 눈치없이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어 배추 풍작을 이루고 쌀 풍년을 불러들인 것이 잘못이다. 소·돼지를 잘 길러 두수를 늘린 것도 농민들의 죄란다. 무관세로 터무니없이 수입을 많이 해서 수입 재벌과 식품가공 대기업으로 하여금 유통상의 폭리를 취하게 만든 정부는 하나도 책임지지 않는다. 수급관리와 물가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물가장관, 수입 장관들이 도리어 농민들에게 큰소리를 치며 나무란다. 이같은 책임돌리기가 이명박 정권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듯싶다.
그러나 역린(逆鱗)을 거스른 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집착은 세월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모른다. 취임 한달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해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하룻밤 잔 값으로 광우병 의심 쇠고기까지 터무니없이 무제한 수입을 허용하려다가 촛불시위를 만났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이슬을 맞으며 참회하고 국민 앞에 두 번씩이나 고개 숙여 사죄하더니 잠잠해 지니까 유모차 시위대까지 잡아가고 혼내주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광우병 관련 글과 인터뷰를 자주 발표했던 필자도 2년이 지나 느닷없이 그 앞잡이나 다름없는 한 보수신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그 신문사와는 지금까지도 명예훼손 배상 송사중이다. 그런가 하면, 명예직이나 다름없던 농업 관련 자리마저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온 지시라며 윽박지르니 얼른 내놓았다. 그 자리가 아깝거나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다. 일단 역린을 거스르면 더 크게 보복당한다. 예컨대 광우병 촛불시위나 4대강을 반대하면 어떠한 시민단체들도 외부후원금의 목줄이 죄여 쫄아 들대로 쫄아들고 근근이 연명을 할까말까한다. 하물며 사회·경제·환경 정의를 주장하며 반MB 성향을 들어내는 진성의 시민단체 지도자나 농민단체장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환경운동가 최열 씨나 희망제작소 박원순 현 서울시장 그리고 농민단체장 등이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그 집행하수인들은 지금도 요직을 두루 돌며 영화를 누리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그 즉시 우리나라 농업 축산 농민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농축산업 자체가 풍전등화 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말기인데도 한중 FTA를 밀어 붙였다. 근근이 연명할까 모를 농축산업과 원예산업을 아예 끝장내려 작심한 모양이다. 이제 쌀, 콩, 채소, 과일, 쇠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고사리, 더덕, 인삼도 중국산으로 완전히 덮어씌울 모양이다. MB는 우리나라 농축산 농민과 전생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농민들이 숨을 죽인 채 속삭이고 있다. 팔당 유기농업 발상지에서 녹색공원과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고 한사코 저항하는 유기농업인들을 냉혹하게 몰아냈다. 후보 시절 직접 찾아가 유기농업 지원을 약속했던 곳이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겠다.'는 공언이 혹시 이 나라 농업 농촌 농민을 아예 사라지게 하는 것이 토건업의 살길이라는 뜻이었을까 묻고들 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나라당 이름으로 공약하고 스스로 연설로까지 공약한 '돈 버는 농업, 살맛나는 농촌'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농가 직접지불 보조를 총생산액의 10%까지 지원하거나, 캐나다식 '농어민 소득보전 특별법'을 제정해 가족농들과 식량농업을 지탱해야 하는데도 MB의 뉴질랜드 방문 후부터는 거꾸로 정부의 농업보조를 융자로 바꾸어 지금 농가부채만 누적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WTO 허용대상의 직접보조금액 비중이 총생산액의 1~3%로 가장 적고, WTO가 감축하라는 가격·비용 보조금은 득달같이 제일 빠르게 실행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국가를 경영하는 경세관(經世觀)이 삐뚫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정(市井)의 장사꾼 같은 셈법이 앞서기 때문이다. 우국지사(憂國之士)형 경세가(經世家), 즉 국가의 장래와 전체를 투시하는 선비형 경륜이 아쉬운 대목이다. 장사꾼의 셈법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토건업자의 계산법으로 농업문제를 재단하려는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을 돈(현금)으로만 계산하고 이익과 손실을 화폐가치로만 따지는 셈법으로는 농업의 심오하고 광대한 의미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를 살리고 환경생태계를 살리며 우리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껴안는 살아있는 유일한 생명산업이 농업이라는 진리가 보이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사먹을 수 있는 것이 농업이고 식량이라고 하찮게 생각한다. 그리고 돈이 최고라며 그린벨트건 문전옥답이건 돈이 생길 곳만 파헤치고 챙긴다. 생명의 가치, 환경의 가치, 지구생태계의 원리,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한사코 저평가한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무지의 극치가 다름 아닌 식량농업과 환경의 경시 태도이다. 그들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1만원 권 화폐에 새겨진 세종대왕(1397~1450년) 영정의 참 뜻을 알 리가 없다. 그저 돈 액면만 좋아할 뿐이다.
세종대왕께서는 일찍이 말과 글이 달라 고통을 받는 어린 백성들을 어여삐 살펴 재위 25년인 1443년 한글(訓民正音)을 창제 반포하신 다음, 곧이어 26년에 권농교본을 발표하시었다. 가라사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國以民爲本), 백성은 식량(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 농업은 衣食(입고 먹는 것)의 근원이므로 나라는 반드시 농업을 우선하여 다스려야 한다." (世宗 26년 勸農敎本)
바야흐로 세계 인구는 70억을 넘어섰고 해마다 8000만명씩 늘고 있는데 유엔 IPCC(국가간 기후변화위원회)를 비롯한 세계 유수 지구환경 연구기관들은 적어도 2030년에서 2050년 사이에 절대 식량생산량이 크게 감소하고, 생명수인 지하수가 고갈하며, 석유에너지가 줄어들어 돌이킬 수 없는 궁극적인 퇴보가 우리 인류사회에 몰아닥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영국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조너던 포리트 의장은 이같은 '최악의 폭풍'(Perfect Storm)이 2030년이 아니라 그보다 10년 더 빠르게 2020년경에 불어 닥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식량농업 문제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과 후세들 모두의 문제이다. 단순히 먹거리 문제만이 아닌 환경, 생태, 기후, 문화, 전통, 전사회의 문제이다.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이며 당장에 남북한의 문제이다.
다만 우리 국민에게 있어선 한 EU, 한미 FTA와 한중 FTA 등 각종 상인적 셈법의 농업 개방일변도 정책과 환경·생명 경시 정책으로 그 폭풍의 속도가 가속화되어 모든 국민과 모든 세대의 문제로 훨씬 더 빨리 그리고 가파르게 다가오고 있다. 다시는 이 나라에 자기 잇속만 밝히는 공주병, 왕자병이 든 직업정치꾼이나 투기적 장사꾼, 토목건설 CEO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아니되겠다는 것이 우리의 교훈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사형 경세가가 필요한 때이다. 아, 언제나 우리나라 농민과 민초들은 '정말 우리 대통령 잘 뽑았다'고 좋아할 날이 올 것인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