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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태의 본질은 '페트로달러'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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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란 사태의 본질은 '페트로달러'의 몰락"

[해외시각] "'이란 고립'은 착각…제2의 '통킹만' 사건 등장할 수도"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이란 사태로 인한 긴장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핵무기 제조를 위한 것이라며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고 있고, 이란은 자국의 핵 개발은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자체보다도 그에 대한 제재의 일환인 미국의 이란산(産) 원유 금수 조치가 더 화제가 됐다. 이란은 서방이 원유 수출을 막는다면 세계 원유 운송량의 40%가 지나는 길목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핵'보다 '석유'에 오히려 더 관심이 집중되는 이란 사태에 대해 브라질 출신 언론인 페페 에스코바 <아시아타임스> 통신원은 이란 문제에 관한 미국의 목적은 처음부터 핵이 아니라 석유와 달러 체제의 패권이라고 주장했다.

거시적 시각에서 국제정치경제 문제를 다뤄 온 에스코바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웹사이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란이 제재를 당하는 진짜 이유는 핵 개발이 아니라 오직 달러로만 석유 대금을 결제할 수 있었던 미국 주도의 체제를 부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모두 달러 패권을 부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진 것이 과연 우연이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에스코바는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이란 정권의 교체(레짐 체인지)라면서 그러나 이란을 '고립'시켜 붕괴로 이끌겠다는 것은 미국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이란은 중국·브라질 등 신흥국들과 남미의 자원 부국들과 각별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면서, 2012년이 달러 패권 붕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에스코바는 지난 2001년 9.11 테러를 2주일 앞두고 마치 앞날을 내다본 듯 '당장 오사바 빈 라덴을 잡아라. 그렇지 않으면…' 제하의 기사를 파키스탄발로 발표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었다. 다음은 그의 칼럼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이란은 미국과 서방의 제재 압박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연말 호르무즈 인근에서 행해진 이란 해군의 훈련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아미르 하비볼라 사야리 이란 해군 사령관. ⓒAP=연합뉴스

이란 위기, 핵이 아닌 '돈'을 주목하라

'마지노선'(red line) 얘기부터 해 보자. 미국 정부의 마지노선에 대해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은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핵 능력을 개발하려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란에 대한 우리의 마지노선은 핵무기 개발이다."

이상하다. 무슨 마지노선이 자꾸 후퇴하기만 하는가? 과거 미국 정부의 마지노선은 '우라늄 농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제 핵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란에 대한 미국 정보 기관들의 최신 분석 역시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언젠가는 개발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게 '마지노선'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면 어떨까? 이를 '페트로달러(petro-dollar) 라인'이라고 부르자. ('페트로달러'란 '석유를 팔아 얻은 달러'를 뜻하지만 좀더 폭넓은 국제 정치경제학적 의미에서는 달러로만 석유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하는 현 체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 옮긴이)

제재는 오히려 이란에 득이 될 수도

지난해 12월, 세계 경제에 미칠 무시무시한 결과에는 눈을 감아버린 채 이스라엘의 로비 압력을 받은 미 의회는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이란에 제재를 하도록 했다. 제재안은 상원을 100대 0으로 통과했으며 하원에서도 반대표는 겨우 12표에 그쳤다. 오는 6월이면 미국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행위자에게도 제재를 해야 한다. 이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겠다는 뜻이다. (의회는 몇몇 '예외'를 허용한다고 하긴 했다)

미국의 최종적인 목표는? 이란의 정권 교체다. 그 외에 달리 뭐겠나?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고위 정보 당국자는 "미국 등의 제재 조치의 목적은 이란 정권의 붕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신문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목표를 명확히 드러낸 이 발언을 삭제했다. 이 '마지노선'은 불편할 만큼 진실에 가까웠던 것이다.

마이크 멀린 전 미 합참의장은 이란에서 정권 교체를 하려면 2003년 이라크전에서의 '충격과 공포' 작전 같은 무지막지한(monster) 방법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멀린 혼자였다. 워싱턴의 네오콘들(신보주주의자) 사이에서는 공습에서 침공(미국에 의한 것이든 이스라엘에 의한 것이든, 또는 둘이 함께든)에 이르는 다양한 행동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파였다.

그러나 이란에 대해 아주 약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공격은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자극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많은 이란인들이 군부 독재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이란 야권도 평화적 핵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있다.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란 지식인들은 어떤 전쟁 시나리오도 부정한다. 그들은 이란 정권이 결국 자신들의 파멸로 이어질 어떤 도발도 행할 의도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란 전략가들은 미국 정부가 중동 지역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벌일 능력이 없다고 여긴다. 특히나 그 전쟁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만한 전쟁이라면 말이다.

한편 미국의 예상은 가혹한 제재를 하면 이란 정권이 퇴진하거나 또는 한 발 물러서리라는 것인데,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미국은 이란의 리알화 가치 폭락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경제 붕괴를 바라는 학자들마저도 이같은 조치의 장기적 효과를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리알화 가치 폭락은 이란의 비(非)원유 수출을 증대시킬 것이며 이란 상품이 지역 내에서 값싼 중국산 제품들에 대한 경쟁력을 갖게 해 이란 내 실업률을 낮출 실제적인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란의 '연결력'은 구글보다 왕성…'고립'은 착각

미국에서는 거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이란은 '고립'되지 않았다. 이는 워싱턴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최근 테헤란을 빈번히 방문하는 인물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이란을 공격하라고 미국을 부추기지 말 것을 이스라엘에 경고한 니콜라이 페투르셰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비하면 테헤란에서는 신참에 불과하다.

미국의 동맹인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난해 아프간 족장 대협의회 '로야 지르가'에서 2000명의 부족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아프간 정부는 테헤란과 더 긴밀한 관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란-파키스탄(IP)을 잇는 대규모 가스관 프로젝트도 성사됐다. 에너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가스관 프로젝트를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TAPI)를 잇는 가스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탈레반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지역(Talibanistan)을 가로지르게 돼있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터키의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외무장관조차 최근 테헤란을 찾았다. 이 지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다. 다부토글루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터키의 외교정책은 "이웃 나라들과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에너지 수요는 다른 문제다. 터키는 이란의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접근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만약 이란발(發) 천연가스관이 서유럽까지 연결된다면(이는 서유럽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다) 터키는 중간 통과 국가로서 이득을 볼 것이다. 터키 정부는 이미 미국의 이란산 원유 제재에 대해 더 이상 동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지난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남미 순방은 (이란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극적인 외교 행보였다. 미국 우파들은 또 이란과 베네수엘라가 '악의 축'이며 이들이 남미 전역에서 '테러'를 부추기고 곧 미국에도 공격을 가해올 것이라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또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미국은 받아들이기 버거워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은 과거 완전한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행사했던 이 두 지역 강대국(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통제력을(심지어 '영향력'마저) 잃어 가고 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이같은 '불신의 장벽'은 더욱 공고해졌다. 남미 국가들이 새로이 추진하는 '통합'에는 좌파 정권이 들어선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들뿐 아니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은 지역 강대국들까지 포함돼 있다. 아마디네자드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에게 인사하는 사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이란이 나머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세계라는 구상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이같은 생각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며 "이란은 국제적 고립 상태에 계속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눌런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서 사실관계를 바로 알아야 한다.

'고립된' 이란은 베네수엘라와 40억 달러 규모의 합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범위에는 은행도 포함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에콰도르 역시 두 개 이상의 발전소 건설과 은행을 포함한 이란과의 프로젝트 수십 개를 계획하고 있다. 이제 워싱턴의 '이스라엘 바보'들은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은 어쩔 것인가? (미국의 원유 수입량 중 베네수엘라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기준 9.9%로, 이는 캐나다, 멕시코, 사우디, 나이지리아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 옮긴이)

미국 언론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번에 브라질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크게 다뤘지만 사실 이란과 브라질은 외교적 공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핵 문제에 관한 한 브라질은 이란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브라질은 핵 무기 개발에 착수했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2010년 5월 브라질은 터키와 함께 이란과의 우라늄 교환 협정을 맺었지만 미국이 이를 방해했다. 브릭스(BRICS) 중 하나인 브라질은 이란의 제재와 금수 전략을 전면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은 미국과 서유럽으로부터는 '고립'될지언정 브릭스와 비동맹국가 120개국은 이란의 편에 설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조차도 이란 제재 조치에서는 '예외'로 지정해 달라고 미국에 간청하고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이같은 일방적 제재는 아시아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인도, 일본의 수입량을 합치면 이란 원유 수출량의 62%에 달한다. 또 한국과 일본은 자국 원유 수요의 10%를 이란에 각각 의존하고 있다.

▲ 미국은 지난 16일 한국에도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가운데)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을 보내 이란 제재 동참을 압박했다. ⓒ연합뉴스

실크로드의 부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립된' 이란이 중국의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미국의 이란 제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서방에서는 중국 왕조와 페르시아가 지난 2000년 동안 '실크로드'를 통해 사업을 해왔음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이란의 가장 큰 유전 지역인 야다바란 개발에 관한 협상을 이미 이란과 마쳤다. 또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가 카자흐스탄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통해 중국 서부로 들어간다는 문제도 있다. 이란은 중국의 원유 및 천연가스 수요의 15%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에 있어서 이란의 중요성은 미국이 사우디를 중시하는 것 이상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원유 수입량 중 11%만을 대고 있다.

사실 중국은 미국의 새 이란 제재안으로 인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산 원유의 다른 수출 판로가 막히면 이란의 대중 원유 수출 의존도가 심화되고 이에 따라 더 싼 값에 원유와 가스를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이란 제재안이 중국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 중국은 이란에서 자동차와 광섬유 네트워크를 생산하고 있고 테헤란의 지하철 확장 공사도 맡아 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현재 300억 달러이며 2015년이면 5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안으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 거래 문제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러시아 또한 '고립된' 이란의 핵심적인 버팀목 중 하나다. 러시아는 유엔을 통한 것이든 미국이 단독 추진한 것이든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러시아는 현재 가해진 유엔의 제재도 철회시키고 대신 모든 관련국들이 체면을 차릴 수 있는 새로운 핵 협상을 추진하는 방안을 더 선호하고 있다.

핵 문제에 있어서 이란은 미국과 타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2010년 터키와 브라질이 제안했으나 미국이 거부한 방식의 해법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명확히 (의회는 물론이다) 핵 이슈를 이란 정권의 교체 다음에 오는 2차적 사안으로 취급하고 있어 어떤 협상도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자국의 이해를 배반하면서까지 이란과 협상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란산 원유 금수 조처에 대해 미국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다. EU 고위관계자가 트리타 파르시 전미이란계미국인협회(NIAC) 회장에게 한 말이나 한 외교관이 필자에게 해준 얘기를 종합해 보면, 유럽은 이같은 조치가 전쟁 직전의 단계가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팀이 얼마 전 이란을 찾았을 때, 최근 이뤄진 우라늄 농축을 포함해 이란 내 모든 핵물질이 IAEA의 감시 하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IAEA의 결론은 긍정적이었다. 이란이 핵폭탄 제조에 손을 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스라엘도) 이란의 핵폭탄 제조가 단지 시간문제인 양 행동하고 있다.

문제는 '돈'

이란 고립이라는 테제는 이란이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달러화(貨) 대신 자국 통화인 리알과 러시아의 루블로 결제하기로 한 것을 봐도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인도 또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인도의 이란산 원유 수입도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이뤄질 것이다. 이미 인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는 달러 대신 위안을 쓰고 있다. 중국-러시아 간 무역에서도 1년여 전부터 위안과 리알이 쓰이듯, 중국과 이란 간의 교역도 위안과 리알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는 머잖은 장래에 유럽으로 가는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란산 원유가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거래되리라는 뜻이다.

게다가 브릭스 국가 중 세 나라가(중국, 인도, 러시아) 이란과 손잡고 있고 이들은 주요 금 보유국이며 생산국이다. 이들 간의 무역은 미국 의회의 변덕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대서양 연안의 서방국들을 바라보는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막대한 미국의 국가 부채,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돈을 찍어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 빈번한 '양적 완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유로존 등이다.

이란 제재 건은 잠깐 제쳐두고 돈 문제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란의 위협도 잠시 제쳐두자.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주 원유 수출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봉쇄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페르시아만 일대에 위기가 고조되는 핵심적 이유 중 하나는 '만능통화'로서의 달러, 즉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침몰이다.

이란은 달러 기반 체제에 도전하는 선봉에 섰었고, 미국 정부는 지역 내 강국인 이란 뿐 아니라 주된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위협할 만큼 이를 매우 우려했다. 따라서 지금 (미국의) 모든 항공모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향하고 있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군사력으로 경제력에 맞서려 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00년 9월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산 원유 결제 수단을 달러가 아닌 유로로 바꾸면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거부했던 역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3년 3월, 이라크는 침공당했고 정권 교체를 당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국의 에너지 수출대금 결제 수단과 '아프리카 연합'의 공용 통화로서 디나르 금화를 제안했다. 그러자 또다른 군사적 개입과 정권 교체가 뒤따랐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 이스라엘은 다르게 설명한다. 이란의 "위협"이 현재 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란의 행동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비밀 전쟁'과 '경제 전쟁'에 대응한 결과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설명은 이렇다. 이란의 행동은 '위협'이며 이 때문에 국제 유가는 올라가고 통화 가치가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의 '카지노 자본주의'나 미국과 유럽의 막대한 국가 부채는 이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다. '1%'의 행동은 유가 상승과는 무관한 일이며 대중의 분노는 1%가 아닌 이란을 향해야 한다.

에너지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대 교수가 최근 지적했듯이(☞관련기사 바로보기) 2012년 새로운 '새로운 에너지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2012년은 달러 기반 체제로부터의 대규모 이반이 일어날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이 가정이 현실이 된다면 세계(특히 남반구의 세계)는 점차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로 각종 사업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미 국채에 대한 투자는 어느 때보다도 적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걸프협력회의(GCC)는 언제나 미국의 편에 설 것이다. 사우디, 카타르,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나라들 말이다. '아랍의 봄'을 맞아 한 행동을 보면 이들에게는 '걸프 반(反, counter)혁명 클럽'(GCC)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이들 걸프 지역 왕정국가들은 실제적·지정학적 이유에서 미국의 속주(屬州)다.

오직 페트로달러 시스템만을 인정하자는 그들과 미국의 수십 년 된 오랜 약속은 이들이 미국의 대(對)중동 군사력 투사에 들러리를 서고 있음을 뜻한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카타르에 있으며 미 해군 5함대는 바레인에 주둔해 있다. 엄청난 에너지 부국인 '파이프라인 지대' 또는 미군이 '불안정한 초승달 지대'라고 부르는 지역을(중앙아시아-남아시아-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 : 옮긴이) 눈앞에 두고서도 GCC 국가들은 쇠퇴하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키는 핵심 세력으로 남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달러 시스템을 붕괴시키려 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미국이 주시하고 있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미국은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고 조그만한 불씨만 튀어도 곧 전쟁의 불길이 타오를 것이다. 1962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노스우드 작전'이나 1964년 통킹만 사건의 재판(再版)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노스우드 작전이란 CIA가 미 국내에서 몇 건의 테러 행위를 저지른 후 이를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소행으로 선전하려 했던 거짓 공작 계획이지만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에 의해 기각됐다. 통킹만 사건은 전쟁 전 월맹이 미 군함을 공격했다는 사건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근거가 됐으나 나중에 조작으로 밝혀졌다 : 옮긴이)

미국의 '전방위 지배'를 추구하는 국방부 내 극단주의자가 페르시아만 근처에서 이같은 위장 공작을 펼칠 수 있다는 상상은 완전히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이란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되거나 이란으로 하여금 판단 착오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새로운 국방전략에 따라 초점을 중동에서 태평양, 즉 중국으로 옮겼다. 이란은 서남아시아의 정중앙에 있고 이란산 원유는 미군이 지키는 바다를 통해 에너지에 목마른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란 사태'라고 부르는 이 과장된 드라마는 사실 페르시아만 인근의 국제정치 구도나 존재하지도 않는 이란의 핵폭탄에 대한 것인 만큼이나, 미국의 달러 체제와 중국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난폭한 짐승이, 자기 시간이 드디어 와 / 태어나려고, 베이징을 향해 휘청휘청 걷고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윌리엄 B. 예이츠의 시 '재림' 또는 'The Second Coming'의 마지막 두 행에서, 필자가 '베들레헴'을 '베이징'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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