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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에서 김정은까지, 핵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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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에서 김정은까지, 핵을 묻는다

[정욱식의 '핵과 인간'] 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오늘부터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짧지만 긴 여정을 떠나볼까 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발단이 되었던 아인슈타인의 편지에서부터 핵무기를 물려받은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70여년 핵의 역사를 3개월에 걸쳐 30차례 정도의 글로 찾아뵐 계획입니다.

오는 3월은 후쿠시마 원전 참사 1년이 되는 때이자, 건국 이래 최대 국제회의인 '2차 핵안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달이기도 합니다. 핵에 대한 관심과 토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제가 이 여정을 준비한 배경입니다.

1945년 7월 중순 '핵의 시대' 개막을 알린 트리니티 핵실험이 실시된 미국 뉴멕시코의 사막 이름은 스페인어로 '죽음의 여정'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써내려갈 본 연재가 '생명평화의 여정'을 고민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랍니다. <필자주>

▲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발 장면

핵과 인간의 위험천만한 동거

"저는 핵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재앙으로 인류가 10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2년 1월 8일 70회 생일을 맞아 내놓은 인류 사회를 향한 경고이다. "1000년 이내"라는 시간은 먼 훗날일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나흘 후 호킹 박사도 소속되어 있는 핵과학자협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2010년보다 1분 앞당긴 11시 55분에 맞췄다. 자정은 지구 종말을 의미한다. 인류사회의 절멸의 위기는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인간의 문제 해결 의지와 능력은 제자리걸음이라는 경고일 게다.

이들 과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인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로 지목한 것이 바로 핵과 지구 온난화다. 핵무기는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발명품이다. 일본 후쿠시마 참사를 계기로 핵 '무기'와 '에너지', 삶과 죽음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그런데 핵은 또 다른 지구 종말의 시나리오를 품고 있는 지구 온난화를 만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원자력이 저탄소 배출 에너지라는 신화가 확산되면서, 그리고 석유 고갈 시대가 다가오면서, 많은 나라들이 원전 확보와 증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참사를 계기로 이러한 경향이 주춤할 조짐도 보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국가 지도자들은 '우리의 원전은 안전하다'며 비즈니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주듯, 원전은 그 자체로도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핵폐기물 가운데 플루토늄-239의 반감기는 약 2만5000년, 우라늄-238의 반감기는 지구 수명과 맞먹는 40억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핵폐기물은 "가장 사정거리가 긴 구조적 폭력"이라는 일본의 환경평화 학자 토다 기요시의 지적은 유념해볼 가치가 있다.1)

우리에게 사활적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북한 핵문제의 사례는 "평화적 목적"이 "군사적 목적"으로 언제든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둘러싸고 서방 세계와 정면충돌도 불사하고 있는 이란의 경우에도 기술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전용'의 경계선이 얼마나 흐릿한지를 잘 보여준다. 핵에너지에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연료 확보→원전 가동→사용후 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핵연료 주기 완성'의 유혹도 커진다. 일본이 그렇고, 한국의 '핵 주권론'에도 잠재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핵무기는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면 만들 수 있다. 핵 '무기'와 '에너지'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과 철학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핵처럼 양면성을 지닌 존재도 드물다. 그 출발점은 핵이 대표적인 '이중용도' 기술이라는 데에 있다. 핵은 원자력을 의미하는 '평화적 목적'으로도 핵무기를 의미하는 '군사적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또한 핵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인간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하고 매료시키기도 한다. 내가 핵을 '인간계의 절대반지'라고 일컫는 까닭이다. 이러한 핵의 '두 얼굴'은 '과학과 윤리', '전쟁과 평화'라는 인류 사회의 오랜 양면성을 대표한다. 그 양면성은 국제정치에서도, 한 사람의 마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국제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의 확산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자기 보호 본능의 반영과 핵클럽의 문을 빨리 닫아 핵독점을 유지하려는 강대국들의 기만책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는 핵실험을 하고 나서 "나는 죽음, 세계의 파괴자가 됐다"고 자책하면서 '핵군축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했다.

핵의 가장 심각한 양면성은 공포와 안전의 모순적 조합에 있다. 나는 2008년에 쓴 책에서 다음과 같이 그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핵 억제론'으로 일컬어지는 핵무기에 의한 평화는 그 무기가 사용되는 순간 모두가 죽게 된다는 '공포의 균형'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이 너 죽고 나 죽고 모두가 죽게 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 이성의 최저치에 대해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계속 갖고 있으면서, 모두가 죽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야말로 인류사회가 직면한 지독한 역설이자 인간 이성에 대한 '모독'이다."2) 우리에게는 '대소 봉쇄 정책의 설계자' 정도로만 알려진 조지 케넌은 "우리의 도덕적 지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자연으로부터 뽑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탄했다.3) '핵과 인간'의 위험천만한 동거를 꿰뚫은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새롭게 조명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핵과 인간'의 기나긴 여정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에서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핵이라는 과학적 발견과 20세기 최악의 인재(人災)인 2차 세계대전 발발은 조우하고 만다. 당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천재 과학자들의 신념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히틀러가 갖기 전에 연합국이 먼저 가져야 한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면서 끝났다. 그러나 미국의 원폭 투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소련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 일본이 원폭을 맞아 항복을 했고, 그래서 조선도 해방될 수 있었다는 단편적인 역사 인식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핵'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전쟁도 완전히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질문만 던져보면 왜 이 작업이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왜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했을까? 혹시 핵의 위력을 믿었던 것은 아닐까? 왜 스탈린은 마음을 바꿨을까? 그 역시 핵의 위력을 믿었던 것은 아닐까? 핵보유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결심한 마오쩌둥은 '강심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미국의 핵 공격 움직임에 이승만과 김일성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국의 핵 위협이 정전협정을 가져온 힘이었을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기지 못하는 전쟁에 직면했던 미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전쟁에 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연구 성과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비밀 해제된 미국 문서들을 추적하고 외국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분석해봤다. 결론은 한국전쟁과 핵무기의 관계는 상당히 밀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은 '세계 전쟁'이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이후 세계 냉전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과 핵무기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단순히 과거사의 기술이 아니라 오늘날 한반도 핵문제를 역사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비핵화를 설계하는 데 주춧돌을 놓는 작업이다. 미국의 대북 핵 위협과 북핵의 뿌리는 바로 한국전쟁에 있기 때문이다.

미소간의 전후 협상 결과 한반도가 분단되어 전쟁의 근원을 잉태시켰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맹위를 떨친 미국의 '핵 강압 외교'의 뿌리가 2차 대전 막바지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겐 생소하다. 또한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 결사항전을 고수한 일본의 패망을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굳어진 '핵 숭배주의'는 한국전쟁에서 다양한 얼굴로 표출되게 된다. 적을 괴멸시킬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과 이에 기반을 둔 강압 외교가 핵의 한쪽의 얼굴이라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기억에 내재된 도덕성과 인종주의 문제는 핵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한반도 핵문제의 기원은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 가운데 하나가 트루먼과 스탈린의 핵의 위력에 대한 엇갈린 믿음에 이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의 위력을 믿은 트루먼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보면서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마찬가지로 핵의 위력을 믿은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한반도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오판했다. 핵의 위력을 맹신한 맥아더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북진을 강행했고, 핵무기를 '종이호랑이'로 간주한 마오쩌둥이 참전을 강행하면서 한국전쟁은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트루먼이 원자탄 사용을 강하게 암시하자 영국의 애틀리 총리가 워싱턴으로 날아간 것이나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인종차별주의를 들고 나온 것도 한국전쟁과 핵무기, 그리고 지구 지정학 사이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 순간이었다. 미국이 핵 사용을 암시하자 이를 정치선전 도구로 활용한 김일성과 미국이 핵 사용을 주저하자 이에 분개한 이승만의 모습을 통해서도 핵무기를 둘러싼 인간들의 다양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 종식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아이젠하워의 등장을 전후해 한국전쟁과 핵무기의 관계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전술 핵무기의 개발·생산, 공세적인 핵 정책을 채택한 아이젠하워의 등장과 교착 상태에 빠진 정전 협상은 핵전쟁과 확전의 위험을 야기했다. 아이젠하워는 정전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마무리짓기 위해 노골적인 핵 위협을 동원했고, 개성은 핵 공격의 1차 목표물이 되었다.

정전협정에 도달할 수 있었던 힘이 핵 위협에 있었다고 믿은 미국은 비핵국가였던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대량 보복' 전략을 채택했고 이를 유럽으로 확대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전국토의 요새화와 '적 끌어안기' 전략으로, 중국은 '종이호랑이'에 올라타는 것으로 대응했다. 미국과 소련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만들고 기상천외한 미사일을 선보이면서 '상호 확증 파괴'를 향해 돌진했다. 한국전쟁 때 선보였던 미국의 핵 위협은 베트남 전쟁 때에도 재현되었고, 베트남은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맞섰다. 이는 '핵 시대의 첫 전쟁'이었던 한국전쟁이 이후 '핵의 시대'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 수소 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원자로 건물의 처참한 모습 ⓒAP=연합뉴스

다시 핵을 묻는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나라들은 핵무기를 거머쥐었다. 핵무기 예찬론자들은 미국과 소련이 "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상호간에 핵 억제가 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대가를 수반한 것이었다. "더 많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다양하게" 핵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상상을 초월한 군비경쟁을 야기했다. 지금까지 2000번이 넘는 핵실험으로 인해, 태평양의 많은 섬들이 사라졌는가 하면, 수많은 섬마을 주민들도 목숨을 잃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이 방사능으로 오염되면서 암 발생율과 기형아 출산율도 치솟았다.

주목할 것은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이 해체된 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상대방을 겨냥한 '일촉즉발'의 핵 공격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에 의해서든, 기계의 오작동에 의해서든, 언제든 핵 미사일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핵 예찬론자의 주장처럼 인류의 평화를 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핵 억제력"을 주창하는 북한이나 그 잠재력이라도 갖고자 하는 이란에게 핵 포기를 요구할 근거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구상 어디엔가 핵무기나 그 물질이 존재한다면, '핵 테러'의 공포도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핵이 무기가 되는 것은 반대하지만, 에너지로 이용하는 것은 찬성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고백컨대, 필자 역시 핵에 대해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평화운동가로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비핵지대, 그리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원하고 있고, 또 이를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했다. 그러나 '핵의 평화적 이용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여겼었고, 북핵 문제 해법으로도 경수로 제공은 불가피하다고 봤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참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에 반문을 갖게 됐다. 자연-인간-과학의 삼각관계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핵'은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보이지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기에 공포는 더욱 크게 퍼져갔다.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은 바람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방사능 물질이 몸에 퍼지는 것을 막는다는 요오드화칼륨이 동이 났다. 이처럼 핵의 공포는 '나와 너'를 가리지 않고 국가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1주년이 다가오는 후쿠시마 참사를 망각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주석

1) 토다 기요시 지음, 김원식 옮김, 환경학과 평화학(녹색평론, 2003년), 170-179쪽.
2) 정욱식‧강정민, "핵무기: 한국의 반핵문화 형성을 위하여"
3) 정욱식‧강정민, "핵무기: 한국의 반핵문화 형성을 위하여" 24쪽

* 다음에 이어질 글: 히틀러의 야만과 아인슈타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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