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지난 22일 시르테의 '마하리' 호텔의 뜰에서 카다피군 전사들의 시신 53구를 발견했으며, 시신들 중 많은 수가 머리에 총을 맞았고 일부는 손이 뒤로 묶여 있는 등 처형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 방송이 24일(현지시간) 전했다.
시신들의 상태로 볼 때 이들은 15~19일 사이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누가 이들을 죽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시르테에서는 카다피군과 반군 간의 치열한 교전이 전개됐었다. HRW 측의 조사에 따르면 이 호텔은 이들의 사망 당시부터 지난 20일 카다피의 죽음으로 교전이 종료될 때까지 미스라타에서 온 일단의 반군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HRW의 비상대응 담당자인 피터 보카트는 "일부는 총에 맞았을 때 손이 등 뒤로 묶여 있었다"며 "증거들로 미뤄볼 때 희생자들 중 일부는 포로로 수감돼 있다가 총에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BBC>에 말했다.
보카트는 성명을 통해 "이 대량학살 사례는 스스로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무장한 반군들이 저지르고 있는 살해, 약탈 등 잔혹행위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밝혀낼 리비아 당국의 즉각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NTC는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리비아 국민들에게 더 이상의 복수전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카다피 또한 생포된 이후 반군에 의해 처형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은 카다피의 사망 정황을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NTC 측은 카다피와 그의 4남 무타심의 시신을 25일 새벽 이미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NTC 소식통을 인용해 카다피는 리비아 사막의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비공개로 묻혔다고 전했다. 압둘 하피즈 고가 NTC 부위원장도 <블룸버그> 통신과의 통화에서 그의 시신 매장 사실을 확인했다.
미스라타의 한 정육점 냉동창고에 보관돼 4일간 '전시'됐었던 카다피의 시신은 앞서 24일 오후 다른 장소로 옮겨졌었다. 냉동창고 경비원 살렘 알모한데스는 <알자지라> 방송에 "카다피의 시신은 (반군측) 미스라타 군사위원회에 의해 내가 모르는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사망에 대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암살'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죽음을 가져온 나토(NATO)를 "잔인한 군사동맹"이라고 비난했고 앞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카다피가 '암살'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도 사망 정황이 불투명하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카다피의 죽음으로 종식된 리비아 내전에서 발생한 학살 및 잔혹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로이터=뉴시스 |
서방-카다피 밀월관계 논란 "인권과 정의 강조하면서 뒤로는…"
한편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 정보기관인 해외정보국(MI6)의 개입 하에 리비아로 강제 송환된 반(反) 카다피 성향 이슬람 무장단체 지도자와 그 가족들이 영국 정부에 대한 법정 소송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슬람 무장세력 '리비아이슬람투쟁그룹'(LIFG)의 지도자 중 하나인 사미 알사디는 과거 중국으로 망명했으나 지난 2004년 3월 홍콩에서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로 송환됐다. 이 과정에서 MI6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지난달 카다피 정권의 외무장관이었으며 송환 당시 리비아의 해외정보 책임자였던 무사 쿠사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이 문서들 중에는 2004년 3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쿠사에게 보낸 팩스도 포함돼 있었다. 팩스에서 CIA는 MI6의 개입 정황을 알고 자신들도 사디 송환 작전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트리폴리로 송환된 알사디와 그의 아내, 당시 6~12세이던 네 명의 자녀도 카다피 정권 하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두 달여만에 풀려났으나 알사디는 6년간 갇혀 있었다. 그는 카다피가 축출된 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투옥 기간 중 구타와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알사디의 장녀 카디자(19)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는 인권과 정의를 말하면서 왜 카다피와 관계를 맺는가?"라고 따져 물으며 "영국 정부는 우리 가족이 리비아로 송환되면 학대받을 것이고 죽을 수도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를 이런 처지로 만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사과받길 원한다. 그들이 내 어린 시절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무사 쿠사의 사무실에서 입수한 다른 문서에는 현재 반군의 트리폴리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LIFG의 전 최고지도자 압델 하킴 벨하지와 그의 임신한 아내도 같은 달 중 트리폴리로 송환될 것이라는 MI6의 전언도 들어 있었다. 벨하지와 알사디 등이 소속됐던 LIFG는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지목당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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