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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을 폭로하다"

[中國探究] 영화감독 평샤오강이 제기한 문제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 펑샤오강(馮小剛)이 당국의 영화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8월 26일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의 주제 협상회의 자리에서였다. 정협은 중국공산당의 외곽 조직으로 공산당은 물론 이른바 민주당파, 무당파 애국인사, 인민 단체, 소수민족 및 각계 대표, 홍콩과 대만 동포, 귀국 화교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말 그대로 정국 운영방향에 대한 '협상'을 통해 각계각층이 한목소리로 이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한 차례 전국위원회를 소집하지만 이번 회의는 "문화체제 개혁의 심화, 문화사업 및 문화산업의 번영 발전"이라는 주제로 열린 분과 회의 성격이었다. '문화체재 개혁'과 '문화산업 발전'은 최근 중국 문화 정책의 핵심적인 주제들이다.

펑샤오강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대중영화를 연이어 흥행시키면서 '새해맞이 영화'(賀歲片)의 대부로 자리를 굳힌 감독이다. <갑방을방>(甲方乙方), <끝나질 않아요>(沒完沒了), <핸드폰>(手機) 등과 한국에도 수입된 바 있는 <야연>(夜宴), <집결호>(集結號), <대지진>(唐山大地震) 등이 모두 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들이다. 해외에서 그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사실 썩 좋지만은 않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가장 흥행성이 높은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연말연시를 극장가의 대목으로 개척해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의 인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 2008년부터 5년 임기가 시작된 제11기 정협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는 전국위원 겸 베이징텔레비전예술센터 감독 자격으로 이번 회의에 참석해 '협상'의 본래 목적과는 달리 중국 영화 당국의 아픈 대목을 정곡으로 찔렀다. 영화 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국내 영화 총수입의 5%를 납부하는 '국가영화사업발전전문기금'의 납부 비율을 감면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심사(검열) 제도를 완화하라는 것이다.

▲ 1940년대 국공 내전을 배경으로 한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집결호>의 한 장면. 이 영화는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뉴시스

영화기금 제도는 일찍이 1991년 영화표 1장 당 5펀(分, 0.05위안)을 납부하는 것으로 시작돼 2006년 전체 입장권 수입 중 5%를 납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화사업 발전을 위한 명목으로 거둬들인 기금은 주로 농촌 영화 상영 환경의 개선과 디지털화, 어린이 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지원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펑샤오강의 주장에 의하면 이 납부금의 비중이 매우 높아 특히 막 사업을 시작하는 영화사에는 막대한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사 '화이슝디'(華誼兄弟)가 2010년 4000만 위안에 달하는 기금을 납부했는데 이는 이 회사의 전체 이윤 중 절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기작을 위한 새로운 투자를 엄두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에 할당하고 있는 영화기금을 감면하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영화심사 제도는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책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 수호 전략 중 하나다. 펑샤오강은 자신의 최근작 <대지진>을 사례로 들면서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지도자'(領導)들의 지시로 인해 심사 제도가 규정하는 합법적인 절차 자체가 전복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감독들이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보다는 역사극으로 도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 입안과 집행과 수정 등 일련의 과정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는 중국적 상황의 핵심을 짚어낸 주장이다. 중국의 영화 심사제도는 "사회의 공공 도덕을 위해하거나 민족의 우수 문화를 비방하는 내용" 등을 금지하는 등 다소 모호한 규정들로 구성돼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전 심사(시나리오 및 시놉시스), 촬영 후 심사(내용 심사), 기술 심사 등 여러 단계에 걸쳐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펑샤오강은 이런 상황은 1980년대 초보다 후퇴한 것이라며, 당시 <부용진>, <황토지>, <붉은 수수밭> 등과 같은 역작이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사상 해방과 궤를 같이한 너그러운 문화정책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이 나오자 영화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국가라디오영화텔레비전총국(國家廣播電影電視總局, SARFT) 심사위원회 자오바오화(趙葆華) 위원이 나서 "우리는 이미 '최소한의 심사'를 하고 있다"며 "문제를 자신들에게서 찾아야지 심사위원회를 '악마화'하지 말라"고 반격하는 등 파장이 확대됐다. 영화기금 문제에 대해서도 그 비중이 훨씬 높은 해외 사례를 들어가며 정당하다는 반론이 쏟아졌다. 그러나 영화계 현장에 종사하는 이들은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펑샤오강을 지지하면서도 대체로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금 제도와 심사 제도 모두에서 절충적인 해법은 대작 영화와 중소 규모의 영화를 구분해서 생각하자는 구상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화싱극장(華星影院)의 우쓰위안(吳思遠) 대표는 1000만 위안 이하의 자본이 투자된 영화에 대해서는 기금을 우선적으로 면제하자고 주장하면서 국산 중소 규모 영화와 미국의 대작이 동일한 비율의 기금을 납부해야 하는 모순을 지적했다. 또한 러스영상업(樂視影業)의 장자오(張昭) 대표는 대작 영화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심사를 엄격하게 해야 하지만 중소 자본의 영화는 독창적인 제재와 시각을 인정함으로써 개성 있는 영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며 심사 제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이런 입장은 오늘날 중국의 영화 정책, 나아가 문화 정책의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문화시장, 문화산업의 발전이라는 구호가 표방하듯 자본의 순조로운 유통과 더불어 자유로운 창작 환경의 조성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즉 '시장경제'의 원리를 더욱 확실하게 따르자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의 역사는 언제나 현실을 중시하는 실용파와 이념을 중시하는 보수파의 갈등으로 구성돼 왔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펑샤오강이 1980년대 초 사상 해방 시절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바로 그때 이른바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이라는 구호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구호는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등과 같은 주류 이념을 지지하면서 민간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사상 해방보다는 사회주의의 이념적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믿는 지도자들에 의해 기획된 것이다.

SARFT는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협상' 위원인 펑샤오강은 '시장경제'의 상징으로 이번 논쟁의 무대에 뛰어든 셈이다. 그렇기에 이번 논쟁은 사회주의 소강(小康, 기본적 의식주가 보장됨)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자부하는 중국 사회 내부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초부터 결합 가능한 것인지 끊임없이 회의돼 왔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의 충돌은 앞으로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사상과 정치, 이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경제만을 시장 원리에 맡기는 방식은 그 자체로 많은 모순과 갈등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유기업의 발전을 통해서 민생을 살리겠다는 '충칭(重慶) 모델'에 관한 논의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계에는 당분간 이런 모델이 즉각 적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화업에서는 오히려 민간이 번 돈을 정부가 거둬가면서도 다양한 규제들을 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중국적 특색의 절묘한 절충주의, 즉 '약자'를 보호하면서 '강자'를 그 모순의 전면에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영화는 작년만 해도 연간 제작량이 526편에 이르고 전국 주요 도시 입장권 수입이 101억 위안에 이르는 등 양적으로는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적으로는 아직 세계 영화와 어깨를 겨루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진격에 대비해 자국 영화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운지 오래지만, 양적 성장에 비해 그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펑샤오강 논쟁 직후 중국 언론들은 파리에서 열린 제6회 중국영화제 소식을 전하면서 여론의 물길을 돌려보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이번 논쟁은 그런 미봉책으로 벗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 영화, 나아가 중국 문화가 정말로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보편의 미학과 정치학을 담보하는 수준에 오르려면, 펑샤오강의 문제제기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 문제제기야말로 오늘날 중국 영화와 문화, 나아가 중국 사회를 인식하는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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