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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베이징-도쿄…평양에는 언제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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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베이징-도쿄…평양에는 언제 가려나

[정욱식의 북핵이야기]<13>존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에 부쳐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베이징-도쿄 순방에 나섰다. 첫 동북아 순방의 최대 의제는 단연 북한 문제이다. 그의 순방이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반전을 가져올지, 아니면 아무런 기여도 못하게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언행을 개선해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한미 양국 정부의 완고한 입장을 고려할 때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미 간의 유일한 대화채널인 뉴욕 채널마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짙어진다.

'평양에는 언제 가려나?' 케리의 동북아 순방 계획을 보면서 든 안타까운 심정이다. 미국이 북한을 고립·압박·제재하기 위한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북한과 대화에 기울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 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의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건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당시 북한의 2인자였던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에 대한 답방이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사전 준비의 성격도 함께 띠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올브라이트를 데리고 수만 명이 운집한 김일성 경기장에 찾았다. 그리곤 올브라이트에게 말했다. "이것이 공화국의 마지막 미사일 발사입니다." 카드 섹션으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연출하곤 미사일 문제를 풀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클린턴의 방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올브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의회와 전문가 그룹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하는 거래가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공화당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클린턴의 평양행을 가로막고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사일 협상마저 요격한 것이다.

케리가 평양에 가야 하는 까닭은?

케리 장관은 미국 상원으로부터 5월 15일까지 범정부 차원의 광범위한 대북정책 보고서를 마련해 의회에 제출토록 요구받았다. 아직 동아태 담당 차관보 등 국무부의 아시아 팀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보고서 제출이 늦어질 수는 있다. 어쨌든 케리 보고서는 2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향방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케리 보고서 제출이 임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페리 보고서'이다. 1998년 8월 북한의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과 광명성 1호 발사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해 범정부적인 대북정책 검토 및 권고안을 작성케 했다. 8개월간의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 1999년 10월 발표된 페리 보고서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제안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반전을 가져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 회담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냉전 종식의 문턱까지 갔었다.

당시 페리 보고서가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 정부의 집중적인 노력과 김대중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 그리고 북한의 호응이 맞물렸던 것이 주효했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페리의 방북이었다. 1999년 5월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페리 일행은 북한의 고위급 관료들을 두루 만나 "북한 정부의 관점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었다. 페리 스스로도 방북 경험이 대북정책 수립에 대단히 유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완의 정책으로 끝난 '페리 프로세스'를 재가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케리의 방북을 포함한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의 상대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않고 나오는 정책은 이미 그 자체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입견과 관성에 사로잡힌 정책으로는 오늘날의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기는커녕 더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과의 최고위급 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NBA 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도, 평양 주재 영국 외교관들도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김정은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김정은 체제가 오바마 행정부의 최고위층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케리가 평양에 가져가야 할 '두 가지'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대화의 성과를 확신할 수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적극적인 대화 시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클린턴 행정부 때나 부시 행정부 막바지의 고위급 접촉의 성과도 있었다. 지금 대화에 나서는 것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아마겟돈'의 위기에서 소련 지도부와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었던 케네디 행정부를 소련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대화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또한 대결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이 고위급 대화를 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의 대화 회피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국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의구심만 증폭시킬 뿐이다.

케리의 방북을 비롯한 고위급 회담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핵심적인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논의에 즉각 착수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전달하는 것이다. 기실 오늘날 최악의 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데에는 북한에 큰 책임이 있더라도, 평화협정 논의 자체를 기피해온 한미 양국에도 그 책임이 작다고 할 수 없다.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평화협정을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지 8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평화포럼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지적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 시기의 한미 대북정책 공조에서는 평화협정과 평화체제가 핵심적인 공동의 목표로 설정되었으나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들어선 이후에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도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평화협정과 관련해 두 가지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이고, 또 하나는 '주한미군은 어떻게 되느냐'이다. 전자의 우려와 관련해서는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폐기 대상, 방식, 시한을 명시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한 획기적인 신뢰조치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의 사례처럼 북한이 '과도기적 지위'로 NPT에 복귀하는 것을 협의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평화협정-비핵화-NPT를 화학적으로 융합해보자는 것이다.

후자의 문제도 기우이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북미 적대관계가 종식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하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오바마 행정부에 권고하고 싶은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이다. 이는 미국이 2000년에 했던 미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자 냉전과 열전의 위험을 오가고 있는 한반도를 탈냉전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마도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핵실험으로 응답할 것이다.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니라 수만 명이 연출하는 카드섹션으로 말이다. 그리고 오바마에게 말할 것이다. "이게 우리 공화국의 마지막 핵실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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