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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가 남-북-러 가스관 사업 탐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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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가 남-북-러 가스관 사업 탐 냈으면 좋겠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1강>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인제대학교,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하는 제2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가 30일 첫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제1강에서는 한반도평화포럼의 공동이사장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김대중의 평화사상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향로'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임 이사장의 강연문을 아래와 같이 전문 게재한다.


임동원 이사장은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명박 정부가 가스관 사업에 탐을 냈으면 좋겠다. 그걸 계기로 남북대화의 숨통도 트일 것이다"라고 답했다.

임 이사장에 따르면, 북한을 관통하는 파이프를 통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남쪽으로 수송하자는 아이디어는 20여년 전에 처음으로 제기됐다. 그가 통일부 차관이던 1992년 당시 북한의 김달현 경제부총리가 서울을 방문해서 "우리(북)가 러시아와 합의했는데 남과 북이 타당성 연구를 합동으로 해보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임 이사장은 "그때부터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러시아와 접촉했다"며 "김대중 정부도 상당히 노력했고, 나아가 가스 파이프라인과 철도가 나란히 가는 걸 구상했다. 그게 되어야 한다. 우리한테 아주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 이사장은 북한의 후계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 같은 민주사회의 사람들이 보면 한심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어쨌든 북한 권력의 실체이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같은 가치 판단은 둘째 치고 우리가 상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3년 체제와 한반도 평화전략'이라는 큰 주제로 열리는 2기 아카데미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중구 저동에 위치한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총 8차례 진행된다. 9월 6일 열리는 2강은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G2 시대 동북아 질서재편과 한반도의 선택'이란 주제로 강의한다.

강의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한반도평화포럼 홈페이지(☞바로가기)를 방문하거나 사무국으로 전화(02-707-0615)하면 된다. 한반도평화포럼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 종교·시민사회 관계자, 전직 공직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첫날 강의에는 공동 주최측인 인제대의 백낙환 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의 임동원·백낙청 공동이사장,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 등이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는 작년 10~11월 5회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

김대중의 평화사상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올해 우리는 6.25 전쟁 61년을 맞았다. 적화통일을 위한 동족상잔의 전쟁은 국제전쟁화했고, 3년간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인구의 1/6인 500만 명이 희생되고 전 국토는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전쟁은 통일도 평화도 가져오지 못했고, 휴전은 냉전으로 이어졌다. 60년이 된 오늘날도 남과 북은 승패의 대결을 일삼으며 6.25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다.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전쟁의 재발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전쟁을 억제하여 평화를 지킬 뿐 아니라 적대관계를 해소하여 평화를 만들고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중단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하도록 국민들이 결단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김대중의 평화사상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되살펴보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자료사진

김대중의 평화사상과 통일철학

2000년도 노벨평화상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여되었다. 노벨상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이 "수십년 동안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노력"과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 협력을 통해 냉전의 잔재를 제거하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김대중이 평생 추구한 가치는 바로 민주주의와 평화였다. 그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와 평화는 서로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되면 전쟁은 불가능하고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평화사상은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평화사상은 사상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진 사상이라는 특색을 갖고 있다. 한국의 현실정치, 남북관계 그리고 대외관계에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또한 직접 실천해 낸 사상이다. 그의 위대한 삶에서 용서와 화해, 자유와 정의, 관용과 평화를 보게 된다. 그의 실천적 삶은 일생을 '행동하는 양심', '참여와 실천의 리더십'으로 빛나고 있다.

김대중의 평화사상은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그 핵심 실천과제로 하고 있다. 그의 통일철학은 평화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통일은 남북이 상호 인정하고 화해 협력하며 평화를 만들어 나가면서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평화통일철학은 1970년대 초 이래 역사적인 상황 변화에 적응해가면서 1995년에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집권 후 화해 협력의 햇볕정책으로 실천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마침내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남북 간의 접점(接點)을 마련하고. 반세기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나감으로써 절정에 이르게 된다.

1970년대 초,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고, 힘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던 시기에 젊은 정치인 김대중은 전쟁을 반대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남한이 승공통일을 주장하고,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한 혁명전쟁을 선동하는 등 정치·군사적 대립이 첨예화되던 시기였다.

그는 미국과 일본, 소련과 중국 4대국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해야 한다는 '4대국 안전보장론'과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하면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 "선(先) 평화 후(後) 통일론"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북한을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북진통일과 승공통일을 외치던 때에 북한과의 대화와 평화통일을 주장한다는 것은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정적들은 그의 사상이 이상하다며 용공, 급진, 좌파, 빨갱이로 몰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무렵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 국가의 책임"임을 선언하고 월남전 종식을 추진한 닉슨독트린(1969), 미국과 중국의 화해(1971), 중국의 유엔가입(1971), 일본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1972), 그리고 동-서독일 정상회담(1970) 등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활용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받고 남북관계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국세정세의 변화를 꿰뚫어 보는 미래지향적인 혜안을 가지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이었다. '4대국 안전보장론'은 오늘날 6자회담과 '동북아안보협력체' 추진으로 이어졌고, '남북의 유엔동시가입'은 1992년에 실현되었다.

1980년대 말 그는 연합-연방-완전통일의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한다. 국제 냉전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국내에서는 6월 민주항쟁으로 국민들의 민주화와 통일의 열기가 고조되어 가던 때이다. 이 통일방안은 통일을 '선 민족사회통합, 후 국가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과도적 통일체인 '남북연합'을 거쳐 이룩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89년)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평화통일론은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1995)으로 완성된다. 그는 평화통일은 갑자기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과 북이 각각 주권국가로 평화공존하면서 교류 협력하는 '연합' 단계를 거쳐서, 북한이 주장하는 2체제 연방제가 아니라, 1체제 연방제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통일 이전의 남북연합 단계에서 수행해야할 과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평화적 교류 협력을 통해 정치 군사적 통합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제시한 내용이 집권 후 대북정책의 기조를 이루게 된다.



화해 협력으로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실현

우리민족의 지상 과제는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번영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분단 상태에서는 정통성 독점 경쟁이 불가피하며, '승패의 게임'의 유혹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항상 갈등과 분쟁, 군비경쟁, 그리고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게 되며, 민족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참고로, 최근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발표한 통일비용 추계에 따르면, 북한이 급격 붕괴시에는 30년간 매년 720억 달러가 소요 되지만, 정상 발전시에는 그 1/7인 매년 1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추계했다. 우리나라의 금년 국방비가 약 300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통일비용이 분단유지비용보다 적게 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이룩하려는 통일은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 시장경제 아래 번영 발전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적정한 자위력을 갖춘 평화애호국가의 건설이다.

문제는 통일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2000년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장시간의 토론과 설득을 통해 통일문제에 관해 공통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평화공존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다. 그 내용을 중심으로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룩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무력통일이나 상대방을 굴복시켜야 하는 흡수통일은 통일방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을 배격하고 평화를 만들어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평화적인 통일은 갑자기 이룩될 수 없으며, 우선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실현하여 점진적 단계적으로, 소통과 변화의 과정을 통해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인 것이다.

우선 남과 북이 상호 인정하고 화해 협력하며 평화공존 해야 한다. 남북이 서로 오고 가고 돕고 나누면서, 통일은 되지 않았지만 통일된 것과 비슷한 상황, 즉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 상황부터 먼저 실현해야 한다. '사실상의 통일'상황을 실현하여 분단으로 인한 겨레의 고통을 줄여가며 서로 소통하고 신뢰를 다져나가면서 민족동질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상생 공영하며 변화와 창조의 과정을 통해 '법적인 완전통일'(de jure unification)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스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현재진행형으로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10%, 25%, 60%, 이런 식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긴 과정인 것인 것이다. 한반도 특유의 '과정으로서의 통일' '현재진행형 통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③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남북연합'을 통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추진하고 공동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만의 일방적인 노력으로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다. 평화와 통일의 긴 과정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관리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협력기구가 필요하다. '남북연합'은 통일국가의 형태가 아니라 통일 이전 두 주권국가 간의 협력기구를 말하는 것이다.

북측 지도자도 '남북연합'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다만 북은 그 명칭을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호칭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제2항)을 통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한다"고 합의하게 된다.

북측 지도자는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이 즉각 '연방제'로 통일부터 하자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은 냉전시대의 산물이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연방제가 되려면 외교와 군사권을 통합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군대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이 평화를 만들어 완전통일을 추진하는 긴 과정을 효율적으로 공동 관리해 나가자는 남측의 '연합제'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임동원 회고록 <피스메이커> p.102-105)

일부 반북인사들이 6.15 공동선언은 북측의 연방제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하며 폐기를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이거나 아니면 고의적인 사실 왜곡일 것이다. 사실상 이미 폐기 상태인 북측의 2체제 연방제를 우리가 수용한 것이 아니라 북측이 우리의 연합제를 수용한 것이다.

④ 평화와 통일은 한반도문제에 깊이 개입해온 국제세력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주도하여(열린 자주) 국제세력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 내어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피스메이커> p.400-406)

한반도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통일에 앞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냉전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미국, 일본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관계정상화가 이룩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 중국과 남북한 4개국 평화회담을 통해 군사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관련국의 지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남과 북은 1991년 말 탈냉전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강령적 합의서를 채택했다. 상호 체제를 인정 존중하며 화해하고,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추진하고, 전쟁하지 말고, 불가침을 보장하기 위해 군비감축을 실현하며,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해 나가자는 훌륭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이다. (<피스메이커> p.228.)

그러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현실에 부닥친 것이다. 1990년대 초 소련과 중국은 대한민국과 관계정상화하고, 남북이 모두 유엔에 가입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적 봉쇄정책을 계속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지도자들의 냉전적 대북시각과 민족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여도 걸림돌이 되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한반도평화프로세스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평화가 동북아의 평화 안보 협력체제 구축에 추동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동북아 평화는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역사적인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 대통령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를 설득하여 미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공동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에 옮기기로 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게 된다. 제네바 미북기본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한 미국도 북한 특사를 맞아 미북관계 개선의 이정표에 합의하는 미북공동코뮈니케를 채택하고, 올브라이트 국무정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미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피스메이커> p.495) 일본도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하는 평양선언을 채택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김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목표를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이 변화(개방과 시장경제 개혁)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고, 평화를 만들어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는데 두었다. 화해, 협력, 변화, 평화가 햇볕정책의 네 가지 키워드이다.

그의 햇볕정책은 결코 순진한 것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첫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둘째, 흡수통일 할 생각이 없다. 셋째, 화해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대북정책의 3대 원칙을 천명했다. 확고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즉 평화를 지키면서 평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뜻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이 변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 나가기 위해 보다 많은 접촉과 교류·협력을 추진한다. 북한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과 보다 많은 접촉과 다방면의 교류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통해 이들의 의식 변화를 유도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남북왕래 인원이 휴전 후 집권 때까지는 3000명에 불과했으나 집권이후 10년간 44만 명에 이르렀다) 서독의 경우처럼, 북한 동포에 다가가서 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즉 민심을 얻는 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자 했다. 경제적 접근을 통해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평화통일에 이르는 첩경이라 보았다. 유럽국가들이 경제공동체(EEC) 형성을 통해 국가연합(EU)으로 발전하고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또한 독일통일의 후유증에서 교훈을 얻어 정치적 통일에 앞서 남북 협력을 통해 경제 사회 통합부터 추진하려는 것이다.

우선 시범사업으로 개성공단을 건설하기 시작했다.(현재 개성공단에서는 120여 남측 기업에서 근 5만 명의 북측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를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끊어진 민족의 대동맥인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금강산 관광(190만 명)을 비롯한 관광 사업을 확대 발전시키는 한편 교역을 활성화하고 경제협력과 지하자원의 공동개발을 추진하고자 한 것이다.

남북철도의 연결은 남북간 교통뿐만 아니라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하여 북방으로 진출하고 한반도를 물류중심지로 발전시키려는 것이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10.4 선언을 통해 남북 협력사업을 40여 개로 확대 발전시키는 한편 분쟁의 바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전환하기 위하여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생존적 인권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지난 정부 10년간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4000가족 2만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년 평균 2억4000만 달라 분량의 식량, 비료,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이 제공되었다.(서독의 $32억/년에 비하면 1/13) 햇볕정책 반대자들은 인도적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했지만, 김 대통령은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 인권문제 해결 차원으로 접근했다.

그는 북한에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같은 시민적 인권은 물론이려니와 먹고 살기 위한 생존적 인권도 최하의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식량과 비료, 의약품 등을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생존적 인권 해결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시민적 인권은, 공산권 국가에서는 외부의 간섭과 압력에 의하여 해결된 예가 없고,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여 민주화되었을 때 해결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 등 우방국에 대해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을 개방 개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인권문제 해결의 바른 길임을 역설했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햇볕정책이야 말로 인권문제 해결의 바른 길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북한 핵개발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한반도는 반드시 비핵화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북핵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로서 미-북관계가 정상화되고, 평화가 보장될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김영삼 정부는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면서 '선 핵문제해결 후 남북관계'를 주장하며 '핵연계전략'으로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 이행에 기여하는 한편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에 기여하고자 하는 '병행전략'을 추진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바로 이러한 전략구상으로 추진된 것이다. 2005년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 폐기와 미북관계 정상화를 병행 추진하기로 재확인하는 한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관련 당사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남북관계 경색과 당면과제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의 대북정책은 잘못된 것이라며 차별화를 추진했다. 북한을 '점진적 변화론'이 아니라 '붕괴 임박론'의 시각에서 보고, 점진적 단계적 '평화통일'이 아니라 급변사태와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은 '화해·협력정책'이 아니라 북한의 굴복과 붕괴를 도모하는 압박과 제재의 '대결정책'을 선호하게 된다. 또한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문제를 관계개선과 함께 해결하려는 '병행전략'이 아니라, 실패한 네오콘식 접근방식을 답습한 '선 핵해결 후 남북관계'라는 '연계전략'을 고집하여 핵문제 해결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 못지않게 긴요한 것은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핵폭탄을 소량화·경량화하여 미사일에 장착한 핵무기를 만들려면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래의 위협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군사적 충돌이 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은 당장 당면하게 되는 현재의 위협이다. 남한에는 21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 원자력발전소가 피격된다면, 핵공격을 당한 것과 마치가지의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핵 폐기와 미-북관계 정상화를 맞바꾸기로 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에 합의한 6자회담의 9.19 합의를 이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굴복시키고 붕괴시켜야할 대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북한과 화해하고 교류 협력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심지어 북한 동포들이 굶주림에 허덕여도 식량이나 비료 등 인도적 지원도 하려하지 않는다. 붕괴를 촉진하기 위해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금만 더 압박과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백기를 들 것이고 망할 것이라며 붕괴를 촉진시키려는 것이 적대적 대결정책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이명박 정부는 햇볕이 아니라 거센 돌풍을 일으켜 북한의 옷을 벗기고 무릎을 꿇리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화해·협력의 공든 탑은 무너지고 남북관계는 악화되었으며,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촉진하는 역효과를 초래했고, 또한 북한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에 빨려 들어가게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남과 북은 사사건건 갈등, 반목, 대결하게 되며 긴장은 고조되고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평화를 만들기는커녕 평화를 지키기도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금강산,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현실적이지도 않는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에 입각한 대북 적대시정책이 위기의 근본원인임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정치·경제적 불안정과 급변사태를 기다리면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오만한 정책으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것은 결코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북한의 불안정과 위기는 한반도의 불안정과 위기를 초래한다. 장기적인 비전이 없는 이러한 근시안적인 정책으로는 평화와 통일은 멀어지고 긴장이 고조될 뿐만 아니라 북한이 중국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된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때이다.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근시안적인 대응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적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불신과 대결이 아니라 화해 협력해야 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as it is)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 변화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 남과 북이 지난 20년 동안 지혜를 모아 마련한 일련의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 그리고 10.4선언을 이행해 나가야 한다. 또한 6자회담 9.19 합의를 이행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6.25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전쟁을 억제하여 평화를 지킬 뿐 아니라 적대관계를 해소하며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손자는 싸워서 이기는 것 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전략(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며 부전승 전략을 갈파한 바 있다. 싸우지 않고 우리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평화를 만들어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통일철학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산출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분단 반세기의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 놓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은 그토록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시작을 해냈다.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이 채워나가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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