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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주거, 영구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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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주거, 영구임대주택

[미래연 주간논평] 판자촌, 빈민촌에서 '열린 주거지'로 만들어야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 발행하는 '미래연 주간논평'을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원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래 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통과 연대, 대안과 희망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퇴임 후 설립한 싱크탱크입니다.(☞홈페이지)

미래연 주간논평은 김수현 세종대 교수(부동산학. 前 환경부 차관), 김하열 고려대 교수(법학),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상철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이옥 덕성여대 교수(아동학) 등 7명의 전문가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감춰진 주거, 영구임대주택

영구임대주택.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임대주택이다. 1989년 도입 당시 몇 년 후 분양하는 주택이 아니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임대주택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영구(永久)'임대주택이라 이름붙였다.

1993년까지 정확히 19만77호가 지어졌고, 지금도 그만한 가구가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1.2%가 살아가는 곳이다. 한때 대통령까지 착공식과 입주식에 참석할 만큼 국가적 관심이 모아졌던 주택이지만, 지금은 그 이름도 낯설고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다.

행정 및 학문용어로는 영구임대주택이라 부르지만 실제 아파트 단지 어떤 곳에도 그런 이름을 쓰는 곳은 없다. 되도록 눈에 안 띄도록 이름을 짓고 색을 칠한다. 그렇지만 영구임대주택이 많은 자치단체들은 그 때문에 지역 이미지가 나빠지고 재정부담은 더 많다고 불만이다. 한 마디로 빈곤층들이 몰려 있고, 또 그래서 감추고 싶은 주택인 것이다.

판자촌 대체 주택

영구임대주택이 이렇게 감추고 싶은 곳이 된 데는 그만한 역사가 있다. 영구임대주택이 애초 판자촌을 대체하는 용도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시민의 10% 이상 거주하던 판자촌이 재개발사업으로 해체되던 중, 1987년부터 전월세 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전세금 때문에 일가족이 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89년 도입된 영구임대주택은 판자촌 재개발에 따른 대체주택, 급등하는 임대료에 대처하기 위한 주거안전망, 정치적 정당성 위기에 직면한 집권세력의 사회적 포섭전략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는 선진적인 복지제도의 일환이 아니라 화급한 빈곤층 주거안전망 차원에서 도입되었다. 입주대상은 가장 가난한 계층에 국한되었으며, 건립목표 물량(25만 호) 역시 당시의 법정 영세민 가구 수에 맞춰져 있었다. 출발에서부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으로 기획되었던 셈이다.

따라서 영구임대주택은 비록 건물은 새로 지은 아파트였지만, 주민은 판자촌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판자촌보다 사정이 더 나빴다. 판자촌이 비교적 자연발생적인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기에 주민들도 다양했던 데 비해, 영구임대주택은 처음부터 가장 가난한 사람만 선발한 인위적 빈민촌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 최초 입주 영구임대주택단지인 서울 번동 영구임대주택의 모습. ⓒ뉴시스

입주자 중 기초생활보장대상자 수준이 75%

영구임대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경제적 처지는 그 입주자격 분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영구임대주택 거주자의 50%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이다. 또 25%는 원래 기초생활보장대상자였지만 현재는 벗어난 사람들이다. 빈곤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개 자녀가 장성해서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한 경우이다. 나머지 25%는 소액 청약저축 가입자 또는 장애인, 탈북자 등으로 구성된다.

거의 대부분 스스로 최저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건강상태, 직업, 수입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만큼 복지수요도 높기 때문에 각 단지마다 최소한 1개 이상의 사회복지관이 자리 잡고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영구임대주택 단지 전체가 거대한 복지기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빈곤층이 밀집된 곳인데도, 주민들은 계속 살겠다는 경우가 76%에 이른다. 집세가 싼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니까 마음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애들이 있는 집은 이사 가고 싶어하는 비율이 높다. 다만 형편이 안 되어 못 옮기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빈곤층이 영구임대주택에 밀집되면서 몇 가지 우려스러운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사회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노인, 장애인, 환자가 다수를 이루다 보니 마을이 갖춰야 할 역동성을 찾아볼 수 없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경우 적절한 역할 모델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선진국에서 경험한 사회적 배제나 낙인효과(stigma)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때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영구'로 놀림 받는다고 보도된 적도 있다. 이웃 아파트 단지들도 이 지역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울타리를 높여 경계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또 영구임대주택이 소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늘어난 복지비 지출에 고통받는다. 단지가 형성되면서 빈곤층들이 일시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노원구, 강서구가 대표적인 곳이다.

열린 주거지로 바꾸자

어떻게 할 것인가? 비슷한 일이 생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2005년 유럽을 휩쓸었던 인종 폭동이 사실은 우리식의 영구임대주택 단지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선진국들이 주택정책에서 가장 고심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공공임대주택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입주민을 섞어보기도 하고, 주민자치조직을 강화하기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예 주민을 모두 다른 동네로 이주시키고 건물을 철거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 진보-보수할 것 없이 공공임대주택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쟁적으로 더 많은 목표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원조 공공임대주택은 감춰두고 있다.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모른 체 쉬쉬하고 있다. 이제 영구임대주택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감춰진 주택이자 숨겨놓은 복지로는 계속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구임대주택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분당, 평촌 등의 아파트 리모델링 얘기가 쟁점이 되고 있다. 조만간 영구임대주택도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논의가 등장할 것이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무엇보다 입주민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도록 임대료 차등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영구임대주택 주민들도 조금 더 나은 임대주택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또 급속히 낡아가는 주택을 고칠 수 있도록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싱크대 문짝이 너덜거리고 벽지에 곰팡이가 슨 채 살아가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존 시가지 내에 소규모로 주택을 매입해서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 노무현 정부 당시 도입했던 매입임대주택을 더 확대시켜야 한다. 또한 주민들이 복지수혜 대상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마을을 가꾸는 사람들로 변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10여 년 전 시행해보다 중단한 주민역량강화(empowerment) 프로그램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영구임대주택은 한때 우리나라 주거복지정책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그 자부심을 되살릴 수 있도록 영구임대주택을 고쳐야 될 책임이 있다. 사회와 섞여도 전혀 이상치 않은 '열린 주거지'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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