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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마저 적군으로 보는" 환각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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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마저 적군으로 보는" 환각에서 깨어나라

[한반도 브리핑] 북이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까 묻는다면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느냐?"

2009년 북의 2차 핵실험 이후 부쩍 자주 들리는 회의론이다. 서울과 워싱턴 정가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회의적 질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 정직한 답은 "모른다"이다.

그 외의 답은 모두 추측이요 상상이다. 뿐만 아니라 핵 포기 회의론은 북의 핵 포기가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 결국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전형적인 '자기 충족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sy)이다.

회의론은 초능력적인 독심술에 의존한다. "핵 폐기는 한계가 있다"는 근거로 "북 지도자 입장에서 핵 없는 북한을 생각할 수 없다"는 독심술이 등장한다. 만나 보지도 않은 사람의 심중을, 그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를, 수 천리 떨어져 예측할 수 있는 초능력이다.

한편으로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낙관적 점성술이 그 근거로 횡행한다. 한국의 정치는 한치 앞을 알 수 없건만, 미국의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건만, 오직 북의 미래에 대해서만은 확신을 갖는다. 기다리면 굴복하거나 붕괴할 것이라고. 적어도 북한의 미래만은 유리알처럼 볼 수 있는 신통방통한 초능력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회의론은 과거를 쾌도난마로 풀어낸다. 지난 십 년의 '퍼주기'는 핵폭탄이 되어 되돌아 왔고, 북은 합의를 헌신짝 버리듯 한다고 쉽게도 설명한다. 이러한 주술적 설명에서 부시 행정부의 금융 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조치가 북의 핵실험을 촉발했다는 인과관계는 사라진다. 북이 제네바 합의와 6자회담 합의를 준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핵무기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예측을 신비주의는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술은 현실을 구성한다.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막고, 동맹 미국의 인도적 지원에도 발을 건다. '적극적 억제 정책'이 채택되고 다연장포를 최전선에 배치하고,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구성한다. '선조치 후보고'라는 지침이 되어, 민간항공기에 대한 실탄사격이라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중국 <환구시보>가 꼬집은 것과 같이 이러한 주술은 이제 "초목마저도 모두 적의 군대로 보이게"하는 환각으로 돌아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주술적 회의론은 6자회담에 앞서 북이 먼저 '진정성'을 보이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믿을 수 없으므로 '진정성'부터 내놓으라는 주문을 엄숙한 표정으로 행한다. 상대국을 "믿지 말고 검증하라"는 것이 금과옥조인 외교에서 '진정성'이라는 물건만 보여주면 믿겠다고 코미디를 한다. 진정성을 믿을 수 없으니 진정성부터 보이라는 이 코미디는 6자회담이라는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하여 북이 핵무장력을 강화하고 핵 프로그램을 진전시킬 시간과 명분을 벌어주는 비극을 낳는다.

이렇게 이들의 '주술'은 과거를 멋대로 재단하고, 위험한 현실을 구성하고, 비극적 미래를 재촉한다.

▲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그러나 모든 종말론이 예언된 종말일에 종언을 고하듯 이러한 주술적 사고도 그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들의 담론은 그 담론에 포획된 사람들에게는 현실일지 몰라도, 그 담론 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담론이 북의 사고와 행위마저 규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 담론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이라도 시키듯 북은 중국과의 로맨스에 열을 올리고, 하루하루 우라늄 농축으로 미국의 애를 달게 하고, 남북 비밀협상에서 드러난 '벌거벗은 임금님'의 알몸을 포르노 동영상 뿌리듯 돌린다.

현실과 간극이 벌어질 만큼 벌어졌을 때, 그 벌어진 간극을 메우기 위해 현실을 억지로 주술적 사고에 갖다 붙이려 할수록 상황은 위험해진다. 종말론적 신앙이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 못지않게 주술적 회의론은 위험하다. 자국민이 탄 민간항공기에 실탄을 발사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는 것은 그 위험신호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대북 비난 전단 풍선을 날리는 것 또한 그렇다. 중국과 미국이 평화관리자로 개입을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으로 발을 딛는 것은 아닌가.

하여 현실에서 출발하자. 그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를 향해 오늘 반걸음만이라도 전진하도록 노력하자. 그 길만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 길만이 가장 평화적이지 않은가.

북이 장차 어떠한 모습이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북은 현실로 존재하고,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으로, 총비서로 존재한다. 물론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로 귀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당장 대화가 재개되지 않는 동안 북의 핵능력은 그만큼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 '사과'나 '진정성'을 전제조건으로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희망사항이다.

이제는 자기최면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주술적 회의론을 걷고,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위태롭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비핵화와 평화의 조건을 하나씩 만들라. 그리고 검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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