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9월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하루아침에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든, 유럽의 재정위기가 또다른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키는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유럽의 재정위기는 남유럽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주변국'들의 위기 차원에서 다뤄졌다. 하지만 그리스의 구제금융 1년 뒤 재정위기는 '중심국'으로 확산되는 새로운 차원을 보이고 있다.
▲ 그리스에서 정부의 긴축 정책과 민영화 정책에 항의하는 노동계의 시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유럽의 재정위기가 '유럽판 리먼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AP=연합 |
최근 그리스는 국가신용등급이 'B' 단계의 투기등급으로 전락하는 등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유럽의 3위 경제대국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도 A+인 현재의 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을 받았다는 점이다.
유럽 재정위기 후보국들을 묶은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 중 이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되었는데, 유럽 4위 스페인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흔들리며 재정위기가 중심국을 치고 들어가는 모양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일으킨 재정위기의 '불'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진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의 국채에 다른 나라들도 대거 물려 있기 때문에 그리스의 빚을 탕감해주거나 만기연장 등을 해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스의 구제금융 등 지원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의 강력한 긴축과 민영화를 단행하는 성의를 보여야 구제금융이나 추가 지원책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11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도 실제 지급 이행 과정에서 삐꺽거리고 있다.
"다음날 예정된 구제금융 차질 빚으면, 곧바로 부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그리스는 IMF가 6월 중으로 예정된 구제금융 5차분 120억 유로를 내주지 않으면 다음달 만기되는 국채 물량 134억 유로를 막지 못해 당장 부도가 날 상황"이라면서 "재정위기 도미노의 갈림길이 닥쳐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상황이 험악해지자, 더 이상의 긴축은 곤란하다고 버티던 그리스 총리도 23일 국영자산 매각 규모도 단번에 7배 이상 늘리며 시기도 2015년 기한에서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날 500억유로(약 77조원) 규모의 국유자산을 조속히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리스 최대 통신사, 항만, 은행, 수도회사 등 공기업의 정부 지분을 조속히 매각해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7.5%까지 재정 적자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소국들의 재정위기에 전염될 것을 우려한 스페인도 서둘러 국유재산 매각 등을 통해 재정적자를 감축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9.2%에 이른 재정적자를 올해 6%로, 내년에는 4.4%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긴축도 어렵고, 채무재조정도 어려운 딜레마
하지만 그리스나 스페인 등 재정위기가 이 정도의 노력을 보이는 것으로 해소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급격한 긴축 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발로 정권이 흔들리고, 경제 자체가 침체해 갈수록 '돈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의 국유 재산 매각 방안은 야당의 반대로 하루도 못가 흔들리고 있으며, 스페인은 지난 주말 집권 여당이 지방 선거에서 대패하면서, 긴축 노선이 후퇴하거나 정권 교체 과정에서 숨겨진 부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페인은 그리스 등에 막대한 대출이 물려있어 스페인이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스페인이 타격을 받으면 이탈리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에 280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이기에 이탈리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에 볼모를 잡힌 유로존은 결국 그리스 국채에 대해 만기연장이나 금리인하 조치 등 어떤 형태로든 채무재조정을 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하지만 채무재조정 방안은 일종의 '딜레마'다. 투자자들의 손실을 의미하는 디폴트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리스 국채의 대량 매도 사태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4일 "그리스의 채무재조정이 시도되면 디폴트로 처리하겠다"고 공개 경고했다.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라는 것은 시장의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날 그리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7.03%를 기록하면서 '사채 고금리'를 줘야 자금을 조달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계 주요 증시에서 유럽계 자금도 빠져나가면서 폭락 사태를 부르고 있는 것도 유럽 재정위기가 고조된 탓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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