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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총재 대선 가도와 음모론만이 전부인가?"

[해외시각] 스트로스칸 성폭행 논란이 놓치고 있는 것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15일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이후 인터넷 등에는 그의 범죄 혐의가 '우파의 정치적 음모'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을 빚고 있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체포 전날 뉴욕시 소피텔 호텔에서 32세의 룸메이드 여성이 객실에 들어오자 욕탕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나와 달려들어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보석신청이 기각돼 현재 뉴욕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 독방에 수감돼 있다.

프랑스 누리꾼들은 스트로스칸이 2012년 대선에서 유력한 사회당의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16일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실린 지난달 28일 스트로스칸의 발언을 '근거'로 보고 있다.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스트로스칸은 "클로드 게앙 프랑스 내무장관이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고 이 때문에 매우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앙 장관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또 <르파리지앵> 신문은 스트로스칸이 체포된 지 20분 만에 보수 성향 누리꾼이 트위터를 통해 어떤 언론사보다 빨리 이 소식을 전했다는 점에 누리꾼들이 의혹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 현장인 소피텔 호텔이 프랑스 기업 소유라는 점도 인터넷 상에서 음모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궁 관계자는 "우리가 정말 일을 꾸몄더라면 6개월 정도 뒤가 더 좋은 타이밍이었을 것"이라며 음모론을 일축했다고 <르파리지앵>은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음모론을 둘러싼 공방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누리꾼들이나 부인하는 대통령궁 관계자 모두의 말에서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티파니 윌리엄스 미국 정책연구소(IPS) 연구원은 17일(현지시간)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스트로스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여성이 이주노동자 출신인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같은 음모론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중요한 인물인 스트로스칸이 '별 것 아닌' 일로 발목을 잡혔다"는 인식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스 연구원은 이 사건에서 스트로스칸의 정치생명이나 2012년 프랑스 대선의 향방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른바 '룸메이드'로 불리는 호텔 청소노동자,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여성 등 일부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취약한 지위 문제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글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 뉴욕 경찰에 연행되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오른쪽 두 번째) ⓒAP=연합뉴스

음모론이 놓치고 있는 것

스트로스칸의 강간 혐의에 대해 자세한 사실들이 밝혀졌다. 그런데 왜 그의 멍청한 정치적 실수가 모두의 주목을 끌고 있는가? 뉴욕 검찰이 밝힌 호텔 여종업원에 대한 야만적인 성적 공격 때문에? 검찰의 보고를 받은 판사가 그의 보석 신청을 기각하고 [악명높은]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에 수감했기 때문에? 그게 아니다.

스트로스칸은 유력한 대선 후보였다. 사실 그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재선을 가로막을 사회당의 희망으로 널리 비춰졌다. 그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고 몇 시간 만에 인터넷 언론에는 이것이 "사르코지의 음모"라는 의견이 넘쳐났다. 곧 이 음모론만을 다룬 언론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초점은 온통 자신의 직장에서 성폭행당할 뻔 했다고 주장한 여성이 아니라 스트로스칸에게만 맞춰졌다. 하루 숙박료가 3000달러에 달하는 호텔 스위트룸을 청소하는 이 여성은, 인간이다. 국제 전문가들은 스트로스칸이라는 조타수를 잃은 IMF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만을 늘어놓고 있지만, 이 여성 또한 동정받을 가치가 있다.

필자의 주 연구 분야는 이주노동자 여성들에 대한 착취 행위다. 언론 보도에서 눈길을 끈 것은 피해 여성의 직업과, 인종(그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다), 범죄 피해자로서 현재의 상태 등이었다. 보통 호텔이나 사무용 빌딩의 청소부는 말없는 기계와 같이 취급된다. 하지만 그에게 가해진 부당한 공격이 그 역시 인간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호텔 룸메이드들의 삶은 개인 가정에서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유사하다. 호텔 등에서 청소부로 일한다는 것은, '그들의' 공간에 있는 부유한 권력자들과 스스로를 평등하지 않은 입장에 놓게 된다. 만약 당신이 그들의 호텔방에서(또는 집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이 당신을 덮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호텔 룸메이드들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2006년 뉴욕에서 가사사용자(통칭 가정부)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33%가 고용주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꼈으며, 언어적·신체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고용주들의 이런 행동에는 자신들의 인종적 배경과 이민자라는 지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호텔 룸메이드들 역시 이민자 출신의 이른바 '유색인종' 여성들이 다수다. 그들의 일터는 성폭행 등에 취약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위험하다. 호텔 청소부들이 근무 중 부상을 입는 비율은 전체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에 비해 40%나 높다.

여기에서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미국‧유럽인들은 부자들의 호텔 객실이나 집에서 일하는 여성이 성폭행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인가?

둘째, 왜 [음모론 제기론자들은] 노동계급 여성이 합의금을 받기 위해 성폭행당할 뻔 했다는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뉴욕타임스>와 <ABC> 방송, 월간 <베니티 페어> 등의 의견란에는 '(사르코지의) 음모'라는 이야기는 넘쳐나는 반면 피해 여성에 대한 동정은 찾기 힘들다. 이런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에게 악의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청소 노동자들이 미국과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징후다. 그들은 '고용인'(또는 하인. servant)이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다.

스트로스칸의 변호사 벤저민 브래프먼은 "좋은 사람들도 잘못을 저지른다. (…) 그들의 삶이 파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브래프먼의 말이나 많은 논평들은 이번 사건이 정치인 스트로스칸의 경력에 비극이 될 것이며, 그의 제거는 세계 경제의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이 '단지' 호텔 청소부이기 때문에, 그 여성이 겪어야 할 비극과 삶을 되찾기 위한 노력은 무시된다. 설사 언론에서 그 여성의 인간적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것이 '무죄 추정의 원칙' 때문이라 해도, 이런 이야기는 흔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도처에서 부자들에 의해 자행된 성희롱과 성폭력을 견뎌내야만 하는 다른 호텔 룸메이드나 가사사용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인가? 아마도 가난한 여성의 몸은 전쟁에서의 '부수적 피해'나 국제적 업적을 성취한 자들에 대한 보상, 또는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호텔 청소부 등 '피고용인'인 여성은 비인간적 성폭력에 더 취약하다. 이는 그들과 고용주들 간의 관계가 원래부터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이들 여성들이 겪은 착취와 위협에 대해 이미 많은 증언이 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증언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부유하거나 유명한 남자들이 여성에 대해 저지른 성폭력이 뉴스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스트로스칸은 이제 어떻게 할까?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나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주 검찰총장 등도 그들이 저지른 분별없는 짓 때문에 고통받았다. 그들의 행동이 설사 불법적인 것은 아니고 '부적절한'것이었다 해도 말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필자는 스트로스칸에게 강간당할 뻔했다고 주장한 여성에 대해 느끼는 동정심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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