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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 사살된 것이 빈 라덴 최후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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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 사살된 것이 빈 라덴 최후의 승리"

[해외시각] "미국, 또 다시 빈 라덴 손에 놀아났다"

오사마 빈 라덴의 최후는 미국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일요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미국의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빈 라덴 사살이 미국의 승리라는 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오히려 명분 싸움에서는 미국이 빈 라덴에게 졌다는 논평이 있다.

미국 외교전문가인 존 페퍼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 공동소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이 빈 라덴 사살을 감행함으로써 오히려 그의 과거 주장들이 더 빛을 발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페퍼 소장은 "빈 라덴은 오랫동안 원해 왔던 순교자적 죽음을 맞았다"며 어떻게든 그를 산 채로 잡아 법정에 세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교'가 빈 라덴의 최후의 무기가 됐다는 것이다.

페퍼 소장은 빈 라덴 사살의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의미를 분석하면서, 모든 면에서 미국은 빈 라덴의 주장이 정당함을 입증해준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정치적인 면에서 빈 라덴은 자신의 이상인 '이슬람 국가'에 비춰 세속 국민국가를 부정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여러 국제법적인 논란을 낳고 있는 빈 라덴 사살 작전은 국가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게 했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빈 라덴의 죽음은 그가 생전에 주장했던 '이슬람 대 비(非)이슬람', 즉 '성전'(지하드)의 구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경제적인 면에서도 빈 라덴 하나를 잡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소요함으로써, 소련이 걸어간 길을 미국도 따라 걷게 하려는 빈 라덴의 전략이 오히려 성공을 거두도록 도와줬다고 페퍼 소장은 꼬집었다.


다음은 그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미국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에 거리로 뛰쳐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자축했다. 그러나 3일(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는 빈 라덴의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슬람 정당 '자마투트 다와'의 지지자들은 미국의 빈 라덴 사살을 비난하며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AP=연합뉴스

미국은 또 한번 오사마 빈 라덴의 손에 놀아났다.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그가 미군 특수부대의 손에 사살되고, 많은 국가 정상들이 축하를 보내고, 미국 전역의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축하하며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는 괴상한 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 라덴은 약자들도 강자에 대항해 자신들만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예컨대 미국 항공기를 납치해 고층 빌딩에 들이받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약자들은 또한 언제나 적들이 거둔 부분적인 승리를 전체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킨다.

'순교'는 약자들의 주목할 만한 무기다. 빈 라덴은 오랫동안 원해 왔던 순교자적 죽음을 맞았다. 그는 사담 후세인과 같은 방식의 최후는 원하지 않았다. 미군 병사들에 의해 은신처에서 끌려나왔던 후세인은 마치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보였다.

빈 라덴은 일반적인 범죄자들처럼 재판을 받고 기소당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사라지기를 바랐다. [미국 서부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 캐치 부시디가 그렇게 비장하게 죽었다. 빈 라덴의 죽음은 '내일을 향해 쏴라'의 지하드 판(版)이다.

미국 정부는 빈 라덴이 체포에 저항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그가 원했던 '순교'를 방해하는 것은 분명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었다. 빈 라덴은 법정에 서는 대신, '인간'이 아닌 '전설'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의 주검을 재빨리 수장시킨 것은 음모이론의 소용돌이를 불러올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 의혹처럼, 빈 라덴이 죽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한때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지 않았다는 주장이 미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에 실렸듯, 앞으로 30년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는 빈 라덴이 죽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려올 것이다.

빈 라덴 사살의 역풍도 있을 수 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의 칼럼니스트 로렌스 라이트는 "알카에다 동조자들은 아마도 준비 중인 테러 작전 계획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 세력도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얼마 전 통합 팔레스타인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하마스는 복수를 다짐하지는 않았지만, '성스러운 아랍 전사'를 죽인 것을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정파 '파타'와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는 지난주 단일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그러나 진정한 역풍은 군사적인 보복보다 좀더 미묘한 데 있다. 약자들은 직접적인 대립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아랍 세계에서는] 법적‧종교적‧경제적인 논란이 생겨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미국보다는 빈 라덴의 해법을 따를 것이다.

법적인 면에서, 빈 라덴의 전략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다. '세계 이슬람 왕국'을 열렬히 신봉하는 빈 라덴은 자신이 믿는 이슬람교의 이상 아래 세계가 하나가 되기를 원했고, 국가의 주권과 법에 의한 지배를 장애물로 보았다. 그리고 그의 암살은 서방 국가들이 내세우는 정의의 원칙에 대해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과 아랍 독재자들에 대한 지원이 민주주의에 대한 서방의 약속에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빈 라덴의 죽음은 국가의 권력 남용이라는 세속적인[비종교적인] 메시지가 아랍 세계에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표물 '암살'이 과연 미국이 행할 법한 일인가?)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번 작전은 파키스탄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빈 라덴은 죽음에 이르면서도 미국과 파키스탄의 대립을 조장했다.

종교적인 대립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빈 라덴은 대담한 '성전'의 전사였고, 세계를 '믿는 자'와 '불신자'(不信者)로 양분했다. 그는 많은 무슬림들도 믿음을 버렸다면서 '불신자'로 분류했다. 빈 라덴의 죽음을 알리는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은 이슬람과의 전쟁을 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9.11 테러 직후에 벌인 작전이나 이번 작전은 이슬람교에 대한 전쟁이 아님이 명백하다"고 말한 것은 주의깊은 것이었다. 그는 "빈 라덴은 이슬람 지도자가 아니"라면서 "알카에다는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이슬람교도들을 살육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은 옳다. 최소한 빈 라덴의 행동과 미국의 의도에 대한 부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의 전쟁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 정부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충돌들과 함께 이슬람 공포증의 물결이 미국과 유럽을 휩쓸었다. (남부 아시아, 아프리카와 세계의 다른 지역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들의 관습적인 인삿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즉 "신이 여러분을 축복하기를. 그리고 미국을 축복하기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전쟁이 엄격히 말해 십자군 전쟁이 아니라고 해도, 최고사령관이 신의 가호를 빌고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들의 임무를 신이 내린 것이라고 본다면 전쟁은 '성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빈 라덴은 그가 치르는 전투의 경제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의 붕괴를 지켜봤고,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제국인 미국도 이와 같은 길을 걷게 하려고 획책했다. 필자는 지난 2002년 발표한 글 '빈 라덴의 비밀 전략'에서, 알카에다는 미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파산'을 고려하고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미국은 지금 당장은 충분히 건강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와 군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6조 달러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있고, 군사비 지출과 감세 범위는 오직 늘어나고만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갈 것이다."

이 글이 발표된 지 9년 후인 지금, 미국의 국가부채는 당시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상당히 많은 돈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소비됐고, 군사 예산도 풍선처럼 불어났다. 삶의 피폐와 놓쳐버린 기회라는 '비용' 중 많은 부분은 이제 막 우리를 위협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미국 워너브러더스 사(社)의 만화 '루니 툰'에 나오는] 코요테가 허공을 걷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죽은 제국이 걷고 있다. (Dead empire walking.)

끔찍한 아이러니는, 이슬람 세계에서의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이미 오래전에 막장을 맞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슬람주의 세력들은 '폭력을 통한 이슬람 왕국 수립'이라는 전략을 오래 전에 포기했다. 현대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선거에 참여하고, 국민국가를 지지하며, 현대화를 수용하고 있다.

중동 전문가 필리스 베니스의 지적처럼, 이른바 '아랍의 봄'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개혁을 실현하려는 비폭력적이고 정치적인 노력의 최신 사례다. 빈 라덴이 부린 가장 뛰어난 마술적 책략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부추겨 이미 이슬람 세계에서도 한물 간, 작고, 시대착오적이며, 고립된 무장 세력과의 싸움에 막대한 양의 돈을 쏟아붓도록 만든 것이다.

순교, 성전, 강자를 유인하고 방탕한 경제적 지출을 하도록 하는 것. 이런 '약자의 무기'로 알카에다는 미국을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자원을 갉아먹을 전투로 몰아넣었다. 재판도 없이 빈 라덴을 죽이면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심지어 여기서도 빈 라덴은 우리에게 부담을 지우면서 스스로의 이름을 드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런 것들이 빈 라덴의 도구다. 즉 우리가 빈 라덴의 도구다.

*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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